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운동

by 김소영

스쿼트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세요. 발끝은 바깥쪽으로 향하게 두고, 앉을 때 무릎은 안쪽으로 모이지 않게 바깥으로 밀어줘야 해요. 어어(다급하게), 무릎이 발끝을 넘지 않게 체중은 최대한 뒤쪽으로 실어 줘야죠. 일어날 땐 앞으로 밀리면서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위로 올라오세요. 허벅지 안쪽이랑 엉덩이에 힘 빡 주고!


트레이너의 디렉션대로 몸을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이놈의 스쿼트는 세상 쉬울 것처럼 생겨선, 제대로 된 동작을 취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앉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신경 쓸 건 왜 이렇게 많은지. 12개쯤 했을까. 어김없이 그가 찾아왔다. 무릎 통증. 무릎이 아파요. 스쿼트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있다면 이 말이 아닐까. 허벅지 안쪽도 후들후들 떨렸다. 트레이너는 구체적으로 어느 부위가 아픈지 물었다. 무릎 위쪽이요. 언제쯤 나도 무릎 통증을 느끼지 않고 스쿼트를 할 수 있을까. 트레이너는 배드로 가 누우라고 했다. 그리고선 무릎 위쪽 근육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허벅지 근육이 타이트해서 그런 것 같다고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서 이완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마사지를 끝내고 2차전이 시작됐다. 한번 시작했으면 어떻게든 3세트는 해야 끝날 수 있는 지옥에 입성한 것이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주고, 고관절이 깊숙히 접히는 느낌으로 해야 해요. 엉덩이 더 빼고.


엉덩이를 빼는 동작을 유독 잘 못 한다. 골반이 앞쪽으로 말려 있는 체형이라 잘 안되는 것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평소에 몸의 곡선을 만들 일이 별로 없다 보니 남사스러운 기분이랄까. 하지만 허리 위쪽에 아치를 제대로 만들어 줘야 부상을 막을 수 있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허리를 뒤집어 깐다. 무릎통증도 마사지를 해줬더니 한결 좋아졌다.


좋아요, 마지막 개수에서는 버틸거예요. 5초. 5,4,3......


3초까지 세고선 하염없이 길어지는 저 침묵이 천년 만년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지만 트레이너는 다음 숫자 세는 것을 까먹은 듯 유유자적했다. 결국 아아악! 같은 괴성을 지르며 더 버티지 못하고 일어섰다. 내 저 인간을 어떻게 응징하지. 다리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주룩주룩 흐르는 땀에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


자 이제 이리로 오세요.




플랭크


팔꿈치를 대고 엎드리세요. 손은 회원님이 편한 모양대로 잡고, 어깨와 귀는 최대한 멀어지게, 골반은 앞으로 말아주고


트레이너에게 유일하게 칭찬받은 동작이 플랭크다. 버티기 같은 근지구력 운동을 잘한다고, 그나마 여기서 희망을 본 눈치였다. 같이 운동하는 언니는 플랭크를 어려워했다. 골반을 말아주라는 지시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생각해보면 내가 골반을 앞으로 말라는 것을 한 번에 이해한 데는 필라테스를 했던 경험이 한몫했다. 웨이트를 하기 전에 필라테스를 했었다. 대략 1년 정도 배웠는데, 그때 척추의 정렬과 골반의 움직임 같은 기본적인 동작을 많이 했다. 세상에 그게 여기서 빛을 발휘하다니. 역시 무의미한 경험은 없는 거였어.


30초 버틸 거예요.


골반을 아무리 잘 말면 뭐 하나. 10초만 지나도 벌벌 떨리는걸. 코어 힘이 너무 약했다. 턱 끝까지 진동이 울렸다. 사람이 이렇게 사시나무 떨듯이 떨릴 수가 있다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에 30초는 벌써 흐르고도 남았어야 했는데 그만하라고 할 기미가 안 보였다.


10초 남았어요.


세상에 10초. 자세가 무너진 지는 오래였다. 그때부터는 무아지경이다. 초 단위가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다니. 시간을 길게 느끼고 싶으면 여러분들 운동하세요. 마지막 10초를 악착같이 버텨내고 매트 위로 몸을 던졌다. 중력을 거슬러 내 몸을 들어 올리고, 더는 안될 것 같다는 한계와 싸우면서 버텨내느라 녹초가 되었다. 이걸 꾸준히 하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는 거지? 근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아직 2세트가 더 남았다는 사실이다. 하.




달리기


수업이 끝나고 나면 트레이너는 곧바로 런닝머신을 타라고 했다.


오늘은 뛰어볼 거예요. 속도는 7 정도로 두고 뛸게요. 5분만 뛰어보세요.


아니 근데 안가고 거기 서 있을 거예요? 그는 그렇다고 했다. 자기가 자리를 뜨면 안 뛸까 봐 그런댔다. 귀신같은 사람. 그나저나 이게 얼마 만에 뛰어 보는 건지. 근래 달려본 거라곤 2분 뒤에 도착한다는 버스를 놓칠세라 뛴 일 빼고는 없는데. 그렇게 조금 뛰고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한참을 호흡을 다스리는 데 시간을 써야했는데 5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새 트레이너는 속도를 무자비하게 높였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맞춰 하는 수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글씨 읽어보세요.


TV 전원을 끄지 마세요. 나는 한숨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또 옆에 있는 글씨를 읽으라고 했다. 아니 뛰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왜 이걸 읽으라고 하는 건지. 몇 분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턱 막혀서 글자를 소리 내서 읽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말을 잘 못 할 정도로 뛰세요. 자 이제 2분 남았어요


세상에 얼마나 힘든지 그 척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읽으라고 시킨 거였어? 다리가 천근만근 같았다. 사뿐사뿐 뛰고 싶은데 점점 쿵쾅쿵쾅 내 몸의 체중을 실어 뛰고 있었다. 종아리 근육도 당겨오기 시작했다.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지방들의 출렁임, 헉헉거리는 숨소리, 자꾸 눈으로 들어오는 땀, 그 모든 걸 지켜보는 트레이너. 달리기는 수치스러움의 최종판인 것인가.


수고했어요. 내일은 10분 뛰어보세요.


황급하게 런닝머신 속도를 5로 내려두고 걸으며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내일도 운동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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