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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특별전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광복의 경험과 정신은, 시대를 관통해 미래로 이어진다!

by 곽한솔

광복 80주년 서포터즈 “YOUNG:光”, 8월 활동을 지나 9월이 온 지금, 이번에도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 전시를 알려드릴까 하는데요.


덕수궁 인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광복 80주년 특별전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전시입니다. 3월에 시작된 이 전시는 다른 서포터즈 분들께서 많이 다녀가시고 소개해 드렸기에 사실 소개 드리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슬슬 막을 내려야 할 때가 됐는데도 아직 두 달이나 더 남아있지 뭐예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더니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전시는 관람객 여러분의 큰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한 달간 연장 운영됩니다.”

한 달이나 연장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전시인데 도저히 안 가 볼 수가 없었고, 아직 안 가보신 많은 국민분들을 위해 알려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전시 장소인 서울시립 미술관은 평일에 20시까지 운영(19시 30분까지 입장) 해 저 같은 직장인도 관람하기 좋아서 결심한 직후 바로 다음 주 중에 방문했습니다.

전시기간 : 2025. 3. 20. ~ 11. 23.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가나아트컬렉션 전시실

전시부문 : 회화, 한국화, 드로잉&판화, 사진, 조각, 설치, 뉴미디어

작품 수 : 21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14점 / 가나아트컬렉션 7점)

참여작가 : 권순철, 김인순, 김정헌, 노순택, 노재운, 류인, 박희선, 손장섭, 송창, 신미정, 신학철, 이반, 이세현, 이용백, 이응노, 임흥순, 전소정, 함경아, 히카루 후지이(Hikaru Fujii)

전시소개

서울시립미술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광복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주요 소장품과 가나아트컬렉션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특별전을 기획하였다. 가나아트컬렉션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200점의 작품군으로 1980-90년대 한국의 사회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민중미술 및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포괄한다.

광복 이후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 전쟁, 남북 분단을 직접 겪었던 세대는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이어졌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95%는 광복 이후에 출생하였으며, 이들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서 광복 전후 일련의 근현대사를 접하고 배웠다. 이번 전시는 예술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담론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사회, 정치, 역사적인 맥락과 개인의 서사를 살펴봄으로써 시대적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후술 생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본 전시에 앞서

전시관 방문 전 서울시립미술관 누리집을 방문했더니, 전시와 각 작품에 대한 소개가 굉장히 잘 나와있었습니다. 음성 지원도 됐고 텍스트로도 확인돼 직장에서 서울시립미술관까지 가는 지하철 안과 내려서 걸어가면서 전 작품을 이미 랜선으로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누리집에 설명이 간소화된 전시는 직접 가서 작품 설명을 담은 텍스트를 하나하나 읽느라 정작 본 작품을 심도 있게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이 전시는 랜선으로 배경지식을 먼저 쌓았기에 전시 현장에서는 그 작품에만 집중하고 심취해 관람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https://sema.seoul.go.kr/kr/whatson/exhibition/detail


전시실 입구

전시는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 "6.25 전쟁의 참혹함과 동족상잔의 비극", "전쟁 이후 지속된 분단이 초래한 비극과 사회, 정치적 이슈", "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운 공존"의 네 파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보통 관련 전문가나 종사자가 아니라면 미술 전시관을 나오면 금세 잊기 마련이잖아요. 이 전시에서는 누리집의 상세정보뿐만 아니라 이를 한글 와 영문이 함께 기재된 리플릿 책자까지 제공돼 관람 후에 집에 와서 다시 책자를 읽으며 여운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중을 매우 배려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부분이었고요.


이응노 <인간군상>

아무쪼록 입구 앞 리플릿 책자를 가지고 입장하니 1983년 작 이응노의 <인간군상> 작품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열을 맞춰 군무를 추는듯한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첫 작품으로 기대감은 높아졌고, 본격적인 관람에 들어갔습니다.


