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문영 씨는 저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문영은 문자를 바로 삭제했다. 불합격 통보 메일을 쌓아두는 것이 시체를 쌓아놓고 방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자에서 썩은내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끔찍한 모습으로 문영을 괴롭혔다. 그녀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문영의 자아 중 하나가 면접을 봤고, 결국 합격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기보다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책임을 전가했다. 너는 쓸모가 없어. 밥만 축내는 식충일 뿐이야. 죽어. 탕탕탕.
이번이 몇 번째였던가. 문자를 삭제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자아가 마흔네 번이나 죽어나갔다는 사실에 괴로워해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현실적인 숫자에 집중하기로 했다. 실업급여 수급 종료까지 앞으로 한 달. 문영은 다음 밥벌이를 생각해야 했다.
그녀는 누글에 직업추천을 검색했다. 그리고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클릭했다. 나튜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무원, 대기업에 매달리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했다. 그녀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튜버가 말하기를,
"스스로 일하며 노동하는 자는 결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면서도 돈을 벌어야 부자가 되고 자본주의의 노예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해 일하지 마세요. 남이 일하게 하세요! 여기 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광고가 재생되었다.
'마스크 필터 목숨 값보다 싸다~. 월 150만 원에 오염공기필터 마스크를 만나보세요.'
광고가 끝나자 나튜버는 모자이크 처리된 아크릴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금시계가 번쩍였다. 모자이크가 삭제되자 상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 안에는 바퀴벌레가 들어있었다. 그가 상자에 손을 넣자 바퀴벌레가 손에 올라탔다. 그는 책상 위에 바퀴벌레를 올려놓고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앉아! 핥아! 빨아! 굴러! 바퀴벌레는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보시다시피 이 녀석은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주 똑똑한 녀석이죠. 뭔가 말하려고 하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녀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물론 딱히 그럴 필요도 없지만요!"
영상은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의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바퀴벌레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튜버는 내레이션을 이어갔다. 이 바퀴벌레는 평범한 바퀴벌레가 아닙니다. 이 녀석의 본래 목적은 살코기가 많은 식용 바퀴벌레였습니다. 그는 저렴한 가격에 가축의 대체식품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소의 방귀가 지구에 끼치는 영향을 걱정했던 것이죠. 하지만 돌연변이가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배가 아닌 두뇌가 비대해지고 만 것입니다. 포테이토칩이나 페니실린처럼 의도치 않게 위대한 발명품이 탄생한 것이죠. 그들은 정말 무궁무진한 활용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난현장에서 사람을 찾아내거나 핵폐기물을 처리할 수도 있고, 적들에게 병을 전파하는 생화학무기가 될 수도 있었죠. 어떻게 훈련시키느냐에 따라 이 녀석들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도 있고, 인공지능과 로봇을 대체할 뛰어난 생명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도전해보세요! 실패란 없습니다. 너튜버는 바퀴벌레를 들어 입안에 넣는다.
문영은 먹고 있던 프로틴 바를 바라봤다. 그것은 하루에 세 개만 먹어도 필수 영양소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훌륭한 식품이었다. 그녀는 홀린 듯 15만 원을 결제했다. 잠시 후 드론이 날아와 물건을 전달해준 뒤 사라졌다. 커다란 아크릴 케이지안에 바퀴벌레들이 가득했다. 문영은 벌레들에게 파묻힌 매뉴얼을 찾아냈다. 녀석들은 배가 고팠던지 종이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녀는 매뉴얼을 꺼낸 뒤 벌레들을 털어냈다. 표지는 사라져버렸지만 내용은 멀쩡헤 보였다.
1. 목적을 부여하고 보상을 지급하세요. (주의: 처음부터 고난도 작업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문영은 프린터에 색지를 넣고 꽃무늬 패턴을 출력했다. 그리고 바퀴벌레 한 마리를 색지 위에 올려두었다. 꽃무늬를 갉아먹는 바퀴벌레는 하이힐로 뭉게 버렸다. 10번 정도 반복하자 모든 바퀴들이 꽃무늬를 피해 배경만 갉아먹기 시작했다. 정말 학습능력이 있는 듯했다. 문영은 종이 한 장 분량의 작업이 완료되면 사료를 한 티스푼씩 케이지에 뿌렸다.
