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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수준에서 AI에 따른 직업의 변화를 면밀히 보자

인공지능 길들이기

by 안영회 습작

<듀얼 브레인> 5장(章)[1] <동료로서의 AI> 중에서 앞부분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담습니다.


인공지능에 의한 인력 대체는 실리콘 밸리의 사업 계획

'영향을 미칠'이라는 표현은 꽤 온건합니다. 주목을 끌기 위해 '일자리를 잃는다'는 기사들이 이미 넘쳐나죠.

사람들이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할 때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AI가 자신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그 대답은 아마도 '그렇다'일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설명은 최근 SNS에서 접한 아래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처럼 떠받드는 실리콘 밸리가 자금을 쏟아붓고 드라이브하고 있기에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직관적인 의견이 아니라 진지한 연구 결과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The Future of Jobs Report 2025>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수준에서 직업의 변화를 면밀히 보자

저자도 믿을 만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직장에서의 AI 혁명은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에서 시작됐던 이전의 자동화 혁명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띤다. 경제학자 에드 펠튼Ed Felten, 마나브 라지Manav Raj, 롭 시먼스Rob Seamans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AI의 능력은 보수가 높고, 창의성이 많이 필요하며, 근로자의 교육 수준이 높은 직업과 가장 많이 겹쳤다. 이 연구에서 대학교수는 AI와 겹치는 상위 20개 직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내 직업인 경영대학원 교수는 2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겹치는 업무가 가장 많은 1위 직업은 텔레마케터였다. 조만간 자동 안내 전화는 훨씬 그럴듯해지고, 로봇 같은 느낌은 한결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텔레마케터를 인공지능 챗봇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제 주변에서 직접 관찰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계속해서 다음 글을 읽다 보면 AI 대부 제프리 힌튼 교수가 '배관공만 살아남는다'라고 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목록을 보면 AI와 겹치지 않는 직업이 주로 몸을 써서 일하고,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AI에 몸체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AI의 발전이 로봇의 진화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런 추세도 곧 바뀔 수 있다.

그리고, 테슬라가 만든 옵티머스에 이어 중국의 휴머노이드 대량 생산기술 발전을 보면 과거의 로봇 개발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직업의 특성과 관계없이, 우리가 하는 일은 가까운 미래에 AI와 중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Al로 대체된다는 뜻은 아니다. 왜 그런지 이해하려면 직업을 다양한 수준에서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사회 변화는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믿음에 기초한다

저자의 글은 공포에 사로잡히는 대신에 변화를 직시하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업무의 일부가 없어진다고 직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동 공구가 목수라는 직업을 없앤 것이 아니라, 그 덕분에 목수가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됐다. 스프레드시트 때문에 회계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회계사의 업무 처리 속도가 높아졌다.

저자의 냉철한 글과 글 쓰기 태도는 흡사 <팩트풀니스> 저자를 연상시킵니다.

이것 말고도 고려해야 할 측면이 또 있다. 직업이 속해 있는 시스템도 각 직업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영대학원 교수라는 직업에는 종신 재직권이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 이 말은 내가 하는 업무가 모두 Al에게 위탁되더라도 나를 쉽사리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가 결국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믿음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AI가 나보다 강의를 더 잘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학생들이 AI에게 수업을 듣고 싶어 할까? 강의실 환경이 AI가 진행하는 수업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대학 학장은 AI가 수업하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일까? AI가 가르치는 수업 때문에 대학 순위를 매기는 잡지와 사이트가 우리 학교를 낮게 평가하지는 않을까?

마침 지인 소개로 보게 된 '얀 르쿤'의 깊이 있는 인터뷰 영상을 보는데, '노동 현장의 보수적 특성'을 고려한 의사 결정에 대한 말이 나옵니다. 앞서 인용한 트윗이 대표하는 자본과 연구자들이 끌고 가는 미래상에 반해 기존의 노동 현장은 자신들의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아무튼 직업의 대체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AI가 내 업무를 자동화한다고 해도, 내 직업이 속한 시스템에 미칠 영향은 정확히 가늠하기가 어렵다.


HR 업무에서 평가를 맡기는 일은 위험할까?

여기서부터는 <동료로서의 AI> 중에서 <업무와 들쭉날쭉한 경계>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담습니다.

실험 데이터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상적이면서도 다소 걱정스러운 점이 발견됐다. 우리는 컨설턴트들이 직접 과제를 수행하면서 AI의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AI가 대부분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험 참가자 대부분은 주어진 질문을 그대로 AI에게 전달했고, AI에게서 아주 좋은 답을 얻었다. 5장에서 설명한 MIT의 경제학자 샤케드 노이와 휘트니 장의 글쓰기 실험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는데, 참가자 대부분은 AI가 답변으로 제시한 결과물을 편집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이는 사람들이 AI를 처음 사용할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AI와 함께 일할 때는 위험이 따른다. 우리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 위험도 있지만, AI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글을 쓰며 같은 내용을 다시 읽으니 다른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비효율이 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최근 대화에서 어떤 CEO가 정성적 인사 평가가 아닌 정량적 기준에 따른 평가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는데, 다음 글은 그 내용을 연상시킵니다.

