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송은 군인에게 치욕이 아닙니다. 더 나은 전사가 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죠. 김 선생님,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계급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희수는 얼토당토않은 김석규의 말을 차지게 받아주며 최대한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라포르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계급이요?”
김석규가 무덤덤하게 되물었다. 어떻게 보면 초탈했다 여겨질 수 있겠지만, 워낙 얼굴색이 거무칙칙해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계급이 없는, 거 뭐랄까. 음, 이순신 같은 존잽니다. 백의종군하는 게지요. 군인에게 계급이 뭐 대수겠어요?”
“그럼 장군이시군요.”
이희수가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반문하면서도 속으로는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장군은 장군이지. 당신 같은 술고래가 최소한 장군은 되지 않겠어?
김석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잠자코 앉아있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언론대응기법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를 김석규가 천연덕스럽게 구사하고 있었다.
“김 장군님, 앞으로 장군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허허.”
김석규가 천장 쪽으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를 위해 장군님께 질문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희수가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것처럼 송구스러워하며 물었다. 김석규는 얼굴 가득 흐뭇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후송 오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뭐라고! 지금 후송 경위라 그랬나? 자넨 계급이 뭔가!”
김석규가 대뜸 조울증 환자처럼 발끈하고 화를 냈다.
“대위입니다.”
이희수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재차 공손하게 대꾸했다. 대위는 그가 군에서 의무관으로 전역할 당시 계급이었다.
“좋아. 이 대위. 그걸 꼭 들어야겠는가?”
“예, 장군님 치료를 위해서라도 제가 들어봐야 합니다.”
이희수는 김석규의 입원 과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에게서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정말 이럴 건가? 대위는 대위의 임무에 충실하게. 장군의 후송 경위는 극비야, 극비. 어찌 장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알려고 하는가! 장군에 대한 예우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김석규가 검게 그을린 얼굴의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을 쳐댔다. 그 바람에 광대뼈 위의 피딱지가 꿈틀거렸고, 그게 피딱지 아래 상처를 건드렸는지 김석규는 인상을 험악하게 찌그러뜨렸다. 진료실 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에 간호사가 무슨 일인가 싶어 빠끔 문을 열어보았다.
이희수는 손짓으로 간호사를 내보내고 김석규에게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라포르를 형성한답시고 환자에게 주도권을 너무 내주는 것도 치료를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였다. 마치 연인끼리의 사랑싸움처럼 의사와 환자는 서로 밀고 당기는 ‘밀당’을 잘해야 했다.
이희수는 강렬한 시선으로 김석규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김석규가 반사적으로 거무칙칙한 볼을 씰룩거리며 동요했다. 이희수는 더 몰아붙이지 않고 말문을 열었다.
“장군님. 제가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물론 장군님의 후송 경위가 스케일 크고 스펙터클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본의 아니게 일개 병사보다도 더 찌질한 꼴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탁 까놓고 장군은 사람 아닙니까?”
사뭇 비아냥조인 이희수의 말에 김석규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희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장군님의 후송을 적들에게 알리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국군 의무과장입니다. 장군님으로부터 취득한 정보는 전적으로 장군님의 신병치료에 사용될 겁니다. 장군님, 저를 믿으십시오. 저는 장군님의 치부를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장군님의 부상을 치료해서 다시 전쟁터에 나가도록 도와 드리려는 겁니다.”
사뭇 누그러진 목청으로 해명하는 이희수의 모습에 다시 자신감을 얻은 김석규가 눈동자에 잔뜩 힘을 넣고 이희수를 노려보았다. 조금 전 이희수와의 눈싸움에서 순간적으로 흔들린 것이 못내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김석규는 일개 대위에게 밀려서는 역전의 용사라 할 수 없다며 눈알에 한껏 힘을 몰아넣었다. 주룩,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희수가 픽,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분위기 전환을 위해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 전투에 나서게 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김석규는 속으로 미소를 삼켰다. 드디어 자신이 이긴 것이었다. 이희수가 분위기 전환이란 핑계를 대면서 꼬랑지를 내린 것이었다. 김석규는 상대를 배려해서 세리머니는 생략한 채 잠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첫 전투를 치른 게 그러니까….’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불행하게도 소년병 시절이었네.”
이희수가 잠시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경외와 존경이 담긴 의미를 김석규가 알아차리도록 표정을 최대한 과장했다.
우리나라 실정에 비춰보면 사실 소년병이란 건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병역법에 따르면 만18세 이상이 되어야 입대가 가능했다. 물론 6.25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김석규의 나이를 따져보면 그 당시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하기야 김석규가 6.25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다 해서 그다지 흉이 될 건 없었다. 어떤 환자는 만주에서 ‘말 달리며 개 장수’가 아니라 ‘개 달리며 말 장수’를 했다고 능청스럽게 늘어놓기도 했다.
“그때가 아마 국민학생 때였을 게야. 그땐 적이고 아군이고 피아간에 구분을 못 하던 시절이었지. 뭐가 뭔지도 모를 때였어. 똥인지 된장인지도. 그저 찍어 먹어 봐야, 아 이게 똥이구나, 아 이게 된장이구나 하던 때였지.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선천적으로 군인 기질을 타고났나 봐. 본능적으로 귀신같이 적을 찾아내서는 섬멸을 하곤 했지.”
“당시 사용했던 총기는요. 소총은 아무래도 무리였을 테고.”
소총은 소주를 지칭하는 은어였다. 알코올중독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사용하는 단어였다.
“총은… 당연히 딱총이지.”
김석규가 입술을 오므려 똥집처럼 만들고 휘파람으로 ‘황야의 무법자’를 불더니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며 따쿵, 한 방 쏘고는 곧장 술잔 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 딱총은 탁주, 즉 막걸리를 뜻하는 은어였다.
“어쨌든 그땐 뭐가 뭔지 모르게 정신없이 전투를 치렀어. 적의 화력이 그렇게 세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소년병이 상대하기엔 참으로 버거웠지. 그 후유증으로 며칠을 앓아누웠을 정도니까 말이야.”
땅꾼들은 어릴 때부터 뱀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뱀을 보면 마치 애완동물 대하듯 덥석 만지고 예뻐한단다. 그처럼 김석규도 적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보았다. 애들이 제기차기, 딱지치기, 땅따먹기, 말뚝 박기, 술래잡기하듯 아주 쉽게 전투에 돌입한 것을 보면 김석규는 타고난 전사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게 아마 지금의 장군님을 있게 한 밑거름인 것 같군요. 후회는 안 하세요?”
“후회? 후회라… 그게 뭘까. 후회란 게. 그런 것도 있었나?”
김석규가 지긋한 시선으로 이희수를 쳐다보았다.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까 인제 그만 전선에서 물러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이희수가 안타까운 듯 권유했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간을 상했을 역전의 용사답게 김석규는 거뭇한 얼굴로 잠시 회한에 잠겼다.
“나도 이젠 지쳤어. 힘들어. 전쟁터에 나선다는 게.”
“그럼 왜 퇴역을 안 하세요. 이번에 후송된 걸 계기로 퇴역 신청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이 나이에 전투를 피한다고 누가 나를 비겁자라 하겠나? 암, 그럴 사람은 없지. 하지만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에 퇴역이란 있을 수 없고, 어찌 보면 내가 전투에 나서는 건 이제 습관이야 습관. 습관이 되어버렸어.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절도범이 절도를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는 산악인의 말처럼 그저 적들이 도처에 깔려있어 전쟁을 수행할 뿐이지. 헐헐.”
김석규가 누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