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김석규를 데리고 나간 후 이희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간밤의 숙취로 무거워진 머리를 식힐 겸 정원의 벚나무에 시선을 던졌다. 달달한 벚꽃향기가 진료실 안으로 훅 끼쳐 들어왔다. 이희수는 목 운동을 하며 무심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러다가 김석규의 입원 과정을 떠올리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김석규는 부산의 한 예식장에서 갑자기 쓰러져 119구급차량으로 종합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혼수상태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말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한강철교 폭파, 낙동강 전선 사수, 인천상륙작전, 북진통일, 압록강 철교 폭파, 만주 폭격 등 6.25전쟁 때나 쓰였을 용어들이 김석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고 했다. 의료진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침상에 누운 사람이 이승만인지 맥아더인지 한동안 헷갈려했다는 것이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희수는 창문 쪽으로 향하고 있던 회전의자를 돌려 책상 앞에 당겨 앉았다.
“김석규 환자 면회객입니다.”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빼꼼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신병원 규칙에 따르면 신입환자의 경우 두 달이 경과 하기 전에는 면회객이 의무과장을 먼저 면담해야 했다. 그건 환자에 대한 정보수집뿐만 아니라 환자 앞에서 불필요한 언행을 삼가도록 사전 고지하기 위한 절차였다. 면회객이 환자에게 동정심을 갖고 대함으로써 왜곡된 생각을 하게 하거나, 해서는 안 될 말을 함으로써 환자를 자극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가 면회객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다시 문을 닫았다.
“저는 김석규의 친구 백상호입니다.”
백상호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이희수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곧장 응접소파에 가서 앉았다. 덩치는 작고 머리는 큰 백상호의 모습이 언뜻 귀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 친구 결국 이리될 줄 알았습니다.”
백상호가 오른손으로 은테안경을 고쳐 쓰며 태연하게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지독한 악담일 수도 있었지만 백상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취하도록 마셔댔고, 취했다 하면 사람이 아니었어요. 바로 개였죠, 개. 하긴 술 취하면 개라는 말도 있으니 그게 욕은 아니겠죠? 술의 본성이랄까, 술꾼의 본성이랄까. 클클.”
김석규를 향한 욕인지 술에 관한 일반론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으며 백상호가 스스로 만족하는 듯 낄낄거렸다. 이희수는 환자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마치 백상호의 말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니 개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차라리 군견으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술 마시는 일을 군인이 전장에서 적 소탕하듯 하니 비유하자면 군인 같은 개, 아니면 개 같은 군인? 에이, 간단하게 군견이라 하죠. 하하, 군견. 내가 말했어도 근사하군요. 그죠? 사람이 군견이 됐다는 건 미쳤다는 증거고, 그러니까 여기에 들어왔겠지요. 담배 피워도 되나요?”
이희수는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를 들고 가서 백상호와 마주 보며 소파에 앉았다.
“이왕이면 담배도 한 개비 주시겠어요?”
백상호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엿장수 가위질하듯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짤깍거렸다. 이희수는 가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백상호에게 내밀었다.
“불도 좀.”
이희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라이터를 건넸다. 백상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주 깊게 연기를 빨아 댕겼다.
“그런데 병명이 뭔가요? 알코올중독으로만 알고 있는데 여기 입원한 걸 보면 정신병도 있는 것 같고.”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환자의 개인정보이기도 하니까요.”
“아이, 괜찮아요. 그 친구처럼 저도 남들은 알코올중독이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백상호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쾌활하게 말했다. 살짝 술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희수는 자신의 코를 믿을 수 없었다. 그 역시 간밤의 숙취로 은근히 술 냄새를 풍기는 중이었다.
“저와는 절친입니다. 문우이기도 하고요. 저는 시를, 석규는 소설을 쓰지요. 사실 여기 들어올 사람은 따지고 보면 석규가 아니라 저예요.”
백상호의 전언에 따르면, 김석규는 직장인 마인드에 충실해 삼시세끼 밥을 먹듯 술도 규칙적으로 마셨고, 술에 취했어도 동석자들을 끝까지 챙길 정도로 매너가 좋았다. 그래서 별명이 술 취한 영국 신사였는데, 옥에 티라면 규칙적인 음주에 항상 과음과 폭음이 보태진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백상호는 자칭 프리랜서라서, 택시회사 역시 근무일이 정해져 있지만 그건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밤과 낮의 구분도 없이 음주를 즐겼는데 문제는 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김석규 같은 강골이 아니라 체력이 부실한 백상호는 (폭음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과음만 해도 주사가 있어서 친구들에게 따돌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백상호가 잠시 끽연하는 틈을 타 이희수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백상호가 보여주는 행동 양태는 취중이 아니라면 조울증을 의심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대개 면회객이 의무과장실에 들어서면 정신병원이라는 낯선 환경에 대한 부담감이라든지 아니면 입원 환자에 대한 걱정 때문에 먼저 입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묻는 말에만 간략하게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백상호는 처음 보는 주치의에게 담배를 달라하고 환자에 관해 묻지도 않았는데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었다.
“제가 정신병자라는 게 아니라 소설가보다는 시인이 정신병 앓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최승자 시인이라고 있어요. 최 시인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현상을 뛰어넘는 세계를 추구하느라 노장사상, 점성술 등 신비주의 공부에 빠지면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었다 하더군요. 허허, 참 신기해요. 석규는 시인도 아니면서 정신병을 앓게 되다니.”
“알코올중독이란 게 정신장애의 일종입니다만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정신분열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 뭔데요?”
“뭐랄까, 알코올성 편집증의 일종이라고나 할까요?”
이희수가 자신을 앞에 두고 젠체하는 백상호가 눈꼴사나워서 중간에 한 번 무질렀더니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이희수는 귀찮은 면회객을 얼른 내보내고 구내식당으로 가서 숙취에 쓰라린 속을 풀어줄 국물이라도 한 대접 마셔야 했기에 백상호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다음 환자도 봐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면 해보세요.”
“치료에 도움 될지 모르니 김석규가 저에게 헌정한 단편소설을 보여 드릴게요.”
백상호가 가방을 뒤적거려 얇은 책자 하나를 꺼내놓았다. 조악하게 제본된 책자의 제목은 ‘도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