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르미 Mar 05. 2021

취미가 직업이에요

<읽는 직업>을 읽고



이게 참 궁금할 때가 있다.

나는 읽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면, 읽는 게 직업이 되면 어떨까?

좋을까? 싫을까?

취미는 직업이 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별로일까?




<읽는 직업>의 저자는 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자이다. 이 출판사가 낯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로 인문쪽 책을 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있고 (느낌 오시죠? ㅎㅎ) 최근 베스트셀러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있다.




즉, 꽤 만만치 않은

인기 없는 책들을 낸다.

소신 있는 출판사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출판사이다. ㅋㅋ)




사실 편집자라는 직업만으로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았는데,

이 책의 머리말은 심지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거의 책대로

살게 된다.

(쿵! 내 마음이 내려앉는 소리!)




책대로 사는 사람. 그건 책을 쓰는 저자도 마찬가지지만, 편집자들 또한 흔히 그러하다고 한다. 요리 책을 편집할 때는 직접 요리해 보고, 자수 책을 읽을 땐 자수에도 도전해 본다. 저자의 경험이 글이 되면 그것을 읽은 편집자는 해 본다. 경험해본다. 그건 행동뿐 아니라 생각도 마찬가지여서, 불평등에 관한 책을 편집하면 또한 불평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편집자의 일







편집자의 일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출판은

비지니스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애정 하는 작가가 있다. 하지만 책이 잘 안 팔린다.  또한 작가의 글이 언제나 같진 않아서, 특히 노년에 이른 작가들은 글이 어려워지는 사람도  있다. 독자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편집자는 그 사이, 대중성과 비지니스, 작가의 글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사이가 안 좋게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편집자들은 지칠 줄 모르고 작가들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사람보다 글을 먼저 만나기 때문이다. 서로의 첫인상과 신상을 파악하는 걸 생략한 채, 곧바로 생각의 핵심인 글을 먼저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속도도 빠르고, 관계의 밀도도 높다. 헤어지면 그만큼 커다란 내상도 입는다. 작가와 이별 후 또 남는 건 한 권의 책. 사라지지 않는 추억처럼 남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게

편집자의 일이다.







독자는 앙상하지 않다






책은 상품이다.

상품은 상품평에 민감하다.



요즘 독자들은 빠르고 단호하다. 자주 환호하고 실망한다. <읽는 직업>에 따르면 요즘에는 제목과 목차를 빠르게 훑은 뒤 '다산 정약용' '자본주의' 같이 흔한 주제가 나오면 읽기도 전에 '독창성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오.. 까다로운데;;)





저자는 읽지 않고 서평 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인터넷 서점 책에 별 하나를 매기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김빠질 것 같긴 하다) 그러면 책을 읽고 서평 하는 이들은 어떨까. 저자는 그들에겐 좀 더 자유를 준다.




자기 돈, 시간, 열정을 투입했으니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말하시오.

(진짜? 근데 나는 솔직히..

책에 악플을 달아본 적은 없다

그냥 리뷰를 안 한다.  맘 약한 독자임;;)




예전,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독자는 상대적으로 침묵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불평불만은 즉각적이지 않았다. 책을 읽은 뒤 느리게, 멀리서 들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가. 우리는 책 한 권 읽고 나면 소란에 난리 법석을 떤다. (저요. 저. ㅋㅋ) 그러기에 점점 더 상품평, 서평에 편집자와 저자는 민감할 수밖에 없으리라. (작가와 편집자는 왠지 여러모로 옛날을 그리워할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이 지나면 못 읽어요




한편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하는 이야기들도 참 재밌다.

이 책은 저자가 편집했던 책과

작가들 이야기도 나오지만

다른 다양한 책 이야기도 나온다.



그중, 뒷북치는 독서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저자는 젊은 시절 정치 책만 주구장창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 유행했던 소설 등, 하루키나 박완서 작품 등을 못 읽고 지나쳤다. (당연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젊은 시절 읽어야 할 책들을 나이 들어 읽으면, 아무래도 그때 느껴야만 하는 그 감성과 생각들을 똑같이 느끼기 힘들다.



 시기가 지나버린 것이다.






취향은 좁다.

자기 발목 잡을 때가 많다.

책을 많이 읽으면 뭐 하나.

매번 비슷한 책만 읽는다.

가끔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 시기에 읽어야 하는

대표작을 읽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읽기는 점점 더 영악해진다고 한다. 그것이 독서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더 많은 책을 읽을수록, 독자로서 순진하고 순수한 상태로 남아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 읽지 않고 지나온 책들을 성인이 되어 읽기는 힘들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삶도 독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읽는 직업을 가지면

행복할까?

<읽는 직업>을 읽어보니

행복한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노력 끝에 얻는

조금 고통스런 행복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만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만화를 그릴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만화책 편집자가 되었다.




문득 편집자가 된다는 것은,

쓰고 싶지만 쓰기 힘든 사람들이,

혹은 쓰는 것보다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복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 생각엔 편집자들은

결국 쓰게 된다.

일기든 뭐든. 저자도 봐라.

결국 쓰지 않았나. ㅎㅎ)





+ 글항아리 편집자신데 왜 마음산책에서 출판하셨을까? 신기했다. ㅎㅎ


+ 읽어본 글항아리 책 중 재밌게 읽은 베스트 3를 추천해봅니다.

<생명의 도약>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철학의 이단자들>



매거진의 이전글 우선순위가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