형교를 위한 소설

by 안개꽃 눈송이

서울 중랑구 묵동의 허름한 단칸방에 사는 오형교는 하루하루를 일용직 노동으로 연명하는 사내였다. 그의 삶은 늘 고단했고, 녹내장으로 흐려져 가는 시야는 세상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고 있었다. 저녁이면 그는 술에 기대어 하루의 피로와 상처를 잊으려 했지만, 술은 잠시의 망각만을 줄 뿐, 마음 깊은 곳의 공허와 상실을 덮어주지 못했다.

그는 오래전 가족을 잃은 기억을 품고 살아왔다. 늙은 총각인 그에게는 세상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 봉사하며 성경을 읽는 일만은 놓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끈이었고, 그 끈을 놓는 순간 그는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을 것 같았다. 성경 속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그에게 여전히 희망의 불씨를 남겨주었다.


어느 날 밤, 성경을 펼쳐 읽다 잠시 졸음에 빠진 순간, 형교는 알 수 없는 생각이 그의 내부에 들려왔다.

“형교야, 내가 내일 너를 찾아갈 테니 창밖을 보아라.”

그 목소리는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생각한 그 목소리를 하느님의 음성이라 믿었다. 그 믿음은 그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기대였다.


다음 날, 형교는 종일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기다리던 하느님은 오지 않았다. 대신, 세상은 그에게 다른 얼굴들을 내밀었다.

먼저, 겨울바람에 떨며 길가에 웅크린 노숙자가 있었다. 형교는 그를 집으로 불러들여 따뜻한 국물과 밥을 내어주었다. 노숙자의 굳은 얼굴에 잠시 스며든 안도는, 형교에게도 알 수 없는 위안을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서로의 고독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이어, 도시의 찬 바람 속에서 아기를 품에 안은 히잡을 쓴 인도네시아 여성이 지하철 입구에서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형교는 그녀를 집으로 들여 먹을 것과 옷을 내어주었다. 서로 믿는 신은 달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인간의 고통과 사랑이 신을 대신했다. 그는 깨달았다. 신은 이름이나 교리에 있지 않고, 고통받는 자를 향한 연민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질 무렵 길가에서는 국밥집 할머니가 국밥을 먹고 도망가려던 소년을 붙잡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형교는 나가서 할머니를 설득했고, 국밥 값을 대신 치른 뒤 할머니에게 소년을 용서해 달라 부탁했다. 결국 소년은 형교의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단순한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인간이 다시금 사랑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날 밤, 형교는 다시 성경을 펼쳐 읽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낮에 만났던 노숙자, 인도네시아 여성, 국밥집 할머니와 소년이 나타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교야, 네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 바로 나다. 너는 나를 대접한 것이다.”

그는 깨어나 성경 속 구절을 다시 읽었다.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주었으니, 어떤 종교를 믿던 형제 중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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