AI가 할 수 없는 과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해하기 쉬운 데이터와 까다로운 통계적 요인을 결합해, 결국 AI가 해결하기 힘든 과제를 만들어 냈다. AI의 도움을 받지 않은 집단은 정답률이 84퍼센트였지만, AI의 도움을 받은 집단은 정답률이 60~70퍼센트에 그쳤다. AI를 사용했을 때 더 나쁜 성과를 낸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리 연구팀의 일원인 파브리지오 델라쿠아는 다른 논문에서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역효과를 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성능이 뛰어난 AI를 사용하는 채용 담당자들에게서 게으르고, 부주의하며, 판단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들은 일부 뛰어난 지원자들을 놓쳤고, 성능이 떨어지는 AI를 사용했거나 아예 AI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안 좋은 결정을 내렸다.

당시 같은 테이블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다수는 정성적 인사 평가가 '현실적'이라고 믿는 눈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성적 인사 평가가 효과적인 일인지 항상 의구심을 느껴 왔습니다.

분석 결과, 성능이 뛰어난 AI를 사용한 집단이 성능이 떨어지는 AI를 사용한 집단보다 더 안 좋은 성적을 냈다. 뛰어난 AI를 사용한 사람들은 이력서를 검토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덜 들었고, AI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또한 시간이 흘러도 역량이 향상되지 않았다. 반면 성능이 떨어지는 AI를 사용한 사람들은 더 주의 깊고, 비판적이며, 독립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AI와 상호작용하는 능력은 물론 자신의 기술까지 향상했다. 델라쿠아는 AI의 성능 수준과 인간의 노력 사이의 상충 관계를 보여 주는 수학 모델을 만들었다. AI의 성능이 뛰어나면 인간이 굳이 열심히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데, 이는 인간의 학습, 기술 개발, 생산성에 해를 끼칠 수 있다. 델라쿠아는 이런 상황을 "운전석에서 잠들기"라고 불렀다.

저자는 이를 확대 해석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HR의 인사 평가와 다른 업무가 비슷한 결과를 낳을까요?

성능이 뛰어난 AI는 컨설턴트들이 운전석에서 잠들게 해 중요한 순간에 큰 실수를 할 가능성을 높였다.


인공지능의 들쭉날쭉함(jaggedness)에 적응하기

최근 <인공지능으로 구축하는 월드 모델과 들쭉날쭉함의 원인>에도 등정하는 'jaggedness'에 익숙해지며 점점 인공지능의 들쭉날쭉함이 적응의 문제로 보게 되는 듯합니다.

AI가 일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에는 경계에서 해당 작업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경계의 모양이 바뀜에 따라 인간과 AI의 상호작용이 변화하는 양상을 이해하는 과정이 작업할 때 항상 AI를 초대한다는 원칙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l를 꾸준히 활용하다 보면 들쭉날쭉한 경계의 모양과 이것이 직업을 구성하는 고유의 직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AI의 강점과 우리의 약점이 잘 조율되도록 신중하게 고려해서 AI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지루한 일은 덜 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시의 역량을 활용하되, 인간이 그 과정에 계속 개입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다.


주석

[1]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글 장()의 구성원리를 한자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듀얼 브레인>을 읽고 쓰는 글

1. AI 시대의 실용적 생존 가이드

2. AI알못 입장에서 이해한 RAG와 RLHF 효용성

3. 외계 지성의 위한 인공 윤리 준수와 통제의 필요성

4. 인공지능을 공동지능으로 길들이는 네 가지 원칙

5. 자신의 역량을 증강시키는 도구를 만들어 온 인류

6. AI는 저장된 기억을 검색하지 않고 패턴에 의존한다

7. AI의 환각을 일종의 수평적 사고로 보자

8. 모든 브레인스토밍은 항상 AI를 활용한다

9. 인공지능은 새로운 표현 방식과 언어를 제공한다


지난 인공지능 길들이기 연재

(12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2. 인공지능을 공동지능으로 길들이는 네 가지 원칙

13. 자신의 역량을 증강시키는 도구를 만들어 온 인류

14. 데이터 인터페이스로서 LLM이 갖는 중요한 역할

15. 인공지능이 그린 자아 이미지 그리고 다이어그램

16. AI는 저장된 기억을 검색하지 않고 패턴에 의존한다

17.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정보의 조합과 응용 과정

18. AI의 환각을 일종의 수평적 사고로 보자

19. AI 환각과 확률론적 모델링의 근본적인 한계

20. 인공지능은 언어적 일관성에 의존하는 새로운 지능이다

21. 모든 브레인스토밍은 항상 AI를 활용한다

22.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은 먼저 온 미래였다

23. 포토샵 대신 나노바나나로 갈아타는 첫 발을 떼다

24. 페르소나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재주를 모방하기

25. 다음에 나오는 단어를 예측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가?

26. 인공지능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을까?

27. 인공지능은 새로운 표현 방식과 언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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