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답을 찾길 원한다. 하지만 보통은 외부, 즉 타인, 책 등에 매달린다. 하지만 외적 상황들은 내적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칼 융은 이와는 달랐다. 그는 고민해결을 위해 자신의 내부로 들어간 사람이다. 특히 꿈의 해석을 통해서 자신의 무의식을 파해쳤고, 그 내용들이 여러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또한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외적 사건보다 내면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몽상가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가난했지만 똑똑했다.
그리고 종종 자신만의 비밀에 몰두했고
그것을 탐색하는 것을 즐겼다.
즉, 항상 무언가 신비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11살 무렵, 김나지움이라는
우리로 치자면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여기서 인생을 바꿔놓을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소년에게 갑자기 한 대를 맞았는데
충격으로 쓰러지고 만 것.
그런데 문제는 이 때의 충격으로
신경증 발작이 생겨버린 것이다.
어린 칼 융은 그제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고 한다.
아,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 후 융은 진지한 아이가 되었다.
발작은 계속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몇 주 뒤 발작은 점차 나아져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이러한 신경증을
융은 어린시절의 체험으로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를 더욱 꼼꼼한 사람으로,
성실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게 된다.
(그리고 아마 이 때의 경험이
그를 정신과의사로 이끌기도 했으리라)
종교에 대한 생각
한편 이 시기에 칼 융은
또 하나의 중요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는 등굣길에서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즉, 자신을 2개의 나로 느꼈다.
한 자아는 그의 현실 모습 그대로이다.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 없는 학생,
그런데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게 느껴진다.
그는 위대한 권위를 지녔으며
중요한 인물로 18세기에 사는 노인같은
이미지로 느껴진다.
어찌됐건 융은 어린시절부터
참 남다른 감수성과 예민함을 지녔다.
또한 그의 이런 생각들을 자극하는 건,
아버지가 목사이기도 했던
가족 환경 탓도 컸다.
칼 융은 평생 신이 궁금했다.또한 신은 착하고 아름다운 존재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를 괴롭혔다. 그것은 죄였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지면 안 되는 원죄와 같은 생각. 그는 자신이 저주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바들바들 떨었다고 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노년까지 이어지게 되고, 결국 칼 융의 핵심 사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