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고요를 구현하기 6
차니는 직원들에게 친근한 상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점점 더 사로잡혔다. 이는 사실 사업의 모든 분야에 자신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에고가 부풀어 오른 탓이었다.
나도 비슷한 감각을 알고 있다. '대표이사라면 당연히~'라고 스스로 강박을 갖은 일이 종종 있었다. 김어준의 표현을 빌면 '나는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란 생각으로 강박을 이겨낸 듯도 하고, 대표이사이기 이전에 나로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긴 듯도 하다. 물론, 아메리칸 어패럴처럼 성공한 후에 또 도전을 받겠지만
지쳐 쓰러지는 것만이 잠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일중독 시절에는 나도 그랬다. 지금은 유치원 다니는 두 아들과 놀아준 날만 푹 자는 듯도 하다.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하루를 잘 보내야 하는데... 이는 아래 문장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관리는 하지도 않으면서 늘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지난 월요일 긴장 속에서 6년 만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들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그때를 떠올리고 나면, 저자가 인용한 쇼펜하우어의 비유가 더 잘 이해되는 듯하다.
수면은 죽음이라는 원금에 대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이자다. 더 규칙적으로 더 높은 이율을 지불한다면 원금 상환일은 멀어진다.
그리고 아래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고미숙 선생님께 들은 명리학 강의와 윤구병 선생님의 철학서가 배경 지식이 되지 않아 생각해서 두 분께 고마움을 느낀다.
수면은 우리 일의 또 다른 한 부분이며 일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저장하는 내부 배터리를 충전하는 과정이다. <중략> 몸을 보살피는 정신이 휴식한 덕분이었다.
저자는 영국의 총리를 네 차례나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턴을 소개한다.
그는 정치와 마찬가지로 숲 속의 썩은 멤버들을 제거해야 다른 좋은 나무들이 햇빛과 공기를 충분히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적폐 청산으로 시작한 현 정권에게 우리가 더 지지를 보내줘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부디 시민의식이 생긴 한국 시민들이 삐뚤어진 언론에 현혹되지 말고 시민의식을 갖고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2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여가 활동은 놀랍게도 집 근처 숲으로 가서 나무를 베는 일이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영혼을 재충전하고 강화하는 것은 육체적 상태, 그러니까 육체절 활동이다. 여가 활동은 단지 외적 명분이 없을 뿐 행위의 부재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다. 보수를 받기 위해서 또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여가 생활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아내가 뜨개질로 뭐든 뜨는 이유도 같은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나에겐 무얼까? 아마도 독서인 듯한데, 잠을 잘 잘 수 있는 수준으로 행위 자체에 빠질 수 있도록 보강이나 추가가 필요할 듯하다.
땀이 나기 직전 우리의 영혼과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끌어내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의 기분은 정말 굉장하다.
나는 잘 모르는 기분이고, 가급적 피하는 장면이다. ㅠㅠ
어떤 행동이 몸을 피곤하게 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면 그 일을 하라
순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이를 인용하며 저자는 동양 철학자들이 무술을 했던 이유와 서양 철학자들이 레슬링이나 권투를 훈련한 이유가 이것이라 주장한다.
페친인 김현철 교수님도 그래서 권투 하시나?
이러한 활동은 자칫 도피처가 되기 쉬운데 그렇게 되는 즉시 이것은 더 이상 여가 활동이 아니게 된다. 우리를 편안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강제성을 띄게 된다면 그것 역시 더 이상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여가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중독되면 여가가 아니란 말이다.
여가 활동은 분별없는 행동이 아니라 일종의 투자다. 목적 없는 추구에 자양분이 있다. 바로 그게 목적이다. <중략> 이상적인 "르네상스 맨"의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우리는 활동적이고 바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균형 잡힌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자기 자신에 관해 알아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성공이다. 더 높은 것을 추가하며 성취감과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은 이미 당신에게 있다. 당신을 위한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취하라.
캬아~ 재작년 지인들에게 나는 '한량'이라고 떠들었더니 안 어울린다고 했는데, 드디어 답을 찾았다.
내 목표는 르네상스 맨으로 살다가 자연의 일부로 분해되는 것이다.
내 말이.
인생에서 당신이 도피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중략> 집에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거대한 불상이나 콜로세움을 바라보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략>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간에 늘 슬픔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패키지 관광을 가지 말라는 의미인 듯도 하고...
당신이 추구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 집중해야만, 진정한 자기 인식과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면밀히 들여다봐야만 얻을 수 있다. 아주 고요한 상태에 있어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있으므로 흙탕물이 가라앉도록 기다려야 한다.
처음 바르셀로나 여행을 혼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시간에 쫓겨 거점 찍기식으로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 친구들과 별 욕심 없이 온전히 바르셀로나를 경험하고 있던 나의 행동이 비교되던 그때.
무엇에도 취하지 말고 고독한 시간을 갖고 침묵을 찾아보라.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고요에 다가갈 수 있는 훨씬 더 쉽고 지속 가능한 전략들이다. <중략> 진정한 평화와 명료함을 얻고 싶다면 멀리서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에머슨의 말대로 단단히 붙어 서 있어라. 자신을 돌아보라. 있어야 할 곳에 있어라. <중략> 당신에게 주어진 몸은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다른 곳에 가려고 하지 마라. 당신 자신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도피할 필요가 없는 삶을 만들나 가야만 한다.
우리가 이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몸으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구나. 선행은 정신 건강의 지표구나.
"자연을 따르라"라는 말은 "옳은 일을 하라"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내가 성당에 가는 대신에 '과학'을 읽고 시청하는 이유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고 힘들어할 때 손 놓고 보고만 있는 사람은 아무리 크게 성공하고 아무리 큰 명성을 떨친다고 하더라도 결코 기분이 좋거나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덕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하고 본질적인 것에서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야 하는 이유는 <중략> 우리가 수양해야 하는 것도 <중략>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우리가 만나는 모두와의 관계,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상황이 덕을 실천할 기회가 된다. <중략> 중요한 건 행동이다. <중략> 진실을 말하고 맹세를 지키고 약속을 지켜라.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이런 덕행을 알려주신 김한수 교수님과 구병국 선생님, 그리고 도올 선생님께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 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일이 생길까?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해서 클라망스처럼 자신을 채찍질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에서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중략> 선행을 하면 과거를 지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머릿속을 비울 수 있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 <중략> 할 수 있는 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친절을 베풀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자 살 길을 찾아야만 하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했다는 명언이다.
하루를 잘 보내면 그날 잠이 달고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임이 달다.
비슷한 말을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했다.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완전한 해방을 향해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번 명절에는 불자이신 장모님께 이 표현을 써서 친한 척해야겠다. :)
우리 모두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죽음은 우리 모두를 따라다닌다. <중략>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중략> 빛이 꺼지는 건 무엇인가를 잃는 게 아니라 그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략> 키케로는 말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알려주신 Fact이다. 그리고 최봉영 선생님이 지난 통화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유를 말씀하실 때 전제로 한 사실이기도 하다.
이 책의 대부분은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결국 둘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윤구병 선생님의 <있음과 없음>이 떠오르는 글이다. 대부님이 말씀해준 성경 통독의 소감도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 합리적이고 명료하게 사고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또다시 고미숙 선생님의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가 떠오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그릇을 반드시 잘 돌봐야 한다.
연이어 박문호 박사님을 만난 행운과 고마움을 느낀다.
4. 마음을 움직이고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의 고요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