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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Jan 06. 2019

호치민 스트릿 푸드 탐험

Day1. Cô Giang 거리와 Vĩnh Khánh 거리의 길거리 음식


 땅콩 하나 주지 않는 비행기에서 다섯 시간 비행을 마치고 내리니 배가 고팠다. 아침을 든든히 먹긴 했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벌써 오후 네시가 되었으니 배고플 만도 했다. 비행기에서 간식을 사 먹을 수도 있었지만 호치민에 내려서 더 맛있는 걸 먹겠다는 의지로 꾹꾹 참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길 택시 안에서 수많은 길거리 음식들을 구경하면서 내 배는 점점 더 고파졌다.



길거리 음식

의외로 G는 길거리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위생적인 면 때문에 몇 번 탈이난 경험이 있어 그런 것 같다. 재작년 우리가 방콕에 갔을 때만 해도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비행기 연착으로 자정 넘어 도착한 나를 G가 마중 나왔던 밤, 피곤도 모르고 카오산 로드로 쭐레쭐레 걸어갔다.


저기 뭐야? 맛있어 보이는데? 앉아 볼까?

플라스틱 의자와 책상을 펼쳐놓은 이름 모를 노상 음식점에 충동적으로 앉았다. G는 타지에서 나를 만나 반가웠고, 내가 피곤해하지 않고 새벽 마실을 나가자 하니 기분이 좋았고, 이런 뜻밖의 도전도 즐거웠던 것 같다. 옆 테이블에서 먹는 걸 곁눈질로 보고 손짓으로 주문한 음식들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G는 한국에서는 포장마차도 꺼리지만 그 날 카오산 로드의 기억 때문인지, 이런 여행지에 오면 길거리에서 냄새 풍기는 소박한 음식에 군침이 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어 마음이 따뜻했고 고마웠다.


호치민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일단 누웠다. 낮 비행이고 시차도 두 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그래도 다섯 시간이 넘는 비행을 쭈그린 자세로 오다 보니 일단 침대 위에서 해방감을 좀 느끼고 싶었다. G는 누워있는 상태로 스마트폰을 건네며 링크를 보여줬다.


7 Great Streets for Street Food in Saigon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일곱 개의 거리를 소개한 글이었다. 그렇게 그 날 저녁 여정이 세워졌다. 구글맵을 펼치고 숙소서 다녀오기 좋은 두 군데를 꼽아 길을 나섰다.




1. CO GIANG STREET, District 1

그랩 택시를 잡아타고 처음에 간 곳은 코지앙 거리. G가 길잡이를 했다. 한 블록 정도를 걸어가 보니 노상 음식점(음식점이라기 보다는 좌판에 가깝다)들이 거리 양 편으로 자리 잡은 게 보였다.


천천히 걸으며 어딜 갈지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중 한 음식점의 주인은 가게 앞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맛있다고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적극적인 게 맘에 드는데 들어갈까? G가 잠시 걸음을 멈춰서 물었다. 내가 주춤거리며 대답하려는 찰나 그 주인이 내 팔목을 잡아끌고 들어갔다. 난 당황스러웠고 G도 기분이 상했다. 에이 재수 없다. 딴 데 가자. 역시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한다.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던 그 가게를 지나 두 가게쯤 더 갔을까. 음식도 맛있어 보이고 현지 사람들이 꽤 앉아있는 듯한 가게가 보여 들어갔다. 별도의 메뉴판은 없었다. 대신에 시그니쳐 메뉴인 듯한 두 메뉴가 간판에 떡하니 쓰여 있었다.

우리가 먹었던 식당, Hoàng Yến (121 Cô Giang Street)


우연히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 글을 쓰며 다시 살펴보니 우리가 봤던 링크에서 소개하고 있는 식당 중에 하나였다. 블로그에서 인정한 맛집에 들어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 식당의 플라스틱 의자는 등받이가 없고 정말 낮았다. 대중목욕탕에 있을 법한 플라스틱 의자랄까.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먹는 기분마저 들었다.

 

Bò lá lốp과 Mỡ chài

이 식당에 들어가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강력하게 풍겨오는 바비큐 냄새였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 바비큐를 먹고 있었다. G가 다가가 한 접시를 주문했다. 물론 뭘로 만들어진 음식인지 알 길은 없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린지 얼마되지 않아서 음식이 도착했다. 함박웃음이 났다. 단돈 2만 5천 동 (약 1,300원)에 부수 야채가 한가득 나왔기 때문이다. 상추니 겨자잎이니 각종 푸른 야채와 오이, 얇은 쌀국수와 라이스페이퍼, 소스도 두 종류나 있었다. 곁눈질로 다른 테이블들을 보니 이 바비큐 된 것들을 라이스페이퍼에 싸 먹는 모양이었다. 라이스페이퍼를 익힐 만한 뜨거운 물은 없었다.



반신반의 했지만 용기 내어 옆 테이블을 따라서 쌈을 싸 보았다. 연기 향이 듬뿍 벤 바비큐와 각종 야채, 쌀국수를 넣어 싼 라이스페이퍼 쌈을 시큼 달달한 소스에 찍어 한입. 이게 1,300원이라니. 정말 만족스러웠다. 걱정했던 라이스페이퍼는 아주 얇은 것이라서 뜨거운 물 없이도 음식의 온기와 수분만으로도 먹기에 충분하도록 부드러워졌다. 한국의 월남쌈 집에서도 이 페이퍼를 사용하면 어떨까? 월남쌈을 사랑하긴 하지만 뜨거운 물에 담가 익혀야만 하는 과정은 좀 귀찮으니 말이다.


