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잇zine 3호 -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연말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의 회고, 그리고 중국에서 4년간 일하다가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돌아오면서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에 복귀한 회고를 해본다. 그리고, 마무리는 올해 가장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꼽아본다.
1. 재무 위기 극복
작년에 이어 올해도 스타트업답게 '돈을 태우는' 한 해였다. 올해도 이어진 코로나 변수로 인해 여전히 왕래가 불가해 중국 시장을 무대로 하는 서비스 성장을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재무는 냉정한 현실이기에, 일 년이 넘게 이어진 지난한 투자 과정은 실행하는 동료들을 지치게 했다. 그마나 기쁜 소식은 우리 회사의 재무 상태가 10월에 바닥을 찍은 후, 연말을 앞두고 드디어 상승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 만남이 주는 기회
코로나로 인해 사람 만나는 일은 조심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올해 훌륭한 만남이 있었다.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두 분을 언급하고 싶지만 이는 사려깊지 못한 처사가 되어 글로 남기지 못한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을 헤쳐가느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좀 더 사회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만남속에서 귀를 열어 좀 더 세상의 소리를 듣는 방법도 배웠다. 내년에는 그러한 고마움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노력을 해야겠다.
3. 인간, 조직 그리고 생태계
올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활동을 하는 증에, 어떤 조직의 수장이 던진 '디지털 전환에는 관심이 없다'라는 말에 매우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명감 넘치는 직원들은 어쩌란 말인가?
조직은 인간으로 구성된다. 매출과 비용으로 조직의 활동을 볼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조직을 구성하는 인간을 넘어설 수는 없다. 나는 내면의 실망과 그로 인한 분노를 극복하기 위해 더 큰 대상을 벗으로 삼기로 했다. 나는 앞으로 한두 개 조직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여정에 함께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가 실패하면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우리회사의 사명을 실천하는 동시에 내가 갖고 있는 전문가적 소신과 역량이 '희망'을 만드는 일에 전념할 생각이다.
4. 한국의 로드 존슨 말고 마틴 마울러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토비의 스프링 3.1> 저자 이일민 씨와 한국 스프링 사용자 모임(KSUG)을 운영할 때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네가 한국의 로드 존슨(Rod Johnson) 해, 나는 에이드리언 콜리어(Adrian Colyer) 할게.
아마 당시 함께 운영하던 KSUG에서 자신이 기술을 책임질 테니, 그 외의 것들은 나더러 맡으라고 한 말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 로드 존슨은 나의 롤 모델이 아니었다. 나는 2004년 무렵, 대규모 해군 프로젝트에 (당시로서는 무모하게) 오픈소스인 스프링 프레임워크를 적용하면서 로드 존슨을 만났다. 물론, 실물이 아니라 인터넷 상에 올라간 그의 코드와 코드를 올리는 수정 이력(SVN)으로 만난 것이지만 말이다.
당시는 스프링에 관해 영어로 적힌 책도 한 권뿐이었던 시절이라, 모르는 내용은 대부분 스프링 소스 코드를 보며 사용법을 익혀야했다. 덕분에 나는 꾸준하게 수정 기록을 남기는 로드 존슨과 그의 충실한 동료의 기록을 보고, 무한한 존경심을 느꼈다. 당시 내가 그들의 코딩 일지(SVN 기록)를 보며 표한 존경심은 '경배'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보면 나는 로드 존슨보다는 마틴 파울러(Martin Fowler)에 가까운 욕망을 품은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에 IT컨설팅 회사에 다닐 때는 한국의 쏘트웍스(ThoughtWorks)를 만들겠다는 꿈에 불탔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영업부터 관리, 채용, 인력 개발까지 모두 도맡아 했다. 당시에는 전력을 다했지만, 꿈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퇴사를 했다.
돌아보면 까맣게 잊고 있던 내 꿈을 동료가 내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실현하고 있다. 개발자가 세 명 뿐이던 상황에서, 그는 깃허브에 OSS 코드를 기여했다. 그것도 토이 프로그램이 아닌 실제 서비스 환경 두 곳에서 이미 돌아가고 있는 오픈소스다.
5. 기업용 OSS 개발 기업
하지만, 지금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나, 나는 (이제는) 개발자가 아니라 '개발자 출신' 경영자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나는 개발자들이 생산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야 하고, 그 전에 먼저 대한민국 개발자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 받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환경으로 우리회사인 베터코드를 키워야 한다.
6. 크로스보더 커머스 테크 기업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7명의 멘토를 만났다. 그중 7번째는 우리 회사의 중국 시장 진출 플랫폼 개발자이자 사업부장인 김형준 이사님이다. 2019년 중국 본토의 위해(威海) 지역에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한 우리의 크로스보더 커머스(Crossboarder Commerce) 행보는 그가 만든 것이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부수적 노력 속에서 (대한민국) 디지털 전환에 참여했고, 테크(Tech)란 이미지로 드러날 행보를 덧붙였다. 연말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회사는 크로스보더 커머스 테크 기업이라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존경하는 김 이사님과 북경에서 상주하던 시절에 쓴 그의 글(https://www.popit.kr/micro-service-docker로-할-수-밖에-없었던-사연/)을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찾아 읽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 배운 노하우를 지금 쓰고 있다. 당시는 계속 중국에 있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가 바꿔버린 무대 덕분에 나는 스무 해 동안 고국의 소프트웨어 환경 속에서 배운 역량과 경험을 고스란히 대한민국에 쏟아내고 있다. 비록 국뽕은 아니지만, 흐뭇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타트업 대표이사 자리는 풍랑 속에서 해적선을 몰아가는 느낌일 때도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고, 해적선에 비유한 이유는 함께 꿈을 꾸는 동료를 찾는 「원피스」 루피가 떠올라서 그렇다.
종종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절대로 창업은 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닌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라앉는 기분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역할을 지속할 생각이니 농담이 반이다. 반면에, 불편한 감정을 지속적으로 극복할 일이기에 넋두리를 섞어 진심을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올해 <하드씽>을 읽은 것은 잘한 일이다.
올해 내가 쓴 브런치 글 중에 압도적인 조회 수를 자랑하는 글은 '나는 애자일이 싫다' (https://brunch.co.kr/@graypool/182) 이다. 제목 어그로를 이용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세상 변화를 거부한 리더를 만난 탓에 쓸 수 있던 글이고 제목이었다. 그런 분들 탓에 세상살이의 '딱딱한 면'을 제대로 확인하며 할일이 무언지를 파악하고 분명히 몰입할 수 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반성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2019년 읽었던 <당신이 옳다>를 다시 읽기 위해 장바구니에 넣었다. 새해에는 공감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에 한발 다가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