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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Feb 27. 2023

내 머릿속 카메라

카메라, 액션!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 많이 듣는 평가 중 하나가 ‘원작보다 못하다’이다. 소설의 흐름이나 내용 자체의 변화로 인한 평가가 아니라면 이는 개인의 상상력 때문이다. 영화는 잘못이 없다!!! 인간의 상상력이 원대함을 어찌하겠는가? 보통 글을 읽으면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소설을 그려낸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으로 여러 물리적 제한이 있는 영화를 접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던 나의 상상과 비교했을 때 다른 부분, 혹은 내 기대를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상상력이 위대한 탓이다.


  얼마 전 독서 관련 뇌과학을 책을 읽으며 꽂힌 키워드가 바로 이 ‘상상력’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는 부분에 ‘상상력’이 포함된다. 유추, 추론의 능력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내가 읽는 생생한 묘사 장면들을 직접 머릿속에서 그려내 나의 기억으로 만든다. 이는 능동적으로 머리를 사용하여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힘들게 책을 읽으면서 애써 그려낸 상상의 기억들은 온전히 내가 만든 나의 기억입니다. 그 기억은 쉽게 얻은 다른 것들에 비해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TV로 본 장면보다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는 뜻이지요. (김대식, <뇌과학 독서법>, 비룡소, p111)


당연히 영상으로 그려진 매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과정과는 다르다. 영상 매체는 구현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고, 그 내용은 전적으로 제작자들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나의 상상력이 아닌 타인의 상상력에 기대어 만들어진 장면들을 내 머릿속에 입력한다. 게다가 내가 흡수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에, 각각의 순간을 나의 속도로 받아들일 찰나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글로 읽은 장면들은 내 머릿속에서 생생히 그려지며, 내가 그려낼 수 있는 최상에서 움직인다. 속도도 조절 가능하다. 음미하고 싶으면 자연히 느려질 테고, 긴박하게 달려야 할 때는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이는 오히려 내 경험의 한계에만 제한된다. 오감을 살려서 상상해야 하는 많은 부분들이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런 제약이 있더라도 타인의 상상력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내가 읽고 내가 그려내고 나의 감각이 살아 숨 쉬게 된 과정이므로 쉽사리 흩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력이 삶에 영향을 미칠까? 소설을 읽든 영상 매체를 보든, 능동적으로 정보를 그려내든 수동적으로 즐겁게 받아들이기만 하든, 우리에게 다른 점이 있을까?

요즘은 Chat GPT로 AI시장의 분위기가 후끈하다. 인공지능은 놀랍기도 하고 심지어 움직이는 커서를 통해 쏟아지는 단어들을 보고 있으니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든 인간들이 더 대단한 게 아닐까? 자신의 경험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현재 언급되고 있는 많은 첨단 기술들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테니. 실제 내가 어린 시절 그렸던, 자율 주행 자동차와 로봇 등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걸 보면 단순히 과학이 이렇게 발달했구나 라는 생각보다 인간의 상상력이 뻗어갈수록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해지겠다는 걸 느낀다. 

  인간은 할 수 있지만 다른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상상력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유창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더라도, 그건 입력값에 따른 결과물이다. 인간의 경험적 제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제다. 같은 글을 인공지능에게 입력시키고 사람이 읽을 때 그 결과물은 천양지차로 다를 수 있다. A를 넣어서 A’만 꺼내는 기술과는 달리 인간이기에 갑자기 A가 B가 되고 C가 되고 혹은 뜬금없이 AA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우리는 독서를 해야 한다.    

상상력이 핵심인 세상에서 나의 역량을 발휘하며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그에 맞도록 뇌를 훈련하는 게 필요하겠지요. 그 훈련으로 가장 최적화된 것이 ‘독서’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요? (김대식, <뇌과학 독서법>, 비룡소, p125)


독서는 이러한 역량을 최대로 끌어낸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종종 난 앞으로 무엇을 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떻게 할 거야, 뭐를 만들 거야. 어른이 듣기에 터무니없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부지기수이다. 생각을 바꿔보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앞으로 그 아이가 살아갈 시대에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나만의 세상을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시대의 최대의 역량을 끌어내주는 게 아닐까? 뇌라는 신비로운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그려낼 수 있게 우리 아이의 독서를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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