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1. Good times는 항상 지금이란다

by 사랑 머금은 햇살

“아빠, 농구 보고 가면 안 돼요? 올리비아랑?”


아이 엄마가 눈에 다래끼가 생겨서 운전하기 힘들다고, 오후 아이 픽업을 부탁하는 바람에 사무실에서 일찍 나와서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방과후 학교는 항상 아이 반, 엄마 반이다. (물반, 고기반처럼). 아빠가, 그것도 나이 먹은 아빠가 오래 있기에는 좀 뻘쭘한 환경이라서, '아이를 찾으면 바로 차 태워 나와야지…' 하고 도서관에서 아이를 만나자마자 주차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맨날 투닥거리는 올리비아가 따라오길래, '올리비아 엄마는 주차장에 있나 보군…' 하던 참에 아이가 불쑥 슈렉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물었다.


아이가 안 쓰던 존댓말을 할 땐 이유가 있다. 뭔가 허락 안 해줄 것 같은 일들을 물어볼 때 존대를 썼다. 올리비아도 내 눈을 쳐다보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불쌍한 표정으로 "Please~"라고 하는데 별수 있나. '잠깐만 보고가지 뭐.' 난 아이 친구들이 체육관에서 농구하면서 노는 줄 알았었다. “잠깐 이어야 돼.”


두 아이는 신나서 땡큐를 외치면서 체육관을 향해 달려갔다. 체육관은 친구들 응원하러 온 고등학생 오빠, 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관람석에는 학부모들과 학생들로 꽉 차 자리가 거의 없었다. 자리를 겨우 찾아 앉고 옆자리에 앉은 아빠한테 물어봤다.


무슨 경기인가요? 초등학생들 경기가 아니네요?” “이번에 졸업하는 고3 애들하고, 윗동네 A고등학교 고3 애들하고의 고별 경기예요.” 내 아이와 올리비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를 찾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어떤 선수가 젤 좋니?” “저 오빠."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키가 큰, 어디선가 본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학생이 골대 밑에서 슛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His name is Michael. 11th Grade야.” '안 물어봤거든.'




체육 선생의 호루라기 소리로 경기는 시작됐다. 각 팀은 남학생 3명, 여학생 2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벤치에는 각 팀별로 15명가량의 후보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으며, 우리가 익히 아는 퀸의 노래가 체육관 스피커를 찢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블루팀의 멋진 3점 슛이 성공했다.


화이트팀의 반격은 시작되고, 체육관 내부의 온도는 한여름 태양만큼 달아오르고 있었다. 스피커를 쩡쩡 울리던 퀸의 노래는 넓은 체육관을 충분히 달구고 나서, YMCA로 바뀌었다. 그때였다.


주심을 보던 체육 선생님이 갑자기 경기를 중단시키고 경기장 가운데로 뛰어나왔다. 그러면서, 그 우람한 몸집에서 나오는 큰 목소리로 직접 마이크에 대고 YMCA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역시 특유의 익살스러운 매력으로 그 유명한 YMCA 댄스를 직접 추면서. 그리고, 관람석의 부모, 벤치의 후보들, 코트 내 선수들에게 모두 일어나서 같이 추자고 격렬하게 손짓하면서.


난 그저 '경기 중에 이건 뭐지?' 하는 참인데, 부모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하고 체육 선생님을 따라 춤추면서 YMCA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바탕 고래고래 노래하면서 춤을 추며 웃고 있는데, YMCA의 열기가 가시기도 전에, 보스톤 레드삭스의 응원가로 유명한 Sweet Caroline의 전주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관람석은 다시 환호로 가득 찼다. 새 노래의 전주가 스피커를 울리기 시작한 바로 그때, 체육 선생님은 룰 변경을 선언했다.


블루팀은 남학생팀, 화이트팀은 여학생팀으로 바꾼다고 했다. 이건 또 뭔 소리지? 남학생팀 대 여학생팀? 이게 게임이 되나 했는데, 새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이트팀은 여학생이 10명이었다. 내가 바뀐 규칙에 대한 영어 설명을 못 알아들었든지, 아니면, 오래된 학교의 경기 관행이었던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여하간, 블루팀은 남학생 5명, 화이트팀은 여학생 10명, 이렇게 공평(?)하게 총 15명이 뛰게 해 놓고, 체육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퇴장했다.


Sweet Caroline의 하이라이트를 떼창하며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전광판 숫자는 계속 변했지만, 승부는 이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그저 응원과 노래를 즐겼다. 고별경기에서 경기자체보다 응원과 노래가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래. Good times never seemed so good. 좋은 시절이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니면 바로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말 같기도 하다. 어쩌면 둘 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빠 무릎에 앉아, 승부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이상한 (?) 경기를 함께 웃으며 즐겼던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시간이야말로 Good times임을, 내 아이는 시간이 흘러야 알게 되겠지.


"아빠, 빨리 나가자. 마이클 오빠가 나가고 있어. 인사할래." 아이는 흥분했다. 그래. 지금 좋은 때 맞다. 아빠한테도, 너한테도. Good times는 항상 지금이란다. 아빠는 나이 먹고서야 깨달았구나.




* 울트라 슈퍼 늦둥이 아빠의 육아와 교육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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