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먹다

허리둘레를 줄여주는 맥주 있나요?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을 읽고

by 여르미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여름밤.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면 그건 분명

시원한 맥주일 것이다.

탄산의 톡톡 쏘는 맛과 함께 다가오는

씁쓸한 곡물의 맛.

그 첫 모금을 딱 마시고 나면 세상 편해진다.

안심이 된다.

이제 마음 놓고 쉴 수 있겠구나.




대부분의 술이 그렇듯이 맥주도 종류가 참 많다.

필스너와 앰버, 레드 에일과 브라운 비어,

밀 맥주와 호밀 맥주, 스펠트 맥주 등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할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단 돈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저렴한 캔맥주부터

샴페인처럼 빈티지 병에 코르크로 막은

고급 맥주도 있다.




쓰거나 달고, 부드럽거나 독하며,

향이 강하거나 드라이하고,

다크 하거나 라이트 한 맥주가 우리를 기다린다.



자. 어서 와.

빨리 와서 나를 마셔봐.








맥주는 왜 그럴까?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의 저자는

맥주 비평가다.

그는 맛을 글로 번역하는 사람이고,

'왜'라고 질문하기보다는

'무엇'인지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맥주의 맛을 평가하다가 문득

맛 그 이상을 알고 싶었다.

맥주의 기원을 파헤치고 싶었다.



'무엇'일까 하는 생각은 이미 할 만큼 했다.

이제는 '어디서' 그리고 '왜'를 알고 싶었다.

맥주는 왜 그런 맛이 날까?

맥주는 어디에서 처음 생겨났을까?

이 책은 저자의 이러한 궁금증을 따라

떠나는 맥주 여행기이다.








맥주의 시작




인류가 존재해온 시간만큼 맥주도 존재했다.

무려 1만 년 전부터 말이다.

인류는 맥주에 흠뻑 빠져 있었다.

예전 조상들에게 맥주는 안전한 물이었고,

필수 비타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식량이었다.



또한 맥주는 인류가 처음으로 기록한

'레시피'이기도 했다.

맥주는 레시피가 필요한 최초의 음식이었으니까.

이렇게 맥주는 '만들어진' 음료라면

와인은 다르다.

와인은 우연히,

포도가 발효되어 만들어진 음료였다.

하지만 맥주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곡물이 발효해 알코올이 된다.

한마디로 창조자가 필요하다.






최초의 맥주는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맥주는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메소포타미아 창조 신화에서 발견된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인류는 이 시기부터 농사를 짓고

곡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곡식은 건조되면 인간이 먹기 힘들었다.

따라서 맥아를 만드는 법이 필요했다.

이 맥아는 곡식을 빵으로 바꾸어 주었으며,

또한 곡식을 맥주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기원전 2400년 그림을 보면

사람들은 곡식을 갈고 섞어,

빵 덩어리를 만든다.

그 후 이 빵을 물에 적셔

맥주를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



즉, 그 시기에 빵은

구워서 건조한 맥주였고,

맥주는 걸쭉하게 만들어

발효한 빵이었다.



맥주를 만드는 벽화




이 책의 가장 재밌는 부분은 저자가 직접

고대 맥주를 만들어보는 대목이다.

그는 양조할 때 넣을 야자열매, 캐모마일,

이집트 밀, 포자 등을 준비했다.



그런 뒤 3800년 전에 쓰인

맥주 레시피를 참고해 만든다.

이 레시피에 따르면,

곡식을 발아시키고 건조한 뒤,

반죽으로 만들어 빵을 굽는다.

그 뒤 이것을 땅 구덩이 안에 넣고

꿀과 달콤한 향료를 함께 섞는다.




그렇게 만든 '고대 맥주'는

약간 달면서 묽었다.

그러면서 신맛이 강하고 탄산이 없었다.

(한마디로 맛이 없었다 ㅋㅋ)



이렇게 시작된 고대 맥주는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에선 엄청난 양이 제조된다.

한 양조장은 매일 약 1200리터의 맥주를 쏟아냈다.

이 맥주는 노동자들에게 배당되었다.




한편 귀족들은 고급 맥주를 마셨다.

사용한 곡식에 따라

화이트 비어, 레드 비어, 블랙 비어로 나뉘었고

술을 내올 때 술에 물을 얼마나 탔느냐에 따라

단 맥주, 아주 단 맥주, 심지어는

"허리둘레를 줄여주는 맥주"도 있었다.




향신료도 점점 더 첨가됐다.

힘든 향신료를 사용한 맥주일수록

더 특별해졌다고 한다.

