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고요를 구현하기 5
저자는 몸이 고요에 미치를 영향에 대한 예시로 처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이렇게 끝마친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올바른 위치에 놓기 위해서는 습관, 행동, 의식, 자기관리를 통해 우리의 몸을 바르게 관리해야 한다. 정신, 마음, 몸은 삼위일체이다. 각 부분이 서로서로 의존하는 거룩한 삼위일체.
처칠은 육체의 힘을 보존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처칠이 기력을 보존했던 건 일을 회피하거나 도전에서 물러서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일을 추진력 있게 해내면서도 결코 기력을 모두 소진해버리는 일이 없었고,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기쁨의 불꽃을 꺼뜨리는 일도 없었다.
긴장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유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내가 유머 감각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처칠은 전쟁 중에도 유머 감각을 잃는 법이 없었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잃지 않았으며 지친 기색이나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처칠의 이야기를 보면서 높은 정신력이 기력 보존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크겠구나 싶다. 적어도 몸을 돌보지 않고 살아온 나로서는 처칠이 표현한 시각은 생소한 일이고 (건강 검진에서 경고가 뜨는) 이제라도 실천에 옮길 일이다.
아래 표현은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처칠에게 써 보낸 편지의 내용이라고 한다.
곧 대단한 해가 시작될텐데 많은 것이 당신의 건강이 유지되는가 그 여부에 달려 있다네
저자는 처칠이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기르는 좋은 취미를 가진 점을 중요한 요소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인용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수련 방법을 즐겨 함으로써 힘을 얻도록 해야 한다.
저자는 로마의 파비우스가 한니발을 대항하는 전략을 도덕경의 무위로 설명한다. 그리고 엘리트 스포츠 심리학자 조너선 페이더 박사의 연구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수백만 달러를 받으면서 배트는 좀체 휘두르지 않은 채 수백만 명의 사람들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완벽한 공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선수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기다리는 힘, 정밀함의 힘, 공의 힘이다. 이것이 진정한 프로를 만드는 요소다. 그저 스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대단한 타자라면 빠른 손놀림과 강력한 엉덩이는 물론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무위의 힘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무위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표현 중에 하락하는 시세를 견디지 못하는 자산 관리사라는 표현에 관심이 갔다. 내가 투자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떠올렸다. 몇 달 혹은 몇 년 단위로 자산 매수나 매도를 할지에 따라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야 할텐데, 견디지 못한다는 말은 어쩌면 관점이 없거나 자신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 탓이다. 그래서 예금으로 방치하는 돈을 이용해 투자할까 생각을 품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될 듯한 강한 인상을 주는 문구를 남긴다.
저자가 제공하는 예시 질문은 아래와 같다.
그게 무엇인가?
그게 왜 중요한가?
내게 필요한 것인가?
내가 바라는 것인가?
기회비용은 무엇인가?
먼 훗날 이때를 돌아봤을 때 과연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할까?
이 일을 내가 아예 몰랐더라면, 이 요청 메일이 누락됐다거나 그들이 나를 지명해서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일을 놓쳤다는 걸 누가 알아차리기나 할 수 있을까?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와 더욱 잘 소통하려면 가끔은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한다.
공감하는 말이지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관계를 위해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한다니.
고독하게 있으면 곰곰이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주변 상황에 반응하게 될 뿐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그때 반응할 게 아니라 집중하여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고독을 유지해야 합니다.
코로나 덕분에 가졌던 뜻하지 않은 고독의 시간이 나에게 실제로 유익했기에 공감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반응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거나 혹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얻은 바가 크다.
저자는 또한 수도사인 토마스 머튼을 인용해 고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침묵을 뼛속까지 스며들게 하려는 사람, 오로지 침묵만을 호흡하려는 사람, 침묵을 먹고 살려는 사람, 자신의 재산을 살아 숨 쉬는 침묵과 맞바꾸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마더 테레사의 문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빌게이츠의 특별한 독서습관을 소개한다.
멀리 내다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우선하고 싶은지, 직원들에게 어떤 일을 맡겨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숲속에서 얻은 조용한 고요를 고스란히 지닌 채 복잡한 세상으로 돌아와 사업가이자 자선가로서 다시 방향을 잡고 나아간다.
빌게이츠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해볼 수는 없을 지라도 적어도 아래 문단을 실천해보고 단어 하나하나에 대응하여 내 느낌을 확인해보고 싶다.
우리가 잠시 있던 곳으로부터 떠나보는 것은 우리의 일에도 더 도움이 된다. 고독으로부터 고요를 얻고 돌아온 우리는 인내, 이해, 감사, 통찰의 형태로 그 고요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멋진 소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을 두고 일하는 인간Human doing이 아니라 존재하는 인간Human being이라고 하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중용을 지켜라. 현재에 집중하라. 자신의 한계를 알라. <중략> 당신이 받은 선물을 보호하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다. 먼저, 나는 Human being이란 표현을 자주 보았지만 그것을 '존재하는 인간'으로 생각해본 일이 없다.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긴 하지만, 인간의 한자가 人间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무지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 자체가 내가 받은 선물일 수 있다니. 이 역설적인 혹은 극단적인 현실 수용이 굉징히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힘을 지녔다는 생각을 찰나에 가질 수 있었다. 재작년에 읽은 <기적의 리미널 씽킹> 이 떠오르기도 한다.
저자는 역사상 무리를 해서 생명을 단축시켰던 유명인의 예를 든 후에 이렇게 묻는다.
필요할 때 쓸 에너지를 비축해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당신 자신과 당신의 능력을 신뢰하는가?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내면의 평화와 고요를 끝까지 지켜낼 자신이 있는가?
그리고 나치가 아유슈비츠 정문에 걸어놓았던 문구를 비꼬며 이렇게 말한다.
노동은 결코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조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
빅토리아 여왕이나 앨버트 경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일종의 노동 중독이거나 노동을 신성시하는데, 퇴직을 하면 우울증이 패턴인 그 세대에는 그런 분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만사를 제쳐놓고 당장 답장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이메일은 사실 그렇게 긴급하지 않다.
이미 나는 이를 알고 있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는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분명히 써두자. 나도 한 때 일중독이었다. 하지만,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기력을 다한 사람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완전히 지쳐버린 상황에서 그 어떤 내면 생활을 온전히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사고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악순환이다.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2014년 모든 것을 리셋하려던 나의 결정을 칭찬한다. 당시는 '하고자 하는 바가 불분명한 일은 밑빠진 독에 불붓기와 같다'는 생각에서 팀을 해체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과거를 살펴보니 혹사가 중독이 된 습관도 바꾸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