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시야!”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급하게 찾았다. 새벽 4시.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대망의 새벽 운동을 시작하는 그 첫날이라고 어찌나 긴장을 한 건지, 새벽 2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깼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앞으로 몇시간을 더 잘 수 있는 건지 가늠해봤다. 이 짓을 한 번 더 했다가는 사람 잡겠는 걸. 무거운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익숙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5시 30분. 이제는 진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밤새 잠을 뒤척여서 급격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어두운데 지금 밖에 나가는 건 미친 행위야. 갑자기 이불 속이 더욱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지금 여길 나가면 위험하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는 두 번째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정신없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맞춰 ‘나는 할 수 있다’ 따위의 식상한 주문을 외치며 발딱 몸을 세웠다.
일어나기만 하면 그다음부턴 어떻게든 진행이 된다. 내가 일어났다는 신호처럼 제일 먼저 방에 불을 켠다. 탈칵-하고 백색 형광등이 파르르 켜지고, 안쓰러운 내 눈은 갑자기 밝아진 빛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 양치하러 가는 길이 그날따라 춥고 길다. 이빨도 갑작스러운 찬물 세례에 화들짝 놀라 짜릿하게 시려온다. 모든 감각이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주인이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 걸까. 몸이 한껏 날을 세운 기분.
십 분 만에 나갈 채비를 마치고선 어기적거리며 집을 나섰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시야가 흐릿했다. 게다가 바깥은 집보다 딱 세배는 더 추웠다. 턱이 덜덜 떨려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몸은 더욱더 움츠러들었다. 새벽 운동은 졸음과의 싸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둘째 문제였다. 순식간에 몸을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이 추위가 모든 의욕을 앗아가려고했다.
간신히 헬스장에 도착했다. 실내에 들어오자 안심이 됐다. 언니는 벌써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저녁에 왔을 때와는 달리 헬스장 곳곳이 한산했다. 이것이 새벽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열변을 토하던 언니의 말이 그제서야 이해가됐다.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첫 날부터 오티가 잡혀있었다. 인바디 측정 및 간단한 상담, 기구 사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아침부터 나의 체지방량과 근육량을 확인할 생각을 하자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헬스장만 등록하면 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바디를 측정 받아야 하는가. 한없이 높이 올라가는 체지방량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인바디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트레이너는 간단히 내 식습관과 아픈 곳이 없는지 파악해 나갔다. 나는 허리디스크가 심한 편이라 그 부분에 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충 상담이 끝나자 운동을 시작했다. 간만에 하는 운동이라 긴장이 됐다. 뭔가 격한 동작을 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트레이너는 무리한 동작을 강요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동작이 진행이 잘 안될 때는 운동을 중단시키고 틈틈이 근막 이완 마사지를 해주기도 했다. 30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 정도라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최악은 아니었다.
오티가 끝나고 만난 언니는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추운 날씨가 무색하게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오늘 어땠느냐고 묻는 그녀의 얼굴에 건강함이 가득했다. 아직은 모든 게 얼떨떨하다는 얼굴을 해 보이자, 처음엔 힘들지만 차차 적응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트레이너도 그런 말을 했다. ‘새벽에 나오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그분들이 제일 열심히 다녀요.’ 운동하는 언니를 빤히 바라봤다. 언니 옆에, 그 옆에, 그리고 그 뒤에.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운동하는 사람들.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 내일도 꼭 나와야 해’ 라고 말하는 언니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둘째 날은 첫째 날보다 힘들었다. 첫날의 피로와 아직 습관이 되지 않은 이른 기상 시간이 더해져서 죽을 맛이었다. 습관이 형성되려면 과학적으로 얼마나 지속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딱 2주만 하면 적응된다는 언니의 말을 믿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안 나오면 왜 안 오냐고 혼내는 언니와 고작 삼 일째 나가는 날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오고 있다며 격려해주는 트레이너, 새벽에 운동하는 사람들. 이들은 내게 좋은 자극을 줬고,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성실함을 발휘하게 했다. 그래 눈 딱 감고 2주는 빠지지 않는 거야.
어김없이 두 번째 울리는 알람 소리에 웃긴 주문을 외치며 일어난다. 제일 먼저 방 불을 켜고, 눈이 부셔 인상을 찌푸리고, 추위에 몸서리를 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첫 날만큼 춥진 않다. 몸이 그 루틴을 기억하게 된 건지 알아서 체온을 올린다. 첫 날엔 그저 캄캄하고 무섭기만 했던 새벽의 어둠도 눈에 익어 마냥 어둡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새벽의 어둠은 한 밤중과는 다르다. 곧 밝아질 거라는 걸 암시하듯 미세하지만 푸른빛이 돈다. 그뿐 아니다. 처음엔 어색했던 모든 것들이 어느새 2주 만에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잠들어 있는 골목길, 늘 같은 시간에 만나는 아주머니,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을 태운 버스의 고요함, 헬스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는 포도 향과 열기. 이제는 이것이 내 아침 풍경이 되어 버린 건데, 꽤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