바비큐는 두 종류가 나왔다. 하나는 Bò lá lốp, 다른 하나는 Mỡ chài라고 한다.

Bò lá lốp (소고기를 구장나무 잎에 말아 싸서 바베큐한 음식)

Bò lá lốp은 잎에 소고기를 싸서 바베큐한 요리인데 이 잎에서 약간의 약초향 같은 게 났다. 잘 맡아보지 못한 향이었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Mỡ chài

Mỡ chài는 좀 더 기름진 맛이 났는데, 생긴 것은 수제 소시지처럼 생겼다. 맛도 기름진 고기 소시지 맛이었다. 내장 맛이 약간 난다고 생각했는데, 번역기에 Mỡ chài를 검색해보니 돼지 창자라고 나온다. 고기를 돼지 창자나 기름 등으로 감싸 바비큐한 요리인 것 같다.



bột chiên

바비큐를 굽는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bột chiên을 조리하는 가판대가 있었다. 빈대떡을 부치는 같이 생긴 널찍한 철판에서 조리하는 듯 했다. 내 주문을 잘 못 알아듣는 아주머니를 보고 나는 노란 간판까지 뛰어가서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bột chiên (쌀가루로 만든 떡(?)과 계란으로 만든 부침개)


솔직히 나는 이 음식은 중국에서 맛본 무떡 케이크라고 확신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아니라, 부드럽고 말캉한 식감의 이것을 떡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 쌀로 만든 큐브들을 계란과 함께 튀기다시피 구워 바삭바삭한 부침개처럼 만들어주는 음식을 bột chiên라고 한다. 보통 간장 소스를 곁들여 먹고 남부 베트남에서 학생들의 간식으로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한 점 남김없이 두 음식을 다 먹어치운 우리는 뿌듯했다. 미지의 음식을 탐험한 느낌이랄까. 아, 정말 색다르고 맛있었다.

와, 이걸 다 먹었는데 이게 3천 원도 안된다고?

마지막으로 경이로운 가격에 다시 한번 흐뭇했다. 야채와 라이스페이퍼에 싸 먹고, 각종 소스에 찍어 먹고, 부침개에, 푸짐하게 잔치상 먹은 기분인데 말이다.




두 번째 거리는 CO GIANG 거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지도 상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하지만 이제 막 호치민에 도착한 우리로서는 이 길이 30분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오토바이 옆에서 나란히 걷는 것만 해도 혼란스러운데, 찻길을 건너야 할 때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을 건넌 후에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2. VINH KHANH STREET, District 4

해산물 음식으로 유명한 Vinh Khanh거리에는 양 길가로 수많은 가게들이 늘어섰다. 그래도 '가게'라고 부를만한 크기였고 베트남 사람들도 관광객도 많았다.

거리를 따라서 좀 걷다가 적당한 곳에 들어가 앉았다. 드디어 시원한 맥주를 시켰다. 안주가 될만한 옥수수 볶음과 타이거 새우를 주문했다.

옥수수 볶음과 사이공 비어

시원한 라거 맥주와 짭조름하게 건새우와 볶아낸 옥수수는 궁합이 좋았다. 옥수수알 사이에서 주방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발견하지만 않았어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을 텐데.


타이거 새우 구이 6꼬치

새우구이를 시켜도 잔뜩 나오는 푸른 야채. 식탁을 한층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베트남 사람들은 절대 육식의 나라 몽골에선 살 수 없을 거다. 새우구이는 역시나 아는 그 맛, 맛있는 맛이었다.


G: 저기 봐. 간판에 Hai San이라고 쓰여있어. 해산(海産)이란 뜻인가 봐.

관찰력도 참 좋다. 주위를 둘러보니 해산물의 거리답게 가게마다 Hai San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있었다. 베트남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이렇게 한글같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베트남어는 로마자로 표기하기 때문에 한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참 이상하게 다가왔지만 사실 베트남은 오랫동안 중국 영향 아래에 있었다. 로마자 표기 이전에는 중국의 한자를 차용해서 베트남어를 표기했다고 한다. 국호인 베트남도 ‘월(越)’과 ‘남(南)’을 베트남어로 발음한 것이다. 현재 형태의 로마자 표기 베트남어를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식민 당국이었던 프랑스가 1862년 남부의 모든 공문서와 학교에서 정식으로 라틴어로 된 베트남어를 사용케 하는 의정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라고 하니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이런 걸 알면 기분이 묘하다. 인류가 작은 공동체처럼 느껴진다. 결국엔 모두가 영향을 끼치고 받아서 오늘의 모든 것이 된 것이다. 중국의 생선 소스(광둥어 발음으로 ke-tchup)가 영국으로 건너가 토마토가 추가되고, 미국은 설탕을 추가하고 그게 지금의 토마토 케쳡이 된 것처럼 말이다.



숙소로 돌아 가는 길은 그랩 택시를 불렀다.

걸어서 20분 거리지만 우리와 같은 초짜는 한시간 같은 20분을 겪을게 분명했다.

길거리 음식으로 든든히 채운 배를 하고도 숙소 밑 편의점에 들러 안주거리를 사는 마음은 또 다시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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