광복 80주년을 알리는 영광 서포터즈인 만큼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을 다룬 첫 번째 파트 작품과 시대적으로 이어서 찾아온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을 다룬 두 번째 파트 감상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겠습니다. 나머지 파트에서는 작품의 수도 많은 만큼 일부 작품에 집중할 테니, 자세히 다루지 못한 작품들은 누리집 해설 정보와 직접 방문을 통해 확인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한 가지 더!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한 첫 번째 파트의 "별 헤는 밤" 시구절과 같이, 각 파트에 앞서 그 주제를 관통하는 '시'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이를 읽는 재미도 있으니 참조 바랍니다.


1.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1941. 11. 5. (유작)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의 꿈을 이룬 영광스러운 날이다. 그러나 이날이 오기까지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독립운동가, 강제 징용 노동자, 학도병, 위안부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전시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식민지 잔재 청산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손장섭의 작품, 강순애 할머니의 비극적 개인사를 매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풀어낸 김인순의 작품, 군함도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과 죽음을 다룬 김정헌의 작품, 마지막으로 1919년 일본에 대한 영원한 혈전을 결의한 조선청년독립당의 「2.8 독립선언서」를 현대 국제 사회의 맥락으로 확장한 히카루 후지이(藤井光)의 작품을 전시한다.



손장섭, <조선총독부>, 1984

손장섭 <조선총독부>
화면 왼쪽에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상기시키는 조선총독부가, 가운데에는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벗어나 완전한 자주독립을 염원했던 독립문(1897년 준공)과 수많은 시신들이, 그 오른쪽에는 일장기를 상기시키는 핏빛의 원과 죽은 이들이 엉켜있다. 회색 바탕에 그려진 손발이 결박된 조선인들과 일본 순사로 추정되는 인물, 이미 목숨이 끊어진 듯 보이는 사람들의 형상은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처참함을 시각화한다. 지난 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독특한 화면 재구성을 통해 우리의 식민 역사를 소환하며 여전히 미해결 된 식민지 잔재 청산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시킨다.

'역시 실물로 봐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물로 색감과 질감이 생동감 넘치더라고요. 전체 전시 중에서도 이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선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누가 봐도 좌측 두 건물은 조선총독부와 독립문이었으니까요. 독립문 앞과 일장기 형상의 원에는 시신들로 가득해 비극적인 시대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메시지" 전달이 확실했습니다.


지금은 광복 80주년으로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제강점기의 참혹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만 세월이 많이 지나면 희석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먼 미래의 후손들도 이 작품을 본다면 일제강점기가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의미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작품 그 자체도 그리고 작품에서 포함하고 있는 메시지도 분명했던 훌륭한 작품입니다.


김인순, <울음>, 1996

이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순애 할머니를 그린 작품이다. 화면 속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산의 굴곡진 능선과 겹쳐지고 그 너머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이 풍경은 할머니 고향인 마산 무학산에서 바라본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마산에 살다가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간 강 할머니는 고초를 겪다가 5년 후 돌아왔지만, 이웃과 가족에게 상처받고 다시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위안부 피해 여성이 고국에 돌아온 후에 겪은 삶에 주목하였다.

이 작품도 감탄했던 작품입니다. 할머니의 형상과 주름을 기점으로 산의 능선과 바다를 그렸고, 얼굴 부분 외 좌우에는 색감을 달리해 경계가 나타낸 표현도 대단했고요. 겉보기에 과하지 않지만 분명 깊은 슬픔이 서려있는 얼굴 표정 표현도 훌륭했습니다. 앞 작품과 마찬가지죠. 위안부 할머니를 표현했다는 것은 큰 설명이 없어도 알아차릴 정도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했으며 확실히 전달되었기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설명에 의하면 작가는 위안부 피해 여성이 고국에 돌아온 후 겪은 삶에 주목했다 하는데요. 큰 고통을 겪고 고향에 왔는데 상처받고 다시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매스컴 및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이 작품을 통해 그 고통의 깊이가 잘 와닿았습니다. 여러 마디의 말보다 그림 작품 하나가 훨씬 전달력이 세구나를 느낀, 기존의 저의 고정관념을 바꾼 빼어난 작품입니다.


김정헌, <달의 중력으로 군함도를 격파하라>, 2015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하시마섬(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역사를 다룬다. 화면의 중앙에는 욱일기 모양의 잿빛 하늘 아래 군함도가 있고, 칠흑 같은 바다 아래에는 탄광 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위로는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동그라미 패턴을 배치하였는데, 이는 군함도를 격파하는 달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과거 주권 없는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시각적 장치이다.

