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우리들의 태극기였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기념관과 박물관, 전시관 등에서는 독립운동 및 광복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행사가 열리고 있는데요. 남산골한옥마을 전통공예관에서는 태극기의 의미와 역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태극기 사진전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서울남산국악당 공연 보러 두 달에 한 번은 남산골한옥마을에 방문함에도 불구하고 전통공예관에서 태극기 전시가 열리고 있음을 몰랐었습니다. 하지만 광복 80년 서포터즈 “YOUNG:光”으로서 전시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에는 바로 우리의 소중한 태극기 보러 바로 방문하였습니다.
기간 : 2025. 4. 11.(금) ~2025. 8. 17.(일)
시간 : 10:00~18:00 (매주 금요일만 21:00까지)
장소 : 남산골한옥마을 전통공예관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4길 28 남산골한옥마을)
금액 : 무료 / 문의 : 02-6358-5533
남산골한옥마을에 가보신 분들도 전통공예관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요. 다름 아니라 5채의 한옥이 있는 정문 입구 왼편의 건물이 바로 전통공예관입니다. 공예관의 한편에는 기념품 등을 판매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 바로 현재 태극기 전시관이 마련돼 있습니다.
광복 80주년 태극기 사진전 <우리들의 태극기>
태극기 유래와 의미 ~ 어기와 태극기 목판 ~ 일제강점기 태극기 ~ 6. 25 전쟁 중 태극기 ~ 태극기 변천사
전시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태극기로 꽉 차서 그런지 뭔가 꽉 차고 비장한 느낌이 살짝 들더라고요. 좌우 중 어느 쪽으로 먼저 관람할지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연대기를 고려하여 우에서 좌로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첫 전시물을 통해서는 태극기의 사용 유래와 의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가면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요. 대한제국은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1983년 3월 6일 왕명으로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는데, 국기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아니어서 이후로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광복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949년 10월 15일 [국기제작법고시]를 통해 국기 제작 방법을 확정하여 발표했다네요.
우리나라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며, 국가의 독립적인 정체성과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하며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문양과 네모서리의 건곤감리 4괘로 구성돼 있습니다.
태극 문양의 빨간색은 양(陽)을 파란색은 음(陰)을 나타내며 이는 우주의 균형과 조화를 의미합니다. 4괘는 오행 이론에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 ☲)를 나타내며 각각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합니다.
이실직고하자면 저는 4괘와 관련 직선 개수가 반시계 방향으로 각 3개, 4개, 6개, 5개로 이뤄져 있다는 식으로만 알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태극기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구체적으로 4괘가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한다는 것은 부끄럽게도 이번에서야 제대로 인지하였습니다. 깊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앞으로는 절대로 잊지 않고 확실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 왼쪽으로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모습의 태극기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아, 자세히 보니 한 전시물은 느낌은 비슷하지만 태극기는 아니더라고요.
그것은 ‘국왕의 깃발’을 뜻하는 ‘어기’였습니다. 1882년 8월 처음 사용되어 보완을 거쳐 1983년 1월에 공표되었는데요. 이 어기가 애초에 국기로 고안되었다고 하고, 태극기의 원류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기 옆에는 태극기 목판이 있었는데, 현 태극기와 유사한 모습이었습니다. 1919년 제작된 것으로 목판으로서 희소성이 있고, 당시 제작 기법 등도 헤아릴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커 국가등록문화유산(제385호)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평양 숭실학교 태극기
목판 옆 두 태극기도 1919년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평양 숭실학교 태극기’로 평양 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숭실대학교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입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김건, 박병곤, 장두환, 노원찬, 길진경 등이 손에 드는 작은 태극기와 함께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만세 시위 때 학교에 게양된 이 태극기를 끌어내리려 하자 당시 교장이던 마펫 선교사가 그 태극기를 빼앗아 보관하였고 후에 미국에 있던 그의 유언으로 아들 마펫 박사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제가 중학생 때 게임에만 몰두했던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움 마음도 들었고 그리고 제작한 학생에 대한 경외심도 또한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외국인의 입장임에도 이 태극기를 끝까지 지키고 우리나라에 돌려준 마펫 부자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성함 꼭 기억하겠습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와 본윅 태극기
그 옆의 ‘남상락 자수 태극기’는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부인 구홍원과 같이 손바느질로 만든 희귀한, 독립만세 운동에 사용한 태극기입니다.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에서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된 남상락 독립운동가 역시나 제가 이제야 성함을 인지했네요. 잊지 않겠습니다.
‘본윅 태극기’는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제럴드 본윅이 한국인 친구로부터 받은 태극기입니다. 태극기 바탕 천은 외국제 모직 계통이고, 깃봉 쪽의 천은 삼베며 재봉틀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라 합니다.
