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운동을 해야 하지?
헬스장에만 들어서면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기구들 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는 것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일단 몸부터 풀자. 스트레칭 존으로 가서 팔다리를 휘휘 저어가며 오티 때 배운 동작들을 상기해 보지만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사람들은 내 옆을 분주히 오가며 아령과 같은 소도구를 들고 익숙하게 동작을 진행하고 있었다. 저 자연스러움이 부러운걸. 거울에 비친 잔뜩 움츠린 내 모습이 보였다. 뭔가 민망하고 어색해. 이름도, 사용법도 모르는 기구 앞으로 쭈뼛쭈뼛 다가갔다. 뭐야 이거, 의자가 높은데 어떻게 조절하는 거지? 자세는 이게 맞나? 아무래도 내가 하면 안 되는 것 같아. 나는 하는 수 없이 런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기분이 드는 곳으로.
이렇게 런닝머신만 죽어라 타는 것은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런닝머신 좀 그만 타고 싶었다. 저녁이었다면 사람들이 기구를 다 차지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라도 대겠는데, 새벽에는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차지할 수 있을 만큼 텅텅 비어 있었으니까. 헬스장을 처음 입성하는 그 순간부터,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한 이 기분을 떨쳐내는 게 시급했다.
안 되겠어 운동을 배우자. 첫 회원에게 제공하는 오티 3회가 만족스러웠던 것도 피티를 결정하는 데 한몫했다. 2주나 빠지지 않고 헬스장을 나왔으니 피티를 받는 것도 별 무리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냥 딱 한 달만 해보자고 시작한 새벽운동이 더 길어질 것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바뀌면 2주가 지나기 전에 4개월권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라던 매니저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김에 회원권도 4개월로 연장하고 피티도 끊어서 제대로 운동해 보는거야.
그새 상담실에 다시 와 앉아있는 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새벽 운동에 이어 피티까지. 이쯤되면 내 예상을 빗겨나간 것이 너무 많아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매주 화, 목 오전 6시30분에 피티를 받기로했다. 그날만큼은 지각도 결석도 하면 안된다는 뜻이었다. 트레이너는 오티때보단 더 힘들거라고 했다. 지금 내게는 기초체력을 다지는 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맨몸 운동을 많이 할거라고 힘주어 얘기했다. 맨몸운동이라니. 버피나 스쿼트같은 동작들이 떠올랐다. 벌써부터 심장이 아픈기분.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는 듯 카드리더기는 영수증을 뱉어내고 있었다.
곧바로 첫 피티 수업도 진행됐다. 트레이너는 위풍당당하게 스텝 박스를 들고 오더니 내 앞에 쿵 내려놓았다. 그 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게 시켰다. 간단한 워밍업이라나. 그가 말한 간단한 워밍업이 끝나자 똑같은 동작에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런지나 스쿼트 같은 형태의 운동을 연달아 시켰다. 개수는 고작 한 세트에 12개밖에 되지 않았으나, 세 번째 세트 마지막 12개를 끝으로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2주 동안 새벽에 나와 운동을 한다고 해도 격정적인 운동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간신히 일어나 수업 시간에 맞춰 오느라 뭘 먹지도 못한 공복상태. 나는 곧바로 잠깐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트레이너도 새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더니 어서 앉으라고 했다. 무서움이 찾아왔다.
어지럽고 메스꺼운 감각에 대한 일종에 두려움 같은 것이 있다. 중학생 때 이유 없이 여름만 되면 눈앞이 핑 돌면서 쓰러진 적이 두차례나 있었다. 그 뒤로부터 어지러움을 느낄 때마다 또 의식을 잃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 그뿐 아니라 안하던 운동을 갑자기 내 체력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진행했을 때도 이런 증상을 겪었다. 순식간에 속이 안 좋고 어지러워지면서, 손발이 차가워지고 얼굴이 새하얗게 된다.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도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해하는 지경이었다.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런걸 걱정했던 건데.
“회원님 비타민 같은 거 드세요? 야채나 과일 같은 걸로 섭취가 된다고는 하지만, 조리하면서 쉽게 파괴되니까 종합 비티민 같은거 챙겨드세요.”
나는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의식이 희미해지고, 말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저 트레이너는 무슨 비타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걸까. 나는 힘겹게 누워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트레이너는 배드에 누으라고 지시했다. 사실은 쥐구멍에 숨고싶을 만큼 창피했다. 고작 이 정도 운동하고서 이렇게 되는건 말도 안되지 않나? 저질체력도 이런 저질체력이 없지. 너무 수치스러워. 나는 눈을감고 이 감각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트레이너는 내 목을 마사지 하기 시작했다. 이거 뭐 거의 환자가 따로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창피해.
혈색이 돌아오고 다시 고쳐 앉을 수 있는 지경이 되자, 이제 괜찮아요라며 맥없이 일어났다. 나머지 운동도 거의 스트레칭 수준의 강도로 마저 진행됐다. 트레이너는 운동 중에 토하러 가는 회원들도 있었다며 나를 위로하려 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아 그렇군요 라고 멋쩍게 대답했다. 다음엔 좀 더 일찍 일어나서 뭐라도 먹고 와야 하나. 이러나저러나 정말이지 쉬운 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