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서 우연히 두 여자가 대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애들 아니었으면 벌써 이혼했지. <중략> 재미도 없는 이야기, 경제 같은 걸 나 들으라고 크게 이야기할 때 너무 싫어.
듣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들었고, 그때 생각이 번져나간 것을 기록한다.
내 첫사랑은 사랑하니까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무 살에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결혼이라니. 나는 너무 부담스러웠고, 내가 입대하면서 그녀의 의지는 증명되었다. 흔히 말하는 고무신 거꾸로 싣는 모습으로...
나는 그 후에 20년이 지나고 나서 결혼을 했다. 또래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했고, 아내와 육아 등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하고 결혼했다. 당시 나는 결혼은 연애와 무관한 또 다른 관계를 운영하는 일이란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애들 아니면 이혼했다는 말을 들을 때,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말로는 그런 상태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런 생각과 내 과거가 잠시 떠올랐다.
아내가 '우리는 무엇을 해도 꼰대'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던 때가 있었다. 아내는 유행에 민감한 편이라 사회적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의하기 어려운 풀이었다. 그때 속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러면 니가 생각하는 꼰대는 무엇인데
당시 답을 못 내렸는데 커피숍의 두 여인의 수다를 들은 탓에 정의하고 싶어졌다. 상대가 관심을 두지 않은 말을 하고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면 꼰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란 교류의 연속이니 상대가 관심 없는 말이나 듣기 원하지 않는 말을 할 수는 있다. 아니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응은 그의 몫이란 점을 포용하지 않으면 일종의 폭력인데, 꼰대란 말이 그 행태를 담는데 적절한 표현일 수 있다.
어머니가 말을 할 때 자꾸 끊는 나의 습관이 뜨끔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어머니랑 대화를 할 때 꼰대가 된다. 원인을 분석하려 들면 자식이니 긴 이력을 끄집어낼 수 있지만, 분석보다는 기록하며 마음에 담고 다음번 행동을 할 때 꼰대를 탈피하길 기대(혹은 기도) 해 본다.
2019년 <당신이 옳다>를 처음 읽고 각오한 개인 프로젝트를 올해 또 시작했는데 진도가 더디다. 이참에 뭐라도 할까 하다가 시골농부님 책의 영향으로 알고 있으니 인위적은 계획은 더하지 말자고 다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