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산에 오르면 뭐게?"
팀장님이 난데없이 말을 걸었다. 갑자기 뭐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답을 고민하는 척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팀장님이 답을 말해줬다.
"쁏!"
처음에는 그게 왜 답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글자를 그려보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뒤늦게야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영혼 없는 반응 뭐야? 사람 김 빠지게. 사자 마켓에 영혼이라도 판 건 아니지? 그래서 결혼은 하겠어?"
"네?"
"뭘 놀라고 그래? 장난이야 장난. 일이나 해."
팀장님은 나를 리액션 자판기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리액션 하나하나까지 평가받아야 하다니. 그나저나…, 그냥 해본 말이겠지?
사자 마켓은 요즘 안 쓰는 사람이 없다는 중고 직거래 어플이다. 안 읽는 책의 처분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동료의 추천을 받아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영혼까지 덤으로 팔아버렸다.
새해 목표를 독서로 정한 탓에 얼마 전 세계문학전집을 구매하게 되었다. 300권이 넘는 방대한 전집 중에 어떤 블로거의 엄선작 30권을 구매하게 되었고, 첫 시작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시작하는 바람에 한국인의 이름이 세 글자밖에 안 된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나의 신년 독서는 마무리되었다. 늘 그렇듯 책장에는 안 읽는 책들만 쌓여갔다. 먼지에 덮여 낡아가는 책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죄책감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에 사자 마켓에 판매글을 올리게 되었고, 잊고 살 때쯤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는 동네 공원에서 만나 거래를 하게 되었다. 그는 미리 상의한 대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그는 내 또래의 남성이었는데,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초면에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실례가 되겠지만, 그는 노숙자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긴 머리와 긴 수염 그리고 낡아 보이는 옷과 신발. 캐리어만큼은 묘하게 반짝거리고 튼튼해 보였는데, 내 낡은 캐리어가 초라해 보였다. 저거 어디서 훔친 건 아니겠지?
그는 내 캐리어에 담긴 책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자신의 캐리어에 옮겨 담았다. 그는 중간에 책 한 권을 들어 내게 보이며 물었다.
"책이 상당히 깨끗한데, 혹시 이 책 읽어보셨어요?"
그가 들고 있는 책은 파우스트의 괴테라는 책이었다. 나는 순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고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제가 책을 깨끗하게 읽는 편이라…, 당연히 다 읽었으니까 파는 거죠."
"굉장하네요, 책을 깨끗하게 읽는 분들은 영혼도 깨끗하다던데."
"그거 칭찬인가요?"
"물론이죠, 그런 의미에서 영혼을 저한테 판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때 나는 직감했다. 아 똥 밟았구나. 무거운 책을 낑낑거리며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구나. 그는 온몸으로 수상함을 내뿜고 있었는데도 왜 몰랐던 걸까.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해준 것은 누구였던가. 나는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그의 장단을 맞춰주다가, 책만 팔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자 다짐했다.
"얼마 주실 건데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죠."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렸을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원하는 데로 살고 있는지,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가장 행복했던 경험과 슬펐던 경험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 대충 대답해주고 끝내려 했지만 그는 프로였다. 그는 수첩을 꺼내 내 이야기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의 고개는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눈을 빛내며 나의 말에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는 진지했다. 나의 말을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줬던 사람이 있었던가? 얼마간의 대화가 끝난 뒤 그는 수첩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바로 당신의 영혼입니다."
수첩에는 나의 이야기가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로 휘갈겨져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못생겼네요."
"개성 있는 거죠. 사진 찍으실래요?"
그가 수첩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수첩은 묘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기이한 필체가 발산하는 수상한 분위기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의 질문이 내 안의 뭔가를 끄집어냈다. 나는 곧 불안해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내가 돌려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그의 루이뷔통 지갑에서 5만 원권 지폐 6장을 꺼냈다. 책값의 두배였다. 그는 내게 돈을 건넨 뒤 캐리어를 끌고 쿨하게 사라졌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나는 그의 루이뷔통 지갑의 진품 여부를 고민하며 가벼워진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몸상태에 변화가 생겼다. 뭘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되고, 불면에 시달렸다. 식욕도 없어졌다. 팀장님은 내 몰골을 보더니 일이 많이 힘드냐며 종합영양제를 선물하기도 했다. 사자 마켓을 추천해준 동료는 무슨 일이 있으면 도와줄 테니 다 털어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를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랬다. 회사 사람과의 대화는 개인과 개인의 대화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집단과의 대화였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기폭장치를 상대방에게 건네주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것은 내 평판과 인사고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었다. 나는 결국 펑하고 터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보다는 병원이 났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스트레스에 의한 신경성 위장장애 및 불면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나는 소화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그는 운동을 하는 게 증상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가끔 먹은 것을 토해냈고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의 자취방에서 혼자 베개를 적시고는 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먼지에 쌓인 책을 바라보다 내 영혼을 사 간 이상한 남자가 떠올랐다. 모든 것의 시작이 그 사람 때문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어플을 켰다. 아직 채팅방이 살아있었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바로 답장을 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다 털어놓았다. 이 모든 게 당신 때문이니 책임지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내 모든 말은 그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제 장난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소설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당신을 인터뷰했던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세요.'
그가 채팅방에서 나갔다.
"이 XXX가,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욕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쳤더니 속이 후련해지고 허기가 졌다.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봤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가득했다. 내일은 연차를 내고 마트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