이상 우측 편의 태극기들은 비슷한 연대에 제작되었고 비슷한 모양새이긴 한데 4괘의 각 위치와 문양이 미묘하게 다 다르더라고요. 이처럼 만든 사람도 만든 모양은 다 달랐지만,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똑같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진관사 태극기
반환점을 돌기 전 가운데 TV에서는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는데요. 바로 진관사 태극기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태극기는 2009년 진관사 부속건물 칠성각을 해체 및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인데, 전문가들은 진관사에서 불교계 독립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께서 벽면에 숨겨놓은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흥미롭게 영상을 보다가 진관사 태극기 옆으로의 백초월 스님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떤 마음으로 태극기를 벽면에 숨겨놓으신 걸까요?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 감사드립니다. 제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영상을 시청을 마치고 반환점을 돌아 좌측 태극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신규식 소장 태극기
반환점을 돌아 좌측 태극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1941년 김구 주석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 신부에게 준 태극기로,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 선생 친필 묵서가 쓰여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글씨를 쓰셨을까, 그 마음을 짐작해 보자니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매우사 신부는 미국에서 태극기를 도산 안창호 선생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 1985년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그 옆의 1921년 제작, 독립운동가 ‘신규식 소장 태극기’는 신규식 선생이 기증한 태극기를 콘스탄틴 대위가 소장하다 기증자 이태원에게 줬다고 합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마찬가지로 백 년이 넘었음에도 비교적 보관 상태가 양호해 보였습니다.
소중한 태극기를 잘 보관해 주신 안창호 선생 후손들과 콘스탄틴 대위, 이태원 기증자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글씨가 가득한 또 하나의 태극기는, 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 대원이 1945년 2월경 동료 대원 이정수로부터 받은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입니다. 1946년 문 대원이 다른 부대로 옮기게 되자 아쉬워한 동료 대원들이 태극기 여백에 서명을 해준 것이라고 하네요.
광복의 기쁨과 바람직한 국가성, 완전한 독립 국가에 대한 염원 등이 가득 적혀있는 이 태극기 역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비주얼적으로도 캘리그래피 같은 느낌이 드는 힙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광복군 태극기 양옆에는 6. 25. 한국 전쟁 당시의 태극기가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의 태극기들은 정말 처음 봤고 태극기 문양과 4괘 주변에 비장함을 담은 글귀가 가득해 인상 깊었습니다.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 6. 25. 당시 태극기 /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눈에 띄는 태극기로, 태극기 문양과 4괘 사이와 바깥 여백에 글씨로 가득 찬,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였습니다. 1950년 9월 1일 제3차 학도병 자원 시 부산의 건국법정대학 법률과 학생이 주축이 돼 서명한 태극기라고 하네요. 학도병이 쓴... 전쟁 전 무운장구를 염원하고 결의를 다지는 글귀와 서명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 전쟁이 독립 전쟁이 아니라 한국전쟁이었기 때문이지요. 사료적 가치가 커 국가등록문화유산(제392호)으로 지정된 이 태극기가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쟁 중 보관한 태극기여서일까요. 이전에 본 더 오래된 태극기에 비해 색이 바래고 낡은 모습이 확연했습니다.
‘6. 25. 당시 태극기’는 1948년 6월 18일 입대해 1957년 상사로 예편한 천봉희가 소장했던 태극기로 천 상사가 입대할 때부터 입수해 전쟁 동안 계속 보관한 태극기라 합니다. 역시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내용이 있으며 태극의 상하에는 ‘남북통일’, ‘삼팔선 파괴’ 글씨가 쓰여있습니다.
유관종 소위가 1950년 10월 초 호남지구 진격 작전 시 사용한 태극기로 가운데 위쪽으로 ‘정의’라는 글자와 백두산에 태극기를 휘날리겠다는 각오와 함께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내용 또는 지명 등이 쓰여 있습니다. 전쟁 중 긴박한 상황에서 그렸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커 국가등록문화유산(제390호)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마지막 전시물은 태극기의 변천사를 보여줬는데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이응준이 고안한 <1982년 최초의 태극기>, 구한말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외교관 오웬 니커스 데니에게 하사한 <1885년 데니(O.N.Denny) 태극기>,
조선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불원복 글자가 수 놓인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된 <1907년 불원복 태극기>,
앞서 전시에서 본 <1941년 김구 서명문 태극기>, 마지막으로 1949년 문체부 고시로서 현행과 같은 태극기 규격이 정해져 오늘날까지 이어진 <2025년 대한민국 태극기>까지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많은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행사 중 <우리들의 태극기 사진전>을 보러 온 이유는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보고 과연 진정한 의미의 태극기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태극기는 시대에 따라 사용자에 따라 모양은 달랐지만 전시 제목처럼 모두 “우리들의 태극기”였습니다. 이 모든 태극기들의 가치와 정신은 일맥상통, 즉 하나의 조국과 '하나의 민족 그리고 자주독립을 의미한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남산골한옥마을 전통공예관에서 열리는 “우리들의 태극기” 전시 보며 태극기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을 몸소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전시 마감일이 한 달(~8. 17.)도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주시고요, 광복 80주년 맞이 다양한 뜻깊은 행사에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