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이 몸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by 김소영

뚱뚱함이라는 특징은 언제부터 나를 따라다닌 걸까. 나도 처음부터 뚱뚱하진 않았다. 출생 기록증을 보면 대략 평균 몸무게라고 불리는 숫자 언저리로 남들과 엇비슷하게 태어났다. 심지어 어린 시절은 어땠는가. 밥을 죽어라고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그래서 엄마 속을 까맣게 태우던 깡마른 어린이였다. '나 어릴 때는 진짜 말랐었어. 밥을 하도 안 먹어서 엄마가 한약을 한 재 지어줬는데, 그걸 먹고 나서는 입맛이 돌았는지 살이 찌기 시작했대' 나는 주변에 종종 저런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지금의 몸을 변명하곤 했다. 물론 지금의 몸이 되기까지 어릴 때 먹은 한약이 원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도 원래 이렇진 않았어!' 같은 뉘앙스로 거들먹거리기 위한 장치랄까.


깡마른 다리에 흰색 스타킹을 신고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어린 내 모습은 학창시절을 지나오는 동안 자주 소환됐다. 지금 이 모습이 싫을 때면 어릴 적 사진을 들여다봤다. 보고 있으면 이렇게 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라는 습관적 인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어, 지금 내 몸을 보고 함부로 판단 하지 마’ 같은 날 선 마음은 자꾸 과거에 집착하게 했다. 요즘에 나는 어떤 모습을 붙잡고 사는가. 지금보단 20kg이나 적었던 고등학생 때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몸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처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21살의 나. 그래 어쩌면 21살의 나를 가장 그리워하는 걸지도. 그렇게 어렵게 뺀 살을 왜 다시 찌웠을까. 그것도 30kg이나.


내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때가 되면 늘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딱 달라붙은 짧은 청바지 안에 티셔츠를 넣어 입고 있는 21살의 나, 비쩍 마른 모습의 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진을 보자마자 헤에엑!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너라고? 다시 묻거나,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궁금한 눈초리로 내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면 나는 아련한 얼굴이 되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나의 긴 역사를 설명했다.


이것은 패턴처럼 작용했다. 뚱뚱한 내 모습 말고는 다른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주기. 동요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그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은 쾌감에 젖기, 내 의외의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얻어지는 일시적인 당당함에 취하기. 대부분의 마무리는 다들 조금씩 처음과는 다른 눈빛이 되어 나를 격려하는 분위기로 끝이 난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환멸감에 괴로워했다. ‘나 한때는 이렇지 않았어’라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사실은 얼마나 우습고 창피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깡마른 어린아이,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21살의 나. 짧지만 날씬했던 시절이 진짜 나인 것 같아서, 자꾸만 그때 그 시절을 얘기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은 내 안에 이런 모습이 숨어 있는 거라고. 나라도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뚱뚱한’이라는 수식어는 나를 자주 현재에 머물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트레이너에게도 이런 말을 했다. 저도 다이어트 성공해서 날씬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요? 사진 보여줘 봐요. 역시 그는 지금의 내 모습 말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듯 화들짝 놀라 그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언제나 자랑스럽게 꺼내보였던 준비된 사진을 보여주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진짜냐고 놀라고, 다시 이렇게 될 수 있다며 격려하고 끝나면 되는 거였는데, 망설여졌다. 트레이너 눈에는 과거의 내 모습도 미흡한 거 투성일 테니까. 한껏 당당했던 과거의 모습이 더는 당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엔 몸이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거였다. 내 몸을 누구한테 보이느냐, 어느 시점에 보느냐에 따라 같은 몸이라도 뚱뚱할 수도, 날씬할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만족하지 못했고, 과거의 한 시점을 그리워하며 지금의 나를 부정했다는 사실이다. 요즘엔 자주 조급함을 느꼈다. 몸무게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안달이 났다. 언제 이 살을 다 빼지.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데. 오랜 시간 과거에 붙잡혀 있던 시선이 드디어 움직여 미래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건 형태만 다를 뿐이지 똑같은 행위였다. 지금은 싫고, 옛날의 내가 좋고, 변화될 미래의 내가 좋을 것이라는 확신. 한 달 전보다 조금이라도 날씬한 내가 지금 여기 있는데 그건 안중에도 없었다.

언제쯤 나는 현재의 몸으로 ‘지금’을 살아갈 수 있을까. 몇 kg이었던 나, 미래에 좀 더 괜찮아질 내가 아닌 지금 나를 온전히 느끼면서. 내가 변화하는 시간을 견딘다는 건 어쩌면 멈추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를 소환하여 그리워하는 일, 미래의 이상적인 나를 만나기 위해 경주마처럼 달려가려는 일. 그 모든 것을 말이다. 일단 멈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뱃살, 허벅지살, 종아리 알, 셀룰라이트, 튼 살.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끝내 괜찮다고는 말해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나라고 인정하겠다는 다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보는 연습을 한다. 거울 속에 비친 이런 나를, 그냥 온전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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