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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갑 Sep 28. 2024

역전의 용사 - 1

연재소설 <블랙홀>

사월 푸르른 하늘 아래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2차선 도로를 따라 팝콘을 잔뜩 부어놓은 듯 벚꽃 행렬이 뱀처럼 길게 꼬리를 물었다. 그 밑에 내장처럼 혹은 터널처럼 아스팔트 길이 뚫려 있었는데 이따금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머리 위에서 꽃비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장천시(長天市)뿐만 아니라 인근 강주시(康州市)에까지 호가 나 있어 상춘객들의 발길이 잦은 이 도로는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제각각 기묘한 형태로 가지를 펼친 채 아스팔트 길을 궁륭처럼 감싸 안았다.


노란 택시 한 대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상춘객들을 지나치며 벚꽃 터널을 내달렸다. 택시 꽁무니에 먼지 대신 꽃잎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택시 안에선 이문세의 노래 ‘알 수 없는 인생’이 흐르고 있었다. 얼굴은 크고 체격은 작은 백상호가 구부정한 자세로 핸들을 잡고 있었다.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 조금만 늦춰줄 순 없나요 / 그 시절 지난날이 그리워요.


백상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눈부시게 화창하고 꽃향기 가득한 봄날, 김석규를 면회하러 가는 길이 마치 학창시절 소풍 가는 것처럼 아련한 추억에 젖게 했다. 까까머리 고교 시절 백상호는 김석규, 오종탁, 임봉식, 장영철과 함께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봄 소풍을 간 바닷가 방풍림 소나무공원에서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술을 마시다가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았었다.


문청 오총사는 고교 졸업 후 ‘벗글’이란 이름의 동인지를 만들었다. 백상호만 지방 국립대 사범대학에 진학했고 나머지는 재수생활을 하던 때였다. 매월 시나 수필을 실었고, 가끔 김석규의 소설도 선보였다. 장영철의 여자친구가 타이핑을 한 ‘벗글’은 오총사의 자부심이요 문학에 대한 열정 그 자체였다.


‘벗글’을 발간한 날이면 오총사는 거무칙칙한 상평공단 안 장영철의 외딴 방에 모여 ‘술과 문학은 바늘과 실 같은 관계’라며 거나하게 취하곤 했다. 준비한 술이 동나면 제법 멀리 떨어진 가게까지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일은 백상호가 도맡아 했다. 백상호는 술 마시는 것도 즐겼지만 남들에게 술 권하는 것도 못지않게 좋아했다.


눈이 내린 겨울밤이었다. 그날도 벗글 오총사는 발간 자축연을 하고 있었다. 제법 많이 준비한 술이 떨어졌고, 습관처럼 백상호가 자전거를 타고 술을 사러 갔다. 그런데 삼십 분이 지나도록 기척이 없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장영철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후 둘이 돌아왔다.


“왜 그래. 다쳤어?”


백상호의 이마 쪽 출혈을 목격한 임봉식이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어떤 자식이 우리 상호를 팼어!”


김석규가 목청 크게 소리쳤다. 당시 오총사는 이리저리 어울려 다니며 젊은 혈기에 시비 붙고 패싸움도 하던 때라서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자 오종탁과 임봉식도 덩달아 일어났다.


“오바하지 말고 다들 앉아. 자전거 타고 가다가 혼자 처박힌 거야.”


장영철이 손사래를 치며 진정시켰다.


“개천에 떨어져 정신 잃은 걸 깨워 데려왔어.”


자전거를 탄 오종탁이 눈길에 미끄러져 1.5미터 아래 개천으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 큰일 날 뻔했네. 술은 사 왔어?”


김석규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상호가 다쳤다는 데도 술만 찾냐?” 장영철이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반문하더니, “그놈의 술! 여깄다.” 하며 방문 밖에 놓아둔 비닐봉지를 안으로 들여왔다.


그렇게 벗글 오총사가 고교 때부터 술을 마신 지 어언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오총사는 문학보다 술에 탐닉한 결과 문학적 성과는 없었고, 술로 인한 부작용만 잔뜩 안게 되었다.


한때 소설 쓰는 경찰로 지역문단의 관심을 받았던 김석규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고, 술에 관한 한 김석규의 도플갱어라 불리는 오종탁은 단주와 음주를 반복하다가 현재는 금주한다며 잠행에 들어가 있었다. 백상호는 잦은 음주와 기행으로 이혼당했고, 임봉식은 잇단 사업 실패로 백수 생활을 거쳐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나마 오총사 중 번듯하게 사는 인물은 장영철이었다. 그는 중앙일간지 J일보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백상호는 벚꽃 가로수 길을 주행하다 오른편으로 핸들을 틀어 콘크리트 포장의 좁은 농로에 진입했다. 농로 양옆으로는 마른 흙을 뒤집어쓴 논들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농로를 지나자 이번엔 야산 쪽으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계단식 밭들이 연접해 있는 오르막길을 지날 때까지 주위에 민가는 보이지 않았다. 야산에는 야생 벚나무들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서니 분지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에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단층 건물 두세 동이 벚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웅크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나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던 시설이었는데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수용자들이 죽거나 흩어져서 황폐해졌던 건물을 5.16 이후 어느 독지가가 단장해 부랑아 수용시설로 운영했었다.


그러다가 10.26이후 신군부가 들어서자 독지가는 사양 산업이 된 부랑아 수용을 중단하고 과감하게 정신병원으로 바꾸어 초대 원장 자리에 올랐다. 지금은 그 아들이 제2대 원장으로 부임해 있었다.     




김석규는 의무과장 뒤편의 창밖을 오래도록 응시하고 있었다. 창 너머 정원의 벚나무들이 함박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겨울도 한겨울인 모양이었다.


‘지금이 몇 월인가, 12월? 1월? 2월? 에이, 아무려면 어때.’


그런데 실내는 난로를 켜지 않았어도 훈훈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마치 봄날의 여느 하루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함박눈이 문득 벚꽃 무더기로 보이기도 했다.


‘내 눈에 왜 헛것이 보이지. 내가 드디어 미쳐버렸나? 에이 아무려면 어때.’


김석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은 거무칙칙한 빛깔에 살점 하나 없이 강팔라 보였다. 언제 넘어져 깨진 건지 툭 불거진 광대뼈 주위에는 피딱지가 까맣게 말라붙어 있었다.


“뭘 그렇게 눈을 감고 생각하세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의무과장 이희수가 메마른 음성으로 물었다. 어제 과음을 하고 노래방을 다녀와서 그런지 목에 가래가 낀 듯 걸걸했다. 이희수는 누런 때가 낀 가운을 걸치고 앉아있었다.


“후송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후송요?”


“군인이 병원에 실려 오면 그게 후송이지 뭡니까?”


김석규가 감았던 눈을 치뜨며 반문했다. 그 눈길에, 그것도 모르면서 의무과장을 하고 있냐는 질책이 서려 있었다. 이희수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유 대한의 군인입니다. 무수히 많은 전투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란 말이에요.”


김석규가 눈에 힘을 주고 이희수를 노려보았다. 이희수는 ‘누가 뭐랍디까?’ 하는 속말을 삼키고는 고개를 주억거려 동의를 표했다.


“전쟁터에서 산화하는 것이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 국군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후송을 완강하게 거부했었는데. 아, 이제 무슨 낯으로 전우들을 볼 수 있을지….”


김석규가 말끝을 흐리며 눈길을 돌렸다. 진심으로 전우들에게 미안한 듯 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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