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저쪽 기둥 앞에서
27. 신동옥 선생님
황연대 관장님, 김태경 선생님이 어떤 분과 얘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 속도 모르고 약간 상기된 얼굴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있는 분은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인 것으로 보아 소아마비협회 관계자는 아닌 듯했다. 내가 멀끄러미 쳐다보는 걸 알아챈 황 회장님이 손짓으로 날 불렀다. 내 속도 모르고 다들 뭐가 저리 좋을까.
“선생님. 이 친구가 아까 세컨 바이올린을 했던 이강일 씨입니다. 강일 씨 인사드려요. 바이올리니스트 신동옥 선생님이셔.”
“안녕하세요. 강일 씨. 정말 대단들 하십니다. 오늘 연주 정말 감명 깊게 잘 들었어요. 나는 서울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신동옥이라고 해요. 바이올린도 가르치고 비올라랑 실내악도 가르치고 있어요. 베데스다 여러분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회장님이랑 얘기 중이었고요.”
“……”
“레슨을 받아 본 지 오래되었다고 들었어요. 콰르텟을 하려면 뛰어난 테크닉도 필요하고 서로를 향해 귀도 열려 있어야 하고 음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야 하는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서울대 학생 정도가 아니라 서울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다음 주말에 정립회관으로 가겠다. 우선 한 사람씩 하는 걸 들어보고 어떻게 공부를 하면 되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오늘 연주 너무 좋았다.
신동옥 선생님이 계속해서 뭐라고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내 눈엔 천사가 똑바로 볼 수 없는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제 이 시간에는 마음이 들떠서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는 너무 떨렸고, 연주를 하면서는 내 스스로 감격했다. 그리고 방금 5분 전까지는 저 황금색 샹들리에가 환하게 비치는 창가에서 좌절하는 중이었다. 바로 5분 후에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르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은 중요한 순간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만남과 무대를 감사히 여기고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신이 내게 주신 재능에 대한 답이고, 이 모든 일들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놀라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기로 하자.
이런 기회를 마다할 수 없다. 최고의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약속대로 신동옥 선생님은 우리를 가르치러 오셨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르치시고 콰르텟도 따로 또 레슨 해주셨다. 배움에 굶주려 있던 나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배운 것은 많지 않고 연주는 해야 했던 상황에서 힘으로 밀어붙여 어거지로 테크닉을 만들어나갔던 나로서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전쟁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연습하는 것은 이제 그만할 수 있게 되었다. 혹시 누가 나를 얕볼까 미리 가시를 세우는 것, 혹시 틀릴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 내가 떨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온 몸에 힘을 주고 있는 것, 이 무대를 통해 무엇인가 얻어내려는 목적이 있는 것. 혹시 이런 마음으로 연주를 한다면, 연주하고 나서도 내 맘이 상쾌하지 않고, 듣는 사람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전가할 뿐이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죽도록 연습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훈련이 릴랙스와 마인드 컨트롤하는 거였다니 상상도 못 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좋은 음식도 먹고 대화도 많이 해야 음악도 깊어질 수 있다며 우리를 데리고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사주시기도 하고, 선물 받은 미제 깡통을 잔뜩 가져오셔서 우리에게 요리법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참 신기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삶에 큰 힘이 되고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버팀목이 된 다는 사실도 이때 체험했다.
선생님은 곧잘 미국 유학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신시내티 음대에서 선생님의 스승이신 라살 콰르텟 이야기는 내 귀에는 환상처럼 들렸다.
라살 콰르텟 LaSalle Quartet은 1946년에 만들어졌단다. 시작부터 입이 벌어졌다.
“그분들은 지금도 함께 연주하고 계신가요?”
“당연하지. 아직도 신시내티 음대에서 학생들도 가르치시고 전 세계를 다니며 연주하셔.”
지금이 1980년인데, 한 팀이 34년을 같이 하고 있단 말이었다. 사람의 인생이 어찌 될 줄 알고 4명이나 되는 사람이 함께 34년을 연주할 수 있을까?
더 신기한 것은 미국의 유명 음악대학들에는 현악 4중주가 한 팀으로 함께 공부하는 코스가 있고, 라살 콰르텟은 제자 한 두팀을 뽑아 그들을 전담해서 가르치신다는 것이다.
콰르텟은 그냥 넷이 모여 악보 놓고 하나 둘 셋 넷 박자 세고, 퍼스트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잘 돋보이도록 나머지들은 잘 받쳐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건 밥은 쌀과 물, 불, 냄비만 있으며 다 맛있게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소리와 같은 얘기였다.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도 매 레슨 때마다 깨닫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무지함이 또 드러날까 봐 선생님의 농담까지도 기억하려 애썼다.
재활원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뭐가 뭔지는 잘 몰라도 오늘 주고 가신 호만, 스즈키 책 한 권을 다 해치우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화장실이 멀어서 참고 연습하고, 좋은 자리 뺏길까 봐 연습하고, 쟤보다 진도가 늦는 게 싫어서 연습했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 마음도 필요했다. 뭐가 뭔지 모를 때는 열 번 보다 백 번 그어 보는 게 효과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백 번에다가 생각과 마음을 담아야 한다.
소리를 풍부하게 내는 활 쓰기 법, 단단하면서도 날카롭고 날렵하게 음을 진행하는 법, 세컨 바이올린이라고 해서 무조건 소리를 줄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받쳐주며 음악을 만들어 내는 법.
음표 뒤에 숨어있는 얘기들은 놀라움의 연속이고 나 혼자서는 알아낼 수 없는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