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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갑 Sep 21. 2024

양상사 혹은 주상사 - 2

연재소설 <블랙홀>

하지만 형사2팀은 팀장부터 두주불사라 회식이 있는 날은 3차, 4차까지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자정이 넘는 건 다반사고 새벽까지 술자리가 파하지 않은 적도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형사3팀은 에프킬러를 흠뻑 맞은 파리들처럼 시들시들해 민완구의 혀 차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졸고 앉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김석규는 민완구의 말이 마치 형사2팀 들으라고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발언자와 워딩은 다르지만 평소 집사람에게 듣던 말과 그 취지나 맥락이 너무 흡사해서 소름마저 끼쳤다.


지국창은 민완구의 주선으로 양상사 혹은 주상사에게 몇 푼의 돈을 쥐여주면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지국창은 양상사 혹은 주상사에게 이마로 들이받힌 직원이 있으니 서로 피장파장 아니냐며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자고 제안했지만, 양상사 혹은 주상사는 그게 어떻게 무게가 같은 일이냐고 우겼다. 자기 같은 약골의 한방과 저 곰 같은 떡대의 한방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는 것이었다.


이에 지국창은 그럼 쌍방이 고소하면 되겠네 하면서 엄포를 놓았지만 양상사 혹은 주상사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고, 그 소리만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다고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기고만장했다.


“내가 집이 있어? 가족이 있어? 좋아, 한번 끝까지 가보자!”


양상사 혹은 주상사가 배 째라는 식으로 배짱을 퉁기자 지국창과 떡대 둘은 기가 끅 차서 두 손 두 발 다 드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체면상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 같아서는 고소를 통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양상사 혹은 주상사의 상습적인 폭거를 바로잡고 싶은데 민완구 팀장님이 원만한 해결을 간절히 바라니 이번만큼은 우리가 양보한다고 지국창이 큰 인심 쓰듯 말했다. 민완구는 지국창의 말본새가 기분 나빴지만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왁자지껄하던 양상사 혹은 주상사와 지국창, 관리사무소 떡대 둘이 나가자 사무실은 갑자기 공연이 끝난 무대처럼 적막해졌다. 더욱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온 오후부터는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슬픈 음악 같은 빗소리를 함께 들으니 술꾼 입장에서는 술 생각이 간절해지고 있었다. 김석규는 형사3팀 쪽에서 듣지 못하게 조용한 목소리로 차석인 오경문에게 시켜 형사2팀 저녁회식을 연판장 돌리듯 알렸다.


빗소리는 지구상의 그 어떤 음악보다 분위기 잡는 데 안성맞춤이고, 비 오는 풍경은 그 어떤 그림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어 운치 하나는 끝내주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술은 그 어떤 날보다도 훨씬 감치고 맛깔났다.


어떤 이는 햇살 좋은 날의 낮술을 최고로 치지만 낮술은 입에 대는 순간 부모도 몰라보게 될 공산이 컸다. 그래서 낮술은 고주망태의 지름길이라 불효의 술이거나 패가망신의 술이라 불려도 딱히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석규가 낮술을 피한다거나 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형사2팀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시내 중심가의 어느 삼겹살집에 모였다. 원통형의 탁자 한가운데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곳인데 값싸고 질도 좋고 양까지 푸짐해서 평소에도 손님이 많은 곳이었다. 특히 새콤달콤한 파절이는 삼겹살에 곁들여 먹으면 풍미가 한결 더해 여성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다. 삼겹살집은 탁자마다 손님으로 꽉꽉 채워져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실내에 자욱했다.


“오늘은 1차만 하고 일찍 들어가자.”


김석규가 마치 집에 무슨 일이 있다는 투로 말하며 잔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팀원들이 서로 잔을 부딪으며 쪽, 소리 나게 소주를 마셨다. 고교 때까지 씨름선수였던 막내 형사 정재길은 나뭇등걸만 한 팔뚝을 재게 놀려 고참들의 술잔을 순서대로 채워놓고는, 상추 위에 삼겹살 서너 점을 올리더니 그 위에 또 파절이를 올리고 마늘과 고추를 된장에 듬뿍 찍어 한 쌈 크게 만들어서 입안에 욱여넣었다.


“항상 1차만 하고 가자고 말씀하셨어요.”


얼굴색이 가무잡잡해 강인한 인상을 주는 오경문이 고기를 씹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자 다른 형사들이 낄낄거렸다. 회식자리에 들어설 땐 언제나 1차에서 끝내자고 다짐하지만 그건 단지 의례적인 말에 불과할 뿐이고 이제껏 회식이든 술자리든 김석규가 있는 한 1차에서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양상사 혹은 주상사는 진짜로 상사출신이래요?”


정재길이 퉁퉁한 얼굴을 양 볼까지 불룩하게 만들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덩치와는 다르게 호기심이 많은 눈빛이었다.


“민 팀장 말로는 군 출신이 맞고, 이라크 파병까지 갔다 왔다는 소문도 있는 모양이더라고.”


김석규가 언젠가 민완구에게 들은 대로 말해주었다.


“그 나이에 파병까지 갔다 왔으면 돈도 꽤 있겠는데 왜 노숙자로 살까요?”


삼석인 조정석 형사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조폭처럼 생긴 험상궂은 인상이라 남들도 말 섞기를 꺼리지만, 그 자신도 말을 잘 하지 않는 과묵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팀원들과 함께 있으면 곧잘 농담도 제법 하곤 했다.


“그게 다 술 때문이겠지. 양상사 혹은 주상사 하는 거 봐. 저러고 사는데 집안에 뭐 하나 남아나겠어? 돈이고 마누라고 말이야.”


오경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술잔을 비웠다. 정재길이 두꺼운 팔뚝으로 술병을 들자 오경문이 술병을 낚아채더니 김석규에게 잔을 건넸다.


“이거 왜 잔을 돌리고 그래. B형 간염 겁나서 잔 돌리지 말자고 그렇게 정부에서 캠페인을 하는데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석규는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한잔하시고 우리 후배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유익한 말씀 좀 해주세요.”


취기가 살짝 도는지 오경문이 너스레를 떨었다. 평소엔 강인한 인상의 천생 형사인 오경문도 술자리에서만큼은 김석규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건 김석규와 오랜 세월 호흡을 함께 한 정리 탓이기도 하지만 김석규의 인간적인 면모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나서기 좋아하고 내세우기 좋아하는 민 팀장과 달리 김석규는 자기PR 시대에 걸맞지 않게 묵묵히 일하면서 성과가 있으면 팀원들의 공으로 돌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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