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밖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그건 바로 식단관리이다. PT를 받으면서부터 트레이너에게 식단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물을 제외하고 먹은 것이라면 모조리 찍어 보내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선 트레이너는 양 조절은 했는지 묻거나, 그런 간식 대신 계란을 먹으라고 권하거나, 저녁에 꼭 산책을 해주라는 식으로 답장이 왔다. 처음부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지속 가능한 조절이었다. 그 때문에 극단적으로 탄수화물을 끊어내거나, 양을 줄이는 것은 하지 않았다. 트레이너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고, 오로지 양 조절 하는 것을 강조 또 강조했다. 양 조절이라는 것은 이러했다. 피자, 햄버거, 떡볶이 그 무엇이라도 배부르지 않게만 먹는 것. 찌개를 먹을 땐 밥을 반 덜고 먹는다든지, 햄버거를 시킬 때도 커터칼을 받아다 반만 잘라 먹으면 합격이었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되 양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는 것. 다이어트에 있어 가장 기초이지만 습관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계.
그동안 워낙에 양껏, 마음껏 먹던 것이 습관이 되어 있던 터라 배고픔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4시쯤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온다. 평소라면 사무실에 비치된 몽쉘이니, 초콜릿 같은 과자를 뜯기 바쁠 시간. 먹을까? 아니 먹으면 안 되지. 트레이너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오싹한 기분이 들면 이내 하루 견과 같은 건강 간식을 꺼내먹었다. 식단 보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가끔 빼먹고 보고하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은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적어야 한다. 이 약속은 어느 정도 큰 효과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남에게 내 식탐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식단보고의 본래 목적이 회원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파악하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연습을 하는 데 있다면, 나는 애초에 내 잘못된 식습관을 파악하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먹으니 살찌지, 역시 이유 없이 찌는 살은 없다니까 라고 생각할거라는 병적인 강박이 여기서도 작용했다. 이런 생각이 긍정적으로 작용 할 때는 극히 극히 드문데 식단관리에서 만큼은 빛을 발휘했다. 나는 트레이너가 시키는대로 그것도 기대 이상으로 잘 해냈다.
어떤 맛있는 거라도 반만 먹고 수저를 내려 놓는다. 다 먹었어? 라고 묻는 질문에 당당하게 네 라고 대답한다. 간식을 권하는 사람에게 먹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이 세가지를 철저하게 지킨지 몇 주가 지났다. 가장 큰 변화는 늘어날 대로 늘어난 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예전이라면 다이어트 중에 약속을 잡는 것도 부담스러워했을 텐데, 양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자 두렵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트레이너는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하지만 내겐 식단을 악착같이 지킬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슬픈 사연이 있었다. 워낙 과체중에서 운동을 시작해서 그랬는지 관절에 문제가 생겼다. 원래도 허리는 디스크가 있어서 좋지 않았는데, 허리뿐만 아니라 무릎과 발목까지 그 통증이 대단했다. PT를 4회차까지 받을 동안 진통제를 먹어가며 참았다. 하지만 스쿼트를 하는 도중 무릎이 너무 아파 못하겠다고 운을 뗐다. 왜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았냐며 놀란 트레이너는 모든 운동을 기초적인 수준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다. 하고 싶어도 몸이 따르지 않아 운동을 잘 못 한다는 사실. 이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불안할 때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제한하는 게 더 수월했다.
같이 운동 하는 언니는 워낙에 운동을 잘했다. 등산, 사이클, 마라톤, 주짓수로 다져진 지치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 언니가 운동 하는 것을 지켜보면 우와 어떻게 저 중량을 들지? 우와 어떻게 저렇게 하고도 지치지 않을 수 있지, 우와 대단하다. 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내심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저렇게 운동하고 싶다. 같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체력과 운동 경험의 차이로 시작점이 달랐던 언니와 나를 비교하는 건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저강도로 운동해서 언제 살 뺄래. 때로는 왜 내 몸은 이 모양이지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고작 스쿼트 20개도 못해서 쩔쩔매는 내 모습. 조금만 무리해도 아픈 무릎과 허리. 통증이 잡히고 체력이 붙을 때까지 또 얼마나 긴긴 시간이 필요할까. 까마득하게 먼일 같았다. 트레이너는 잘 움직이지 못하니까 먹는 것을 더 잘 관리하라고 이야기했다. 알겠어요. 내가 지금 잘 할 수 있는 건 식단관리뿐이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잘 할 수 있는 건 식단관리뿐’이라는 말속엔 약간의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희망 나부랭이가 섞여 있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이 어떤 일을 해내는 데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를 미워하는 힘이 나를 파괴하는 데 말고 다른 일의 에너지로 쓰이다니. 약간 자조적인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어쨌거나 식단으로 보완했던 날들마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운동을 지속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다이어트는 정말이지 멘탈 싸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