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하나만 쓸게요!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부엌에는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게 2년 전에 산 커피잔 하나밖에 없었는데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나서는 부엌에 '내돈내산'의 내 물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곳 모아 베이킹 재료, 도구들을 정리해볼까 하고 부엌을 둘러보니 이미 찬장은 그릇과 양념통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둘 곳이 없었다. 가까운 베란다 창고에 두자니 손이 안 갈 것 같고 분산해서 놓자니 하나씩 찾기 귀찮을 것 같고 해서 곰곰이 고민을 해 보다가 부엌 가운데에 있는 거의 장식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아일랜드 작업대를 쓰기로 (나 혼자) 결정했다.
일단 아일랜드 위에 있는 비타민 및 영양제들은 모두 치우고, 작업대 가장 아래에 있는 수납장에는 있는 보냉팩, 도시락통 같은 것은 현재 쓰고 있지 않은 물건이 대부분이라 정리를 하기로 했다. 우선 안에 있는 물건을 전부 꺼내고 내부를 한번 닦았다. 보냉팩들은 2~3개만 남긴 뒤에 도시락통과 함께 베란다에 있는 창고에다가 넣어놓고, 커피나 차 종류 같은 것들은 캡슐커피 머신이 있는 쪽 위 찬장을 정리해서 모아두었다.
엄마께서 자주 쓰시는 부침가루, 감자 가루 같은 재료들은 그대로 바구니 안에 넣어서 맨 왼쪽에 놓고, 남은 3/4 가량 되는 공간에 보관하기로 했다. 빈 바구니 두 개를 가져와서 하나에는 박력분, 강력분, 이스트, 코코아 파우더 등의 베이킹 재료들을 꽉꽉 채워 담고, 다른 한 개에는 핸드 믹서, 저울, 짤주머니 등의 베이킹 도구를 분리 해 놓았다. 조금 남은 공간에는 빵 틀과 식힘망을 잘 겹쳐서 놓고 긴 유리병에다가는 고무 주걱, 분당체, 가위 등의 길쭉한 것들을 놓으니 베이킹 재료, 도구들이 정말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다음에는 냉장고였다. 연유나 생크림 등의 재료들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냉장고 곳곳에 베이킹 재료들이 퍼져있었는데 엄마께서 한번 이야기를 하셨다. (뭐라 하시지만 공간을 내어주시지 않는) 엄마께서 아빠와 여행 가셨을 때 일을 착수하기 시작했다. 냉장고 문에 있는 가장 아래칸을 쓰기로 결정하고 그곳을 비우기 시작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들과 피클들 등을 모두 다 버리고 엄마가 쓰시는 재료들은 쓰기 편한 눈높이에 있는 칸에다 정리해놓았다. 참고로 절대 아무거나 버리지 않았고, 엄마의 재료들을 잘 정리해서 모아둔 것이다. 그다음 아래칸을 역시 한번 싹 닦은 뒤에 그곳에 베이킹 재료들을 모아두었다.
이렇게 부엌의 1%를 빌려서 나만의 베이킹 공간이 탄생했다.
부엌에 나만의 물건과 공간이 생긴 게 처음이라서 어찌나 뿌듯했던지 냉장고를 열 때마다 베이킹 재료 칸을 보면서 미소 짓고 빵을 만들 때마다 작업대에서 재료들을 꺼내면서 정리하길 정말 잘했다며 스스로 칭찬해주었다. 디저트 접시나 냄비 같은 것도 사서 모아 두고 싶은데 엄마께서 지분을 더 허락하시려나 모르겠다.
딱~ 공간 하나만 더 써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