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마음의 덩어리를 떼어내는 것

<천 개의 파랑>을 읽고

by 여르미

어찌 됐건 작가의 첫 수상작이다. 남다른 애착이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또한 천선란 작가는 개인적인 아픔 또한 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팠다. 치매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작가가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걸' 유일하게 기억했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데 말이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 썼다. 엄마도 안 잊은 꿈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작가는 소설 쓰는 것이

어렵고도 즐겁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가장 큰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누군가를 잃었을 때일 것이다. <천 개의 파랑>은 이러한 이별을 우리가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지, 좌절이나 이별, 슬픔. 이런 감정들을 이겨내고 우리가 어떻게 행복해져야 하는지. 그 과정을 담았다. 로봇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 콜리 이야기를 통해서.







로봇 콜리






이렇듯 로봇 콜리는 감수성이 예민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이다.

세상의 작은 차이도 알아보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주 아는.

바쁘게 달릴 줄만 알지

계절이 바뀌는지, 하늘이 어떤 색인지

알지도 못하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우리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






경주마 투데이




투데이는 안락사가 예정되어 있는

경마장의 경주마였다.

그리고 로봇 콜리는 투데이의 기수였다.

둘은 서로 교감했고 좋은 팀이었다.

당연히 성과는 좋았다. 늘 일등이었다.



하지만 속도에는 대가가 따른다.

투데이는 빨리 달린 대가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다.

연골과 관절이 다 닳아버린 것이다.

투데이는 이제 아주 천천히,

다치지 않을 만큼

느긋하게 달렸다.

따라서 경주마로서 쓸모가 없는 투데이는

안락사가 결정되고 만다.






그리움





<천 개의 파랑>의 주인공은 더 있다.

바로 엄마 하나 딸 둘의 편부모 가족으로

동물을 좋아하는 언니.

로봇을 좋아하는 동생.

그리고 남편과 얼굴을 잃은 엄마가 나온다.




로봇 콜리는 경주를 하다가 낙마한다.

그래서 부서진 콜리를 여동생이

싸게 사서 집에 데려온다.

그런데 사실, 엄마는 로봇을 싫어했다.

로봇 때문에 아이들 할머니는

직장을 잃었던 것.

그녀는 자신의 삶에 로봇이,

새로운 기술이 끼어들지 않길 원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로봇 콜리를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엄마는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로봇 콜리와 대화하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과거에서 벗어난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천선란 작가와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 생각이 났다.

그녀는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의 덩어리를 떼어내고 있을 것 같아서)






행복. 지금 행복해져야 그리움을 이겨낸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어봤자

그리운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남편이 죽은 이후로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자신도 잊은 채로 정신없이

두 딸아이를 키웠다.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천선란 작가는 말한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흐른다.

행복을 타고.





인간 중심 세상





한편 천선란 작가는 인터뷰에서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고 스스로를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동물 학대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천선란 작가는 <천 개의 파랑> 속에서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수의사를 등장시켜

동물을 학대하지 말라고,

인간의 오만함이 문제라고 외친다.







이런 이야기들을 담은 <천 개의 파랑>은 세계관이 넓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우리에겐 아직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 있으니까. 경주마 투데이처럼 빠르게 달리지만 말고, 가끔은 천천히 걸을 필요가 있다. 하늘도 올려다보고 이 하늘빛이 무슨 색인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천천히 걸어야만 길가의 작은 개미를 밟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속도는 늘 많은 것을 희생시키고 마니까.




사실 아주 재밌게 읽은 작품은 아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주인공의 마음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SF라는 장르 선입견을 끼고 봐서 그런지, 좀 SF답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성장 소설 같다. SF 소설 특유의 독특한 설정이 없다. (가령, 로봇 애완동물을 키운다든지, 아니면 기억을 완벽하게 열어볼 수 있다든지, 감정을 구매할 수 있다든지) SF는 그런 장치를 통해 현실에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쉽게 풀어낸다. 그런 게 없어보였다.




하지만 천선란 작가의 세계관이 진지하니까. 다음 단편집을 한 번 읽어볼 계획이다.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하는 내 소설 취향이 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이다. 어찌 됐건, 요즘 SF 소설들은 읽을거리가 풍부해서, 언제나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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