좋은 작품 옆에, 좋은 작품 옆에, 좋은 작품. 이럴 수가 있나요? 세 번째 작품이 이번 전시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군함도를 기점으로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알게 되었는데, 영화 개봉보다 2년 빠른 2015년 작이더라고요. 작품이 나온 직후에는 김정현 작가 님의 이 군함도 작품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작품이 주는 힘이 대단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 위는 욱일기 모양의 잿빛 하늘이, 바다 아래는 탄광 노동자를 나타내며 핵심 주제를 압축 및 요약해 잘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픈 시대상을 그린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보름달이 대포알처럼 흩어져 군함도를 격파하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 것에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이 참 좋았습니다. 깊은 울림을 받았고, 그래서 여운은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대단했던 앞선 두 작품의 장점에 이 작품만의 장점까지 더해졌기에, 저의 원픽 작품으로 기억되었습니다.


히카루 후지이, <2·8 독립선언-일본어로 낭독하기>, 2019

영상 화면
이 작품은 1919년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여 발표한 「2.8 독립선언서」를 오늘날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인 유학생들이 낭독하도록 한 것이다. 작가는 베트남 역시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인민의 요구서를 제출했지만 신한청년당의 요구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과 현대 일본 사회에서 베트남인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에 주목하여 베트남인 유학생들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도쿄 변두리에 거주하며 일을 병행하고 있는 학생들로 공부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일본어 실력은 서툴지만, 이들이 읽어 나가는 독립선언서의 문장들은 국가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로 공명한다.

일본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작가가 1919년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여 발표한 「2.8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영상을 만들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베트남 유학생들이 낭독했다는 것도 특징적이었습니다. 과거 일본 사회에서 고초를 겪은 한국인들이 읊었던 선언서를 현대 일본 사회에서 불평등에 겪고 있는 "베트남"인들이 "일본어"로 낭독한 다는 점에서 작가가 매우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낭독에 참여한 베트남 유학생들의 모습과 명단

유창하지 않은 일본어이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느껴졌고, 양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통용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대를 잇는 메시지를 담은 작가의 의도와 그 영상 작품은 충분히 감동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첫 번째 파트는 광복 80주년 특별전에 걸맞은 주제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했으며, 울림과 감동을 준 훌륭한 작품들의 향연이었습니다.


2.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구상, 「초토의 시·8-적군묘지 앞에서」 부분, 『초토(焦土)의 시(詩)』, 대구: 청구출판사, 1956.


6.25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한 민족이 이념을 이유로 서로에게 총을 겨눈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은 휴전 이후에도 지속되어, 전쟁고아와 이산가족 발생, 전후 세대의 교육 기회 박탈, 남북 이념 대립에 따른 사회적 불신과 갈등의 고착화와 같은 사회적 피해를 남겼으며, 국토의 황폐화와 농업 기반 파괴로 인한 식량난 발생 등 경제적 피해도 초래하였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예술로 승화한 권순철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불안한 시대를 보낸 경험이 반영된 송창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나타낸 첫 번째 파트 외 나머지는 광복 80주년 특별전과는 무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졌었는데요. 전시를 직접 접하고 나니 이게 분명 연관 혹은 연계가 되어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없었다면 분단의 역사가 이렇게 쉽게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6.25 전쟁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이상의 비극 6.25 전쟁을 담은 두 번째 파트는 단 두 가지 작품에 불과했지만 그 임팩트는 강렬했습니다.


권순철, <넋>, 1988


<넋> 시리즈는 신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작가의 유년 시절 6.25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물감을 반복적으로 덧발라 매우 거칠고 두꺼운 마티에르를 표현하였으며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을 대조적으로 처리하여 비물질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넋’의 존재를 감각적이고 강렬하게 형상화하였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개인사를 역사와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해 나감으로써 보편적인 정서로서 대중의 넋을 위로하고자 한다.


