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남자도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어머니는 도망치는 나를 붙잡아 집근처 피아노 학원으로 데려가셨다. 아들 키우는 엄마들은 아들보다 빠르고 강하다.
빠른 엄마에게 붙잡혀 등록한 피아노 학원은 거의 모두 여자 아이들이었고, 나는 여자 아이들만 배우는 피아노 배우는 게 그렇게 싫었다. 그래도 강한 엄마가 무서워서 꾸역꾸역 학원에 다니다가, 체르니 30번 치다가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지금은 그때 덜커덕 그만둔 것을 그렇게 후회하고 있다. '그때 강제로라도 좀 더 배우게 하시지.'라는 "철없는 불평"을 "철들고 나서" 지금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한테 종종 전하곤 한다.
볼수록 몽당연필 같았던 내 아이의 엄지와 새끼손가락의 한 뼘이 피아노의 한 옥타브 길이와 얼추 비슷해지게 되면서, 난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로 했다. 좋은 레슨 선생님을 때마침 알게 되어 아이의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세상 재밌는 게 많고, 정신 산만한이 날개 없는 천사는 그러나,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도통 피아노 연습을 안 했다.
"아빠, 축구가 더 재밌거든." 알았거든. 근데 축구를 하루 종일 하지는 않거든. 너 대학생 언니되면 피아노가 더 재미있을 거거든.
여러 가지 설득 방법을 고민 끝에 할 수 없이 내가 다시 피아노를 쳐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아이가 피아노에 관심을 가질 때까지.
그리고, 일단 현관 앞에 충전 스테이션을 만들어,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등... 아빠, 엄마, 그리고, 내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잡아먹던 "요물"들은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이곳에 놔두기로 했다. '아빠, 엄마는 더 이상 핸드폰 안 볼 거거든. 너도 유튜브 그만 보라는 얘기거든. 너 심심하게 만들어서 피아노 연습하게 하려는 봉황의 뜻이거든.'
그런데... 피아노 악보를 어디 뒀더라... 먼지가 쌓여있던 다양한 피아노 악보를 책장에서 찾았다. 악보집에 쌓인 먼지 두께가 거진 책 두께와 비슷했다. 어휴.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여하간,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아이는 딴짓하다가도 옆으로 와서 피아노 건반을 뚱땅뚱땅 건드렸다. '아니, 아빠가 피아노를?' 하는 표정으로. 그럴 땐 아무 말하지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징글벨 같은 캐럴이나 당시 한참 즐겨 듣던 At My Worst 등을 쳐줬다. 엄밀히 말하면 멜로디로 치는 시늉을 한 거지만.
내 두 손이 조금씩 악보에 익숙해지면서 단선 멜로디는 화음이 되어갔다. 오른손만의 멜로디가 양손 화음 연주가 되면서, 내가 피아노 칠 때 아이가 옆에 앉는 횟수가 늘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아빠가 연주하니 신기한 것이다. '딸, 제발 연습 좀 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딸아이에게 뭔가 설득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호랑이 축구하던 시절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수사학이 떠올랐다. 수사학(Rhetoric)은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말과 글, 그리고 그 이론을 의미한다. 다른 것은 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설명했다는 것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이의 피아노 연습을 위해서,그 희미한 기억을 다시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로고스는 논리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익숙한 설득 방식이다. "A는 B고, B는 C니까, A는 C다." 뭐 이런 게 로고스다. 파토스는 감정이다. 두려움, 기쁨 같은 다양한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에토스는 신뢰나 권위를 바탕으로 한다. 강연자가 자신의 학력이나 경력을 강조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요소 중 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건 무엇일까?
초등학생 아이를 설득할 때는 파토스(pathos, 감정)가 가장 중요했다. 아이들은 감정에 민감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보다는, 감정적 연결과 공감에 더 잘 반응했다. 어린아이에게 책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할 때, 아빠가 S대 국문학과 교수라는 사실은 아이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우유를 많이 마시라는 말을 할 때 우유가 발육에 좋다는 학술 논문을 인용해봤자다. 그저, "우유 많이 마시면키가 Tara처럼 큰다.Tara는 매일 우유 3잔씩 마신대. 키가 크니까 다리도 길고 그래서 축구 슛도 잘하잖아."가 그나마 잘 먹혔다. (Tara는 초등 5학년 여자아이인데 키가 167cm이다. 나하고 비슷하다. 쩝.)
그런데, 기존 수사학에는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을 정립할 때 빼먹은 것을, 내가 발견했다. 아리스토텔레스한테 자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 아이한테 별로 신경 안 썼던 것이 분명하다.
아이는 아빠, 엄마를 따라 한다.한국에는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부모들에 의해 검증된 "육아 이론"이 있지 않은가.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라는 전문 이론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국인이었다면,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다음에 "냉수"라는 요소를 추가하지 않았을까. (쓰고 보니 나름 괜찮은 거 같다. 로고수, 파토수, 에토수, 냉수. 죄송.)
여하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보완하는 4번째 요소를 나의 '엉뚱 발랄한 천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발견했다. 논리, 감정, 권위. 이 3가지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아빠, 엄마의 "솔선수범"이었다.
아빠, 엄마는 핸드폰만 붙잡고 있으면서 아이한테는 "책 읽어라, 운동해라, 피아노 연습해라."라고 잔소리하면, 아빠, 엄마의 목만 아플 뿐이다. 하지만, 엄마가 늘 책을 읽고 있다면, 아빠가 아침마다 운동하고 출근한다면, 그리고, 아빠가 피아노 연습을 매일 한다면...
아이는 잔소리 안 해도 자연스레 아빠, 엄마를 따라 할 것이다. 아, 그런데, 또 다른 놀라운 발견을 했다. 내가 아침 먹기 전에 콘도 근처에서 조깅을 하기 시작하니까, 그렇게도 운동 싫어하던 아내도 운동화를 신고 뛰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난 그에게 건의할 것이다. 당신의 수사학에 한 가지 기본 요소를 추가해야 한다고. 논리, 감정, 권위에 더하여, "솔선수범". 이제 수사학의 기본 요소는 4개다.
아빠가 피아노 친지 열흘정도 지났을까. 아이는 아빠 없이도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일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