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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Jan 02. 2019

저가항공을 타고 호치민으로

Day1. 호치민 4구역의 숙소


저가 항공은 항상 속는다


파리에서 교환학생 할 때부터 이지젯이니 라이언에어니 나름 저가 항공을 여러 번 타 보았는데도 항상 타고나면 억울한 일이 많다. 한참 전에 취소를 하는데도 티켓 값의 반절 이상을 떼어 간다거나, 수하물 무게나 크기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벌금 같은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거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국적기로 45만 원이었던 호치민 티켓이 막상 내가 사려고 하자 60만 원을 넘어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저가 항공으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비엣젯이 그나마 저렴한 편이었음에도 비행기 삯만 40만 원 후반 대였다. 수하물 캐리어는 몇만 원을 주고 따로 추가했다. 캐리어를 하나 추가하고 결제하려다 보니 좌석 선택을 할 것인지 물어본다.


지난번 방콕 여행 때 진에어 비행기 안에서 앞 좌석에 무릎까지 닿아 불편한 자세로 여섯 시간 내내 잠을 설치던 G가 생각났다. 그래. 만원도 안 하는데 업그레이드 하자. 단 몇 센티라도 좀 넓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큰 기대였다.


비엣젯 3X3 좌석의 비행기에서 유료 좌석은 꽤 여러 줄 옵션이 있는데 사실상 그중 메리트가 있는 좌석(공간 여유가 더 넓은)은 단 두 줄이다. 그 두 줄 티켓팅에 실패했다면 그냥 아무 좌석이나 운명에 맡기는 게 좋을 듯하다. 내가 선택한 유료 좌석은 더 넓기는커녕 비상구 앞 좌석이라 뒤로 기울일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 앞자리의 사람이 의자를 뒤로 많이 젖혀서 정말이지 닭장 속에 갇혀 가는 것 같았다. 또 속은 기분이다.



호치민의 4만 원짜리 에어비앤비


오후 2시쯤 공항에 도착해서 길고 긴 수속을 마치고 그랩(우버같은 car hailing 서비스) 택시를 잡아탔다. 주로 공항서 호텔로 갈 때는 도심에서 떨어진 심심한 동네나 벌판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호치민은 공항이 그리 멀지 않아 바로 시내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덕분에 택시를 타자마자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공항에서 그랩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눈길을 사로잡는 건 단연 도로를 빼곡히 채운 오토바이다. 오토바이가 많은 것도 그랬지만, 차들을 아찔하게 피하고 또 앞질러가는 운전 스타일도 경악스러웠다. 물론 택시 기사님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하고 때론 들이대며 운전을 하셨다.


일전에 베트남 다녀온 지인들이 오토바이가 정말 많더라며 일러줬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특히 호치민 도시는 등록된 오토바이 수만 740만 개라고 한다. (호치민 인구는  840만 명이다.) 성인이 되어야 운전을 할 테니 인당 한 개 이상의 오토바이를 갖고 있는 셈이다. 정말 오토바이의 도시였다.


한참을 오토바이 얘길 하다가 상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롯데리아도 있었고, 한국의 고깃집이나 치킨집도 간간히 발견하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30도의 한여름의 날씨였지만 가게들은 블링블링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이었다.


30여분이 지났을까. 택시가 강을 건너고 변변한 상점 하나 없는 작고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왔다. 지도 위치를 확인하니 숙소에 거의 다다른 것으로 표시됐다.


여기 도저히 호텔이나 오피스텔 같은 게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G가 불안했는지 말했다. 지난 베이징 여행에서 한밤 중 불빛도 간판도 하나 없는 후통 골목에서 택시서 내린 기억이 되살았나 보다. 다행히 택시는 그 골목을 지나 조금 더 큰길로 들어서더니 현대식 고층 오피스텔 앞에서 멈춰 섰다.


호치민의 관광객들이 주요 머무르는 숙소는 1구역이다. 주요 관광 포인트들이 그쪽에 모여있고,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호텔의 평균 가격도 높다. 이번 숙소는 시내에서는 약간 떨어진 4구역의 에어비앤비이다.


이 숙소를 택한 이유는 단연 가성비다. 단돈 4만 원에 헬스장과 수영장까지 있었다. 헬스장이야 안 가도 그만이지만 야외 수영장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마치 중요한 기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암호 문자를 꾹꾹 눌러쓴듯한 아래와 같은 후기를 봤지만 못 본 체하고 예약을 해버린 것이다.


개뮈마나요. 한쿡솨람두룬 피하쉐요.


당연히 G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개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무사히 2박을 마친다면, 굳이 개미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찝찝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날 밤 면세점서 사온 발베니와 편의점 맥주를 마실 때, 거실 소파에 앉아 탁자를 가까이 끌어오자 밑에 깔려있던 러그가 딸려 움직이며 그 아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작은 개미들이 혼란을 겪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시 함구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탁자에 묻은 칩 찌꺼기와 주스 방울 때문인지 탁자 위 조성된 개미 마을을 목격했을 때는 G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한국어 암호로 개미에 대해 말해준 그 고마운 사람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리 와봐! 탁자에 개미들이 난리가 났어!


다행스럽게도 G는 그다지 놀라거나 힘들어하진 않았다. 그 뒤 사용하지도 않은 부엌에서 개미 때 행렬도 수시로 목격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나는 재빨리 긍정적 여론을 조성했다. G도 자연스럽게 동조했다.


나: 이런 날씨에 개미는 어쩔 수 없어.
G: 그래. 동남아는 원래 호텔에 도마뱀도 있고 그렇잖아.
나: 아마 (비싸게 예약한) 다음 호텔에 가도 개미는 있을지도 몰라.


나중에 우린 우리가 잠시 개미 집을 빌린거야 라며 농담까지 했다. 왜 개미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하기야 너무 강렬해서 머릿속에서 별로 잊히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개미만 빼놓고는 거실도 널찍하고 수영장도 좋고 건물 밑에 편의점까지 있는 좋은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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