맥주 맛은 후추와 무에서 바질과 타임,

스파이시한 맛과 꿀의 달콤함이 자주 첨가되었다.

(고대 맥주는 시큼한 맛이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라거의 탄생



요즘 수제 맥주가 인기긴 하다.

이러한 수제 맥주의 특징은 '일회성'이다.

희귀하고 까다로운 한정판들.

그런 희귀품을 마시려고 기꺼이 줄을 서는

애주가들이 있다.

한편 버드와이저 같은 대중적인 맥주는

정반대다.



하지만 수제 맥주만이

위대하다고 생각한다면,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에 대한

명언을 떠올려 보자.



콜라는 콜라일 뿐,
돈을 더 낸다고 해도
뒷골목 부랑자들이 마시는 콜라보다
더 맛있는 콜라를 구할 수 없다.

모든 콜라는 다 똑같이
맛있다.






라거가 세계를 평정해왔다.

수제 맥주의 힘이 강력해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대부분 대중적인 라거와

소박한 라이트 맥주를 마신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중국의 설화 맥주로 페일 라거다.



설화맥주. 마셔보고 싶네요.




어떤 면에서 페일 라거는

맥주의 최고 성과라 할 수 있다.

밝고 스파클링 한 맥주를 만드는 건

고대 수메르인들의 소망일 정도였으니까.

애주가들은 맥주가 옅은 색의 산뜻한 바디감을 지닌

가벼운 맥주이길 소망해왔다.

마침내 페일 라거에서 원하던 것을 찾았다.



짚 색을 띠는 황금색 바디에

눈처럼 흰 헤드 거품.

가볍고 잘 넘어가는 목 넘김.







라거의 특징은 독특한 양조기법과

효모의 다양성이다.

'라거'는 심지어 맥주가 아니라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라거라는 단어 자체가 '저장하다'라는 뜻에서 왔다.

라거는 시원한 곳에서 오랫동안 느리게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예전 수 세기 동안 라거는

전반적으로 꽤 어두운 색이었다.

샴페인처럼 톡 쏘고 상쾌한 맛을 낼 수는 있었지만

심지어 흑맥주처럼 새카맸다고 한다.

이러한 라거는 오스트리아의 드레허라는 인물을 통해

"흰 거품이 이는 호박빛" 음료로

재탄생했다.

(그는 "맥주왕"이라는 별명도 얻고,

의원직까지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맥주 만만세!)




이후 라거는 독일의 그롤에 의해

더욱 완벽해졌다.

좋은 품질 보리, 가벼운 홉(곡물 이름), 연수를 통해

완벽한 맥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필스너의 탄생이다.

이 필스너는 유럽에 이어

전 세계를 장악하게 된다.




이윽고 이 맥주는 미국으로 건너와

옥수수가 첨가되면서,

최종적으로 라거의 상큼한 맛이 탄생했다.

보리보다 전분이 많고 알갱이에 껍질이 없어

씹고 나서도 타닌 맛이 적은,

다시 말해 풍미가 덜한 맥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맥주는 최고의 인기를 얻었는데,

1850년대 그 당시 맥주 광고는

"호박빛 라거의 부드러움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건강과 힘을 선사한다"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고 한다.

실재 광고에는 아이들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

그려져 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의사들도 라거가 여성과 병자들에게 좋다고 주장했고,

변비를 방지해준다고 여겼다.




사실 라거의 가장 큰 선물은

잡담을 떨 수 있다는 것이었다.

라거는 가볍고 상쾌해

하루 종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밝은 낮에 밖에서

천천히 음미하며 맥주를 마셨다.

바야흐로 비어 가든 beer garden 시대가

온 것이다.







맥주 책을 읽다 보니,

역시나 맥주가 마시고 싶어 진다.

나는 주로 라거, 그중에서도

하이네켄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 맥주가 불필요한 맛이 가장 적고

깔끔하기 때문이다.

(혹시 옥수수가 들어간 걸까??)



한국 맥주 대부분이 라거이고,

전 세계 맥주 70프로 역시 라거다.

그리고 라거 중 더 강하고

쓴 맛이 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은 필스너다.

스텔라 아르투아가 여기 속한다.



묵직하고 신맛 혹은 느끼한 맛

(나는 그렇게 느낀다 ㅋㅋ)이 강한 맥주들,

즉 에일은 나랑 왠지 잘 안 맞는다.

호가든, 기네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이렇듯 맥주의 역사와 맛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신나는 책이다.

좀 집요하다시피 조사하는 경향이 있어

살짝 지루하긴 하지만,

맥주를 즐겨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맥주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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