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이렇게 하면 살이 빠진다더라' 하는 말들에 쉽게 현혹됐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살만 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했다. 한약 다이어트, 양약 다이어트, 주사 시술, 극단적으로 음식을 조절하고,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고강도의 운동을 하는 다이어트까지. 살을 가장 많이 찌웠던 시기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던 2014년에서 2015년이었다. 그때는 애인과 이별을 한 후라 심리적으로도 많이 무기력한 상태였다. 게다가 부모님도 곁에 계시질 않으니 내 맘대로 먹고 퍼질러져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커다란 초콜릿과 한 박스의 젤리, 지나치게 달고 짠 과자, 저렴한 가격의 소고기, 주변에 넘쳐나는 정크 푸드는 나를 계속해서 살찌웠다. 불규칙하게 먹고, 의욕을 잃은 무기력한 몸은 침대에 눕기 바빴다. 호주에서 뚱뚱한 내 모습은 어떤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고, 잠시 머물다 갈 사람이라는 위치가 주는 자유로움에 자꾸만 찌는 살을 외면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세 달 전부터는 살을 빼자.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되었고, 몸은 20kg 가까이가 불어나 있었다.
가족들은 내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오랜만에 만난 딸이 반가운 것보다 걱정이 앞섰다. 저런 몸을 하고서 쟤가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쟤가 호주를 간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는데 같은 말들을 자주 푸념처럼 늘어놓았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죄를 지은 것처럼 부끄러웠고 자신감도 밑바닥을 쳤다. 마음이 급했다. 이제 곧 있으면 복학도 해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 우리 가족들조차 이렇게 놀라고 자주 비난했는데 남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았다. 빨리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 첫 시작이 한약 다이어트였다. 운동하지 않아도 살을 뺄 수 있다는 말과 한 달 만에 10kg을 감량할 수 있다는 자극적인 광고 문구에 마음이 흔들렸다. 저 약이라면 나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 같았다. 나는 이끌리듯 한의원을 찾아갔다. 아무도 모르게, 철저하게 나만 알아야 하는 비밀인 채로. 병원에 들어가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약을 먹고 살을 빼려는 거냐고 모두가 나를 비난할 것만 같았다. 살을 빼는 방법에도 서열이 존재한다. 식단 조절과 운동만으로 살을 뺐는지, 운동은 안하고 극단적으로 음식을 제한해서 뺐는지, 각종 보조제와 약, 시술에 의존해서 뺐는지에 따라 추앙받을 수도 멸시 받을 수도 있다.
한참을 건물 밖에서 서성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던 틈을 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일반적인 병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날씬하고 예쁜 간호사들이 안내 데스크에 앉아 어리숙하게 들어오는 나를 지켜봤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상담을 받으려고 왔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그들은 이런 사람은 숱하게 봤다는 듯 어떤 동요도 없이 서비스 미소를 띠며 문진표를 내밀었다. 나는 한구석에 가서 몇 가지 내 상태를 묻는 항목들에 예 또는 아니오를 체크했다. 곧 실장이라는 분이 나를 불렀고 인바디를 측정 당했다. 몸무게와 체지방량이 한없이 올라갔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인바디 결과와 문진표를 양옆에 두고 내 상태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졌다. 고도비만. 이런 상태는 섣부르게 운동을 시작하면 무릎이며 허리며 다 망가진다고 음식조절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원장님이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 거라며 다시 나를 대기하게 했다. 마음이 심하게 동요했다. 내가 고도비만이라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곧이어 원장실로 불려 들어갔다. 원장님은 살만 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나의 간절함 같은 거에는 어떤 감흥도 없다는 듯 용건만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이 약을 먹으면 몸이 계속 운동하고 있는 것 같이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요. 그래서 목이 좀 마를 거예요. 물을 자주 마시고요. 처음 3일은 디톡스 과정이 필요해서 이 한약만 하루 세 번 복용하세요. 정 배고프면 방울토마토 정도만 드시고 아무것도 먹지 마세요. 그렇게 끝이었다. 나는 세 달치 약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삼일은 가혹했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파서 가족들이 밥을 먹을 때 옆에 앉아 음식 냄새를 맡았다. 입 앞까지 음식을 가져다 대보고는 안된다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눈물을 글썽였다. 오메오메 짠해 죽겄네. 막상 먹지 못하는 딸이 안쓰러웠던 엄마는 그냥 먹으라고 수저를 들이밀었고 나는 안된다고 실랑이를 했다.
한약 다이어트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한 달 새 8kg을 감량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쉴새 없이 손이 떨렸고 입안은 바짝바짝 말랐다. 몸에 기력이 없어서 침대에만 누워 지냈다. 결국 한약 다이어트는 세 달도 채우지 못하고 한 달만에 끝이 났다. 빨리 뺀 살은 다시 빠르게 찔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극단적으로 음식을 제한했기 때문에 식욕은 날로 심해져 갔고 연이은 폭식이 이어졌다. 다시 원점이었다.
양약 다이어트나 주사 시술도 한약 다이어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살을 빨리 뺄 수 있다는 현혹적인 말들로 나를 유혹했고, 결국 넘어갔고, 몸은 한차례 혹사를 당한 뒤 끝이 났다. 지금 이 상태를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용당했기에 마음은 더욱 지쳐갔다. 다시는 살을 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덜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는 그 간단한 방법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살에 자꾸만 패배당하는 기분이 들면 중독처럼 다시 음식을 가져다 먹었다. 지금 이 기분을 즉각적으로 좋게 해주는 건 음식뿐이었으니까.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내 모습은 자주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서 왜 이렇게 먹었을까 끝없이 자책했다. 이 악순환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다시 운동과 음식조절을 시작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실패를 했다. 요즘은 내게 자주 묻는다. 이 방법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서. 이렇게 안 먹고 지낼 수 있어?, 이렇게 극단적으로 운동하면서 지낼 수 있어?, 살 빠진다는 약을 평생 먹으면서 지낼 수 있어? 아니라고 하면 그 방법은 언젠간 탈이 나게 되어있다. 치킨, 빵, 피자, 과자 같은 맛있는 것들을 어떻게 평생 안 먹고 살 수 있을까. 맛있는 것은 주변에 언제나 넘쳐나는데. 먹는 행위가 주는 행복을 포기하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건강한 타협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런 음식을 아예 끊어내는 대신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생리 때나 주말에 갑자기 터진 식욕에 과식하게 되더라도 평일엔 다시 조절하고 운동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불어난 살이 3일 안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것을 경험하자 한 번 잘못 되면 망하는 줄로만 알았던 생각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살이 빠지는 속도는 더디겠지만 다시 시작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중요했다. 그런 것들이 이 다이어트를 지속 가능하게 해주니까.
건강한 습관이 내 루틴이 되고 안정감을 느끼게 되기까지 한 번에 되는 일은 없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실패의 과정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이것만은 확실히 알 거라고 믿는다. 다시 시작하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