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일상의 기록 10편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특정 활동 참가 여부를 부모가 정하는 신청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걸 가지고 놀고 싶어해서 가짜 신청서를 하나 만들어줬습니다. 아빠가 관심을 둘째에게 두니 자연스럽게 큰애가 끼어들고 싶어합니다.
육아란 무엇인가란 글에서 밝혔다시피 습관적 혹은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어릴 때 받았던 '통제 명령'이 등장합니다. 아내덕분에 배운 노하우가 가끔 발휘되어 둘 다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고안했습니다.
한글 배우는 용도로 쓰는 자석판이 버려져(?) 있었는데, (펜을 빼앗아 대신 써주려 하던) 큰애에게 주며 둘째에게 글자를 알려주라고 합니다.
우후.. 뿌듯한 순간입니다. 형아가 보여준 예시를 보고 둘째가 글씨를 따라 그립니다. 어리기도 하지만, 큰 애와 달리 글자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둘째라 형을 따라하는 일이 놀이가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인터럽트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일을 차단하려고 행동하는 습성을 유지해서 언성을 높이거나 갈등 유발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그런 관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정신을 차리는 동안은 '올 것이 왔다'고 받아들입니다. :)
큰애가 방금 전 상황을 잊고 펜을 빼앗으며 다시 다툼이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퍼실리테이팅이 효과를 발휘해야 합니다. 사실은 일터에서 퍼실리테이팅은 주로 제몫이니까, 이걸 활용해보자고 스스로 각오하는 논리죠.
제가 이 돌발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꿔놓는 발언을 합니다. 이제 순서를 바꿔서 동생이 바라는 것을 말하면 형이 그걸 써주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합니다. 다행히 둘은 모두 만족하며 '좋아' 를 연발합니다. 늘 성공하는 일은 아니지만, 일터에서 연마한 퍼실리테이션 노하우가 이번에는 먹혔습니다.
둘은 꽤 평화롭게 역할 분담을 하며 얼마 후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퍼실리테이션 과정을 통해 저와 아이들은 함께 추억을 쌓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다뤘지만, 그 부산물로 저는 아주 조금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아하면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시켜야 하는 방향성을 말하지만, 저는 육아 과정에서 부모가 성장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른스럽지 못한 부모가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는 일이 가능할리 만무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