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다

플라잉 휠체어 14화

by 두꺼운 손가락

1976년 12월





14. 일본에 가다


스무 살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일본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게 된 곳은 규슈지방의 벳부.

버스 타고 배 타고 기차 타고 다시 차로 갈아타서 숙소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다.

집의 모양새, 멋있게 생긴 자동차들,

먼지 하나 없는 기차 안, 사거리에서 이어지는 골목길, 나무, 풀, 사람들의 행동방식은 우리 내의 그것과 어리둥절할 만큼 달랐다.


모든 것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어디를 가나 숨 멎을 만큼 조용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 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마저 꿈인가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부드러웠다.


한국에서 길을 가다 보면 당연히 집중되는 시선, 손으로 찔러보는 사람,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사람, 함부로 말하는 사람. 등등 별의별 희한한 경우들이 많아서 길을 다니려면 마음의 준비도 꽤 해야 하는데,

일본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나를, 우리들을 안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적어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과 도착한 공장지대에는 대여섯 개의 아파트형 공장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파나소닉, 마츠시다 같은 대기업도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500여 명 되는 직원들은 태양의 집이라는 기숙사에서 모여서 살았는데 여기 일본인들도 모두 다 장애인들이었다.


한 방에 2층 침대가 4개가 있어서 8명이 함께 사용했다. 조금이라도 기어오를 능력이 있는 사람이 2층을 쓰는 것이 불문율이었고, 다리도 못 쓰고 한쪽 팔도 힘이 없는 나는 한 번도 2층을 써보지 못했다. 2층으로 올라가 보고 싶은 때도 있었는데 나름 규칙이라 그랬는지 일본인 친구들은 내게 2층 침대 쓸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배려와 양보가 몸에 밴 그들의 생활습관을 보면서 순간순간 뜨끔할 때가 많았다.

누가 나를 얕보지는 않을까, 누가 내게 함부로 할까 봐 혹은 내가 남에게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언제나 전투적이었고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며 살았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한 명씩 떨어져서 각기 다른 방으로 배치되었다.

일본말이라고는 곰방와, 아리가또, 사요나라밖에 몰랐는데, 기숙사 일본인 친구들 덕분에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빨리 익힐 수 있었다.


내가 일본에 오기 전에 일본에 대해 가장 많이들은 말은, 이들은 인간성이 나쁘고 못 됐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무시하고 깔보며 괴롭힐 것이라고도 들었다.


일제시대를 살아오신 부모님들은 일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험한 일을 많이 당해보셨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함께 생활하면서 개인적으로 만난 일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고 아주 작은 일에도 성실했다.


부모님께 ‘일본인들은 너무너무 친절합니다. 늘 웃어줍니다. 침대도 양보받았습니다. 얼마나 성실한지 모릅니다.’라고 편지를 썼더니 아버님이 굉장히 마뜩잖아하셨다.

하지만 내 일본인 동료들은 누구를 이기기 위해, 누구보다 더 잘하려고, 누구보다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이런 경쟁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일상에 순응하고, 일 자체를 열심히 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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