온라인으로 봤을 때와 크게 다른 느낌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질감이 거칠고 두터웠기 때문입니다. 앞선 작품들과는 달리 직관적으로 메시지가 한 번에 와닿지 않는 추상화였지만, 거칠고 전체적으로 어둡지만 이질적으로 밝은 부분이 선처럼 그려져 역동적인 모습을 통해 전쟁의 충격과 넋이라는 존재를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송창, <무명용사고지(상사리고개)>, 1986

이 작품은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백마고지의 철책선을 표현한 것이다. 백마고지는 6.25 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로 한국군과 미군이 중국 인민 지원군과 싸워 승리한 곳이다. 작가는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철책과 기대어 있는 해골을 통해 분단과 죽음의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철책에 붙어있는 “먼저 보고 먼저 쏘자” 표지판은 당시의 치열했던 교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파트 제외,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작품을 꼽겠습니다. 딱 봐도 강렬함이 전해지지요?


철책 앞 그림의 좌측의 백골 형상 인간, 가운데 "먼저 보고 먼저 쏘자" 글귀, 우측의 기괴해 보이는 동물 등 키포인트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상을 더욱 극대화해 표현한 듯했습니다.


백골 형상 / "먼저 보고 먼저 쏘자" 글귀 / 기괴한 모습의 동물

곳곳에 퍼져 있는 붉은색은 피를 상기시켰으며, 다양한 색상이 혼재된 표현 기법은 전쟁의 혼란스러움과 참상이 느껴졌습니다. 6.25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다는 점, 이를 개성 있는 기법 등을 통해 표현했다는 점 등에서 굉장히 좋게 느껴졌습니다.


온라인상에서도 눈에 띄었지만 역시나 실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했습니다. 누리집에서 이미 작품을 랜선으로 다 감상해 '직접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스치듯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직접 와보니, 특히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직접 방문해야만 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섰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전시를 홍보해야 하는 동기 부여를 한 작품입니다.



3.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박봉우, 「휴전선」 부분, 『휴전선(休戰線)』, 정음사, 1957.


1953년 7월 휴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한반도의 비극은 지속되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현재까지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단 상황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풀어낸 작품들을 살펴본다.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손장섭과 신학철의 회화, 탈북민과 실향민의 개인적 서사를 풀어낸 신미정과 임흥순의 영상, 휴전 상황에서 초래된 한반도의 여러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한 노순택, 노재운, 류인, 이용백, 함경아의 작품, 마지막으로 1990년대 비무장지대 문화운동을 주도하며 행동한 이반의 예술 포스터인 판화 작품을 포함한다.


임흥순, <북한산>, 2015

임흥순 <북한산> 영상 중

세 번째 파트에서는 먼저 별도의 공간에 영상과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미디어 아트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가운데 영상은 탈북민 김복주 씨의 이야기로, 북한산을 오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짠했고요. 26분의 이 작품은 영화감독님의 작품답게 한 편의 다큐 영화와 같았습니다.


신미정, <자신의 경로>, 2016

신미정 <자신의 경로> 영상 중

6.25 전쟁에서 북한군 출신으로 내려와 머무른 권문국 할아버지의 삶을 다룬 영상은 더 짠했습니다. 통일이 되려면 곧장 고향으로 가려고 북에서 가까운 속초 아바이 마을에 정착했는데, 70년이 지나서도 못 가게 되었네요. 이 영상들을 보며 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학철, <이 한 몸 죽어서라도>, 1988

날카로운 철책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이 한 몸 죽어서라도> 작품도 강렬했습니다. 누리집에 유일하게 보이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한데요. 자세히 보니 손에 주름으로 보아 노인의 손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작은 사람은 여인의 모습입니다. 철조망은 휴전선을 상징하고, 노인이 철조망을 잡은 것은 죽어서라도 고향에 이르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하며, 멀리 보이는 여인은 생이별을 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리플릿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용백, <엔젤 솔저_사진 01>, 2011

이 작품 아마도 많은 관람객들이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손꼽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생각을 하셨을까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한 편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찬 예쁜 작품으로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군인이 보입니다. 꽃밭인 줄 알았는데 전쟁 밭이라는 반전이 있었고, 관객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작가는 세상이 꽃밭이라면 군복도 꽃무늬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제작했다고 하며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 있다고 합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빛나는 작품이었습니다.


