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푸르니에

플라잉 휠체어 28화

by 두꺼운 손가락

쿠당탕. 쾅. 얘들아.





28. 피에르 푸르니에



연습실에 있니? 좀 나와봐!

저렇게 다급하고 날이 선 목소리의 태경 선생님은 낯설다. 무슨 일일까.


선생님은 연신 입술을 이빨로 밀며 빨아댔다. 입을 굳게 다물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우리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당장 연주 가능한 곡이 뭐가 있지? 아니. 한두 주 안에 연습해서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곡이 뭐니? 베토벤? 그건 너무 어렵고. 하이든이 나으려나? 죽음과 소녀? 아니면 아메리카?”

왜 저러지? 무슨 중요한 연주가 잡혔나 보다.


얘기는 이랬다. 몇 달 전에 푸르니에* 연주회 포스터를 보며 우리끼리 잠시 주고받은 얘기를 가슴에 담고 계셨다.

푸르니에 독주회에 가보고 싶다.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어떤 연주를 하는 걸까. 우웩. 표값이 이게 얼마야.

김 선생님은 우리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가만히 듣고만 계시다가, 연주회 주최 측에 연락을 하셨다. 베데스다 콰르텟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혹시 가능하다면 연주 후에 푸르니에와 따로 만날 수 있겠는지를 타진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얘기를 들어도 눈이 너무 커졌다.

아니 이 선생님이 그동안 여기저기 연락하면서 간이 커졌나. 물론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있기는 했다.

푸르니에는 원래 피아노를 배웠었는데,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후 페달을 밟을 수 없게 되어 첼로를 하게 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들어본 적도 없는 동양의 어느 나라에 휠체어를 탄 사람들로만 구성된 콰르텟이 있다고 하니,

연락을 받은 푸르니에는 오히려 제대로 된 음악회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푸르니에의 서울 연주 다음날 프랑스 대사관에서 조그마한 음악회 겸 마스터 클래스를 갖자고 연락이 왔어. 한 곡만 하면 될 거 같아. 뭘 하면 좋을까? 뭐가 좋겠니?”


푸르니에. 푸르니에. 푸르니에라.

우리가 푸르니에 앞에서 연주를 한단 말이지. 실실실 잔웃음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좋기도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푸르니에 연주를 보는 것도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푸르니에 앞에서 연주를 한단 말이지.


내 눈으로 그를 보기 전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을 반복했더니 김태경 선생님이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지. 억만금을 준 단들 푸르니에가 시간을 내서 우리를 돌아봐 주겠니? 이게 바로 기적이고 은혜야.”


그래. 선생님 말이 맞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한지. 내가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하게 되었는지. 이런 무대가 어떻게 내게 주어질 수 있는지.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 모든 것들.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드보르작의 현악 4중주 아메리카를 연주하기로 했다.


이 곡은 세컨 바이올린의 살아있는 리듬감이 음악적인 색감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가 된다. 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거칠지 않으면서도 짧은 음들이 더 풍부하게 살아나도록 활을 단단하게 잡고 굵고 깊은 비브라토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푸르니에의 연주 날이 되었다.

객석 한 구석에 마련된 우리 자리에서 푸르니에의 연주를 감상했다. 무대를 걸어 나오는 푸르니에는 과연 사진으로만 봤던 그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천사의 소리였다.

내일 만날 그에게서 저 소리의 비밀을 배울 수 있을까?


다음날 우리는 일찌감치 프랑스 대사관으로 갔다.

프랑스 대사관은 이제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아직 서울도 그렇게 익숙하지가 않은데 대사관 안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초청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관객으로 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도 유럽 귀족적인 분위기도 나고 어찌나 우아하고 멋지던지 이제껏 만났던 관객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났다.

신 선생님 말씀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첼로 교수님들과 음악계의 거물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다 오신 듯 하다했다.

아마도 푸르니에의 초청으로 열리는 음악회라 하니까 열일 제쳐두고 온 게 아니었나 싶다.


다른 나라 대사관 사람들도 있고 여기서는 한국말보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더 많이 들렸다.

길거리를 지나도 외국사람 한 명 보기가 힘든데, 여기는 서양 사람들이 더 많았다.

서양 사람들은 체격이 어찌나 큰 지 날 보고 웃는데도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혹시라도 말을 걸까 봐 악기를 만지작거리며 자리를 고쳐 잡았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푸르니에가 들어왔다.

푸르니에가 프랑스 대사 부부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떤 프랑스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무대에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약간은 긴장됐지만 침을 꼴깍 삼키고 입술을 부딪혀가며 숨을 골랐다.

이어서 푸르니에가 일어나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이크가 푸르니에에게 넘겨졌고 그도 간단하게 말을 이어갔다.

중간중간 우리를 쳐다보며 말을 하니 무슨 나쁜 말이야 했으랴 싶어 우리들도 계속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봤다.

그의 인사가 끝이 났고,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열정적인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멋들어진 공간에서 귀족 같이 차려입고 온 사람들을 앞에서 드보르작의 <아메리카>를 연주했다.


푸르니에가 앓았던 소아마비는 내가 앓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의 이 상황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미 스스로 되뇌이고 살았던 바지만, 오늘 다시 절감했다.


우리의 연주를 듣고 누구보다도 큰 박수를 쳐주고 웃어주는 푸르니에를 보며 깨달았다.

내가 진짜 음악가가 되려면, 무대에서만큼은 내가 먼저 내 상황을 초월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음악은 귀로 듣고 영혼으로 느끼는 것이다.


* 푸르니에 Pierre Fournier 1906~1986. 프랑스의 첼로 연주자. 귀족적이고 우아한 음악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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