2. 규칙을 만드세요.
녀석들은 먹이를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보통은 덩치가 조금이라도 큰 녀석들이 그렇지 않은 녀석들을 죽였다. 그것은 문영의 입장에서 아주 큰 손실이었다. 문영은 자신의 소중한 일꾼이자 자산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기로 했다. 동료를 죽이는 벌레들은 문영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자 동족상잔이 줄어들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문영이 충분한 양의 사료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작업량을 상승시키고 싶을 경우, 능력에 따른 보상체계를 구축하세요.
문영은 사료를 뿌려주는 대신 작업이 완료된 꽃과 사료를 교환해줬다. 절단면이 고르거나 많은 양의 꽃을 가져오면 많은 사료를 배급했다. 능력이 좋은 녀석들은 점점 덩치를 키워나갔지만,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죽어나갔다. 굶어 죽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거대한 동족을 바라보며 박탈감을 느꼈으며,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개체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4. 죽음의 의미를 정의하세요.
문영은 이야기를 만들어 벌레들에게 들려줬다.
주인공 바퀴벌레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힘들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시작과 동시에 주인공이 죽어버렸지만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가 지옥에 가서 현실보다 더 큰 고통을 맛보기 때문이다. 바퀴벌레들은 죽음을 현실보다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좁은 케이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개체수가 늘어났다.
5. 선별작업을 통해 개체수를 조절하세요.
매뉴얼에는 케이지 면적의 10분의 1 정도가 적정 수용량이라고 했지만 바퀴벌레가 바닥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과포화 상태였다. 문영은 동봉되어 있던 약을 사료에 배합한 뒤 배급했다. 건강한 개체들은 약을 이겨낼 것이며, 약에 죽는다면 생산성과 상품성이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곧 바퀴들이 죽기 시작했다. 저게 다 돈인데···, 열심히 살아서 큰집을 사고 말겠어. 문영은 죽어가는 바퀴벌레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에 죽은 개체들을 따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문영은 케이지에 검은 천을 덮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상태로 일주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문영은 컴퓨터를 켜고 게임에 접속했다. 그녀는 바퀴벌레들을 교육시켜 게임머니를 벌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게임에 몰두했다.
문영은 게임이 지루하다 느껴질 때쯤 바퀴벌레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먹던 과자를 던져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지에 씌어진 검은 천을 걷어냈다. 곧 무언가가 날아와 그녀의 볼에 꽂혔다. 그녀는 깜짝 놀라 천을 다시 덮어버렸다. 그리고 볼에 꽂힌 것을 떼어냈다. 문영은 볼을 어루만지며 거울 앞에 섰다. 피부가 조금씩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있던 물체를 확인했다. 그것은 바퀴벌레의 다리로 만들어진 바늘이었다. 딱딱하고 날카로웠다. 문영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케이지를 들어 밖에 던져버린 뒤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소한 냄새와 아크릴 타는 냄새가 뒤섞여 문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문영은 쭈그려 앉아 자신의 돈과 미래가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매뉴얼에 적힌 연락처에 전화했다.
"저는 그저 매뉴얼이 시키는 데로 했는데, 벌레들한테 공격을 당했어요!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고객님, 어떤 제품을 구매하셨죠?"
"바퀴벌레 사육키트요."
"매뉴얼대로 했으면 그럴 리가 없는데, 바퀴벌레들은 굉장히 겁이 많은 종족이거든요. 매뉴얼 뒷장에 있는 ISBN을 불러주시겠어요?"
문영은 상담원의 질문에 답했다. 잠시 키보드 자판소리가 들리더니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음…, 죄송합니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네요. 다른 종류의 매뉴얼이 배송된 것 같습니다. 계좌번호를 불러주시면 환불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