류인, <부활-궤도수정>, 1993

입체 형상의 이 작품도 여운이 깊었습니다. 철근 구조 속 군인의 얼굴에서 언뜻 보면 그저 강한 군인의 느낌을 받겠지만, 다시 자세히 보면 철모에 얼굴이 쏙 들어가 갇혀 있는 불쌍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직관적이지는 않지만 추상적이지도 않아 보이지도 않는 특징이 돋보였는데요. 두 번째 파트에 둬도 어울렸을 법한 작품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두 번째와 세 번째 파트 사이의 전시실 가운데에 배치돼 있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분단의 비극을 아우르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분량 관계상 소개해 드리지 못하지만 아래 세 번째 파트의 모든 작품이 "전쟁 이후 지속된 분단이 초래한 비극과 사회, 정치적 이슈"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였으며 각기 다른 개성이 있었던 모두가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손장섭 <시골길>, 이반 <비무장지대를 민족공장으로 만들자>
노재운 <세 개의 방>, 함경아 <나가사끼, 히로시마 버섯구름>, 노순택 <얄읏한 공> 시리즈



4. 먼저 온 미래
예술이 정치적, 이념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먼저 온 미래’는 탈북민들이 통일을 염원하며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번 파트에 전시된 전소정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확장될 수 있는 반핵, 반전,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이응노의 한국화, 빛나는 하나의 한반도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조각에 투영한 박희선의 조각, 남북한의 풍경을 한 폭의 산수화에 그려낸 이세현의 회화, 남한과 북한의 두 피아니스트가 함께 음악을 작곡하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온 전소정의 작품을 통해 화합과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기대해 본다.

네 번째 파트는 시구절 없다는 점에서, 각 시대상을 나타낸 앞선 파트와는 차별점이 있었습니다. 총 네 개의 작품들로 구성됐는데요.

박희선 <한반도-빛> / 이응노 <반전평화>
이세현 <붉은 산수 70> / 전소정 <먼저 온 미래>

이번 전시의 유이한 조각 작품으로 한반도의 낙관적인 미래를 표현한 작품 박희선 <한반도-빛>, 오프닝 인간군상 이응노의 또 다른 작품으로 사람의 형상을 운집시켜 문자를 나타낸 개성 충만한 작품 <반전평화> 모두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작가가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을 통해 본 비무장지대의 붉은색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는 이세현 <붉은 산수 70>는, 그만의 개성 있는 기법으로 산수의 모습을 아주 유려하게 잘 표현했고 개인적으로 정말 멋있게 봤습니다. 네 번째 파트이자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영상 비디오 전소정의 <먼저 온 미래>로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남한 피아니스트 엄은경을 초대한 음악적 대화를 통해 하나의 곡을 완성한 의미 깊은 그리고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적지 않은 작품을 소개해 드렸지만, 정말 마음 같아서는 21개 작품 모두를 하나하나 깊이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정도로 어느 하나 빠뜨리기 싫을 정도로 좋은 작품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작품들의 메시지가 분명했으며 잘 전달되었다는 것, 작품 그 자체로도 빼어났다는 점에서 평소 미술 전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는 앞선 세대의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의 헌신과 용기로 이루어낸 자유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이번 전시는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광복의 가치를 되새기며, 평화와 화해의 미래를 여는 서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 전시 소개 문구 중 -


전술한 것처럼 언뜻 보면 첫 번째 파트 외에 광복 80주년과 무슨 연관이 있나 싶지만


일제강점기 시대가 있었기에 이념의 대립과 남북전쟁 및 분단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분단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아픔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극적인 시대였지만 80년 전 광복을 이룬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결국에는 각 시대를 극복해 왔습니다. 일제로부터의 광복을 이뤘던 경험 및 저력이 있었기에 이 또한 가능했던 것이고요.


이러한 의미에서 광복 80주년 특별전이라는 의미와 시대를 관통하는 광복의 의의를 느낄 수 있으며, 평소 미술 작품을 즐기지 않는 분들까지 모든 대중을 아우를 수 있는 전시라는 점에서 여러분들께 반드시 가보시라고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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