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5. 아빠의 방관, 엄마의 무관심, 강해지는 아이

by 사랑 머금은 햇살

엄마의 하루는 오전 6시 반에 시작된다. 아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토스트가 준비될 쯤이면, 아이의 기상시간이 된다. 오전 7시 15분. 전날 밤, 어떻게든 안 자고 더 놀려고 침대에 인형들을 늘어놓고, 인형들을 재우고 잔다고 칭얼대다가 잠이 드는 내 아이의 기상시간이다.


세수하고, 이빨 닦고, 옷 입고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아 엄마가 준비한 토스트를 먹고, 씽씽이를 타고 주차장까지 이동하면, 7시 50분. 아빠는 차의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엄마에게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다.


아이를 깨우는 일은 내 몫이다. 아이가 침대에 누워 자는 모습은 위층 러시아에서 온 쌍둥이들 얼굴처럼 항상 똑같다. 한 손에는 애착인형을 안고 침대에 댓 자로 누워 있다. 그런데, 분명히 전날밤에는 세로로 누워 잤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날 때는 항상 가로로 누워 있는 게 경이롭다. 어젯밤에도 꿈속에서 세계 여행을 다닌 게 분명하다. 그 와중에 같이 떠난 인형을 품에서 놓지 않고 있는 게 또한 신기하기만 하다.




"딸,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이는 커튼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살에 잠깐 눈을 뜨고, 찡그리면서 다시 햇빛 반대 방향으로 눕는다. "딸, 학교 안 갈 거야? 안 일어나면 아빠가 뽀뽀 공격한다."


"여보, 오늘은 안 일어나면 그냥 놔둬봐." 방에 들어온 아내가 나를 보고 조용히 말한다.

"어떻게 그래? 학교 늦을 텐데."

"그냥 놔둬봐. 지가 친구들 다 앉아 있는 교실에 뒤늦게 들어가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한번 알게 해줘 봐."

"안 돼. 애 그럼 울지도 몰라."

"그럼, 울게 놔둬. 엘라 엄마가 그랬어.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게 해봐야 한다고."


아이의 베스트프렌드 중에 캐나다에서 온 엘라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빠는 캐나다인, 엄마는 프랑스인인데, 아이와 pre-school부터 Grade 3까지 항상 같은 반이어서 자연히 베스트프렌드가 된 아이다. 자연히 엄마끼리도 특별한 관계가 됐다.


"뭔 말이야?"

"지난 수요일에 엘라가 Gym에 가는데, 체조복을 안 가지고 온 거야. 그래서 엘라 엄마한테 전화해서 체육관에 가지고 올 수 있겠냐고 했더니, 단박에 No 그러는 거야."

"왜?"

"말했잖아. 자기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옷 갖다 주기 시작하면 엄마가 당연히 갖다 주는 걸로 알고 애가 안 챙긴다는 거야, 엘라 엄마는 그래서 절대 뭘 안 챙겨준대. 잊고 학교가도."




엘라는 우리 콘도 근처에 산다. 매주 수요일에 체조 체육관에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는 것도 일이라서, 두 엄마는 방과 후 학교에서 체육관 데리고 가는 것은 아내가, 체조 수업 끝나고 데리고 오는 것은 엘라 엄마가 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아이 학원 데리고 다니는 것도 일이니, 이곳 엄마들끼리 품앗이는 필수다. 그런데, 엘라와 딸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엘라가 체조복을 안 가지고 온 것을 알게 된 아내가 엘라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엘라 엄마의 반응이 한국 엄마들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고, 아내는 놀란 모습이었다. 난 대답했다. "알았어. 그래보자고."


아이는 결국 8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아빠, 왜 안 깨웠어? 지금 8시인데. 나 늦었잖아."

"깨웠는데 네가 또 잤잖아. 그래서 일찍 자라고 했지. 이제 안 깨울 거야. 깨우면 뭘해."


"엄마, 내 가방 어디 있어?"

"네가 찾아봐. 자기 전에 잘 챙겨 놓으라고 했지? 아침에 찾지 말고."

아이는 좋아하는 토스트를 먹지도 못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거의 울면서.


"빼먹은 거 없어?"

"없어. 아빠, 빨리 가자."

"그래. 가자."



아이들을 내려주는 학교 주차장에 도착하니, 거의 9였다. 8시 15분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예상대로 주차장에는 다른 엄마들도, 아빠들도, 반겨주는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도 없었다. 사람 없는 휑한 주차장에서 아이는 맘이 급해졌다.


"어떡해. 너무 늦었어, 아빠."

"빨리 뛰어가. 선생님하고 친구들한테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고."


뭐, 초등학생이 수업에 늦었다고 선생님이 그렇게 혼냈겠냐만은,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별 말이 없었다. 늦게 교실 들어설 때 느낀 친구들의 낯선 시선이 그때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었던 걸까.




다음날 아침, 아이 엄마는 깨우지 말아 보라고 했다.

"왜?"

"놔둬봐. 혼자 일어날 것 같아."


7시 15분. 과연 혼자 일어날 것인가. 아내와 기대하며 방문을 쳐다보는데, 어라. 방문이 덜컥 열렸다. 아이는 하품을 하면서 나오더니 엄마가 들으면 너무도 기분 좋은 말을 하면서 식탁에 앉았다.


"엄마, 밥 줘."


세수하고, 이빨 닦고, 옷 입고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아 엄마가 준비한 토스트를 먹고, 씽씽이를 타고 콘도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7시 50분. 나는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집에 있는 엄마에게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그것도 저절로.


아빠가 깨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딸아이는 전날 밤 엄마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 놓고 잤다고 했다. "여보, 엘라 엄마 말이 맞았어. 넘어져도 보고, 혼자 일어나도 봐야 해." 음. 이제 내 삶도 조금 편해지는 건가.


그래. 하긴 엄마가 챙겨주면 끝이 없긴 하지. 시험 성적 잘못 나왔다고 엄마들이 교수한테 전화하고, 취업 시즌엔 기업 인사팀에 전화해서 지원 결과를 묻고, 심지어 군에 간 아들 훈련 빼 달라고 부대에도 전화를 한다는데... 진짜일까. 설마.




"여보, 주말에 얘 아이패드 하나 사주세요. 내 핸드폰으로 하면 알람 소리가 잘 안 들린대요."


그럼 그렇지. 결국 아이는 내 지갑을 열었다. 왜 알람을 아이패드로 해야 하나. 여튼 찬스에 강한 것은 지 엄마 꼭 닮았다.



* 울트라 슈퍼 늦둥이 아빠의 육아와 교육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keyword
이전 14화E14. 50대 늦둥이 아빠는 올해도 산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