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대화하기 XVIII
이 글은 데카르트의 오류 241~ 243쪽에 이르는 2쪽 남짓의 짧을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에 대한 기록이며, 글의 제목은 바로 그 섹션의 제목이다.
아래 구절에 형광펜으로 줄을 친다.
나는 정말로 느낌이 특권적 위치를 소유한 것으로 본다. <중략> 느낌은 신체와 풀릴 수 없도록 묶여 있기 때문에 느낌은 발생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출현했고, 또한 우리의 정신생활을 미묘하게 잠식하는 우선권을 유지한다. 뇌는 신체에 사로잡힌 청중이므로 느낌은 동등자들 가운데 승리자다. <중략> 느낌의 영향을 무궁무진하다.
줄을 칠 때, 내가 떠올리는 것은 이 책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한 <월간김어준> 박문호박사님 강의에서 들은 말이다.
느낌은 가장 고등한 정신활동이며, 인간을 특징 짓는 것이기도 하다
뇌과학 문외한 입장에서 이 책을 취미로 한 번 읽어서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하고, 이렇게 기념하듯 메모를 남기며 시간을 들여 따라가면 언젠가는 익숙해지리란 기대를 갖고 있다.
아래 구절을 읽는데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에서 인간의 편향을 걸러낼 수 없음을 지적하던 내용들이 떠오른다.
감정과 느낌은 붙잡기 어려운 실제이며 <중략> 주류적 인지 과학으로부터 감정을 배제하는 이러한 엄격한 관점은
또한, 이 구절은 감정과 느낌을 과학에서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아직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한계도 확인해준다. 저자가 그 점에서는 인류 중에서도 첨단을 걷는 사람일테니까.
알듯 모를 듯 한 내용이다.
느낌은 감정적 상태가 일어나는 동안, 또한 미약하게나마 배경적 상태가 됨에 따라, 주의깊게 우리로 하여금 신체에 마음을 두도록 한다.
우연히도 최근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아래 내용도 일맥상통 한다.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 <중략>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중략> 슬픔이든 기쁨이든 우리의 모든 정서는 우리의 생명에 봉사하도록 이미 소임이 주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극한 상황에서 정서가 어떻게 생명에 봉사하는지 예시가 되는 내용도 있다.
감옥에는 과거가 각박한 사람이 드뭅니다. 감옥을 견디기 위한 자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이 자위는 참혹한 환경에 놓인 생명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명운동 그 자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