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플라잉 휠체어 26화

by 두꺼운 손가락

서울에서의 첫 연주가 잡혔다.





26.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연주회를 하게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김태경 선생님은 어떤 곡들을 연주할 건지, 어떤 순서로 할 건지, 그 곡들은 어떤 곡인지 우리보다도 더 열심히 연구했다.

우리를 돕는 분이 우리보다 더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연주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은 우리에게 출처를 알 수 없는 응집력을 갖게 해 주었다.


우리가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사무실에서 손가락이 부러져라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선생님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그럼 연주 날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러면서 전화를 끊는 게 아닌가.

“선생님. 누구랑 통화하신 거예요? 뭘 그렇게 굽신거립니까?”

“응? 너희들 거기 있었구나. 내가 방금 누구랑 통화했냐면 말이야.”하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메모지에는 서울시내 모든 음악대학 교수실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맙소사.


“선생님. 설마 여기 적힌 교수님들께 다 전화하신 겁니까?”

“아직은 다 못했어. 하고 있는 중이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 분들에게 왜 전화하시는 거예요? 이런 분들이 오시겠어요? 오신다 한들 이런 교수님들이 객석에 앉아계시다고 생각하면 더 떨려서 못 할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우리가 더 좋은 연주자가 되려면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가 반드시 필요해. 이런 분들이 관객으로 오시는 음악회라는 입소문이 나는 것도 필요해. 그래야 빠른 시간 내에 인정도 받고 다음 연주에 대한 기대치도 끌어올릴 수 있어. 여러모로 좋은 도움이 될 거야. 생각보다 꽤 여러 교수님들이 오시겠다고 하셨어.”


누가 모르나. 나도 좋은 선생님들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럴 방법이 없으니 죽어라 연습만 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참 우습다. 배운 게 많기를 하나, 가진 게 있기를 하나, 성격은 투박하기 그지없어서 남에게 따뜻한 말 한 번 먼저 건넬 줄도 모르고 누가 뭘 준다고 하면 그게 뭐가 그리 당연한지 툴툴대며 다 받았다.


베데스다 콰르텟 연주회 포스터 어디에도 김태경이란 이름은 없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차분하게 우리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번 첫 연주에는 특별히 소아마비협회에서 후원을 많이 해주시기로 했다. 소아마비협회로서도 이런 일에 후원하고 일을 진행해보는 게 처음이라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지만, 우선 첫 연주의 반응을 지켜보고 그다음에 후의 일을 상의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첫 연주.

아침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다. 웬만한 무대에서도 떨어 본 일이 없는데 오늘 연주를 성공시켜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것만 같은 비장함이랄까.

세종문화회관의 웅장함에 순간 압도되었다.


이강일. 이 촌놈. 진짜 출세했구나. 이런 곳에서 연주도 하고.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은 말만 소강당이지 사람을 위축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연주 전에 김태경 선생님은 우리를 모았다.

“지금 객석은 만석이야. 나도 이렇게까지 많은 손님들이 오실 줄은 몰랐다. 이제 연주만 남았다. 잘해보자.”


우리는 서울에 아는 사람이 없다. 이 무대에는 늘 훌륭하고 유명한 연주회가 차고 넘칠 텐데 우리가 누군지 알고 찾아와 주었을까. 김 선생님이 매일같이 연습실 앞 로비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온갖 군데 전화를 하고 있을 때는 이런 상황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무대 문이 열리고 어둠 속 객석에서 우리를 반기는 박수가 시작되었다.

연주를 하면서 신기하게 하나도 떨리지 않고 진심으로 음악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음악회가 끝나고 로비에서 축하파티가 열렸다.
소아마비협회 관계자들 뿐 아니라, 소아마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관객들도 남아서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낯선 정상인들과 한 공간에서 자연스레 있게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내가 이들 앞에서 연주를 했다는 것보다 이들과 자연스레 섞여서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더 감동스러웠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 밖으로 보이는 광화문 대로변의 지나다니는 차들, 음료수 잔을 들고 홀짝 거리며 미소 짓는 사람들.


이 상황이 내겐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저 감사하고 기뻐하고 이 기분을 즐기기만 하기엔 의문점이 너무 많다. 무엇이 이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음악이었다.


내가 바이올린을 하게 된 것은 손가락을 돌릴 수 있는 신기한 기술을 알게 된 것 그 이상이었다. 재활원 흙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때, 강민재 선생님은 음악으로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일본에서는 같이 일하는 일본인 친구들을 향해 여기는 선진국이라면서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나 젠 체를 밥 먹듯 했다. 돌아와서는 고영일 선생님을 통해 우리끼리의 제대로 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황 회장님은 우리를 서울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김태경 선생님은 오늘의 이 연주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게 제5의 멤버로 더 많은 역할을 해주고 계시다.


바이올린은 내 인생에 마법을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득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박수와 미소, 찬사, 따뜻한 마음들.

서울 데뷔를 막 끝낸 이 밤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로비 창문을 통해 보이는 넓고 어두운 광화문 거리를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기도를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어쩌려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이 상황이 감사하면서 두렵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를 제가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음악도 좋고 무대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씌여진 이 가면이 벗겨지는 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도와주세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이전 26화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