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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꺼운 손가락 Oct 19. 2020

세컨 바이올린

플라잉 휠체어 36화

나는 베데스다 콰르텟에서 세컨 바이올린을 맡았다.




36. 세컨 바이올린



결성될 때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가 교체되었을 때에도 나는 계속해서 세컨을 맡았다.


많은 콰르텟에서 세컨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뀌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세컨 바이올린을 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보다 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지휘를 한답시고 포디움에서 바통을 휘두르는 사람조차도 그런 무지를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좋은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세컨 바이올린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다.

내성을 잘 활용해야 단단하고 풍부한 소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세컨을 자처한 이유는, 퍼스트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보다 퍼스트의 멜로디를 받쳐 줄 때, 마음이 더 편안하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의 리듬 처리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는 음악의 분위기,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그 세밀한 음악적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게 참 좋았다.


피아노 트리오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각각 경쟁의 구도 속에 불꽃 튀는 음악을 만들어 내지만, 콰르텟은 달랐다.


반드시 하나가 되는 작업이 필요하다. 활 쓰기, 소리의 성격, 비브라토의 종류 등 상상할 수 없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체크하고 맞춰나가야 한다.

금혼식을 앞둔 노부부마냥 오랜 시간 맞춰야만 해결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콰르텟이 어렵다.


베토벤 콰르텟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메이어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다.

한 프레이즈를 정해서 학교에 비치된 모든 레코드를 듣고 각 연주팀마다의 연주시간, 연주자들의 캐릭터, 스트로크를 비교 분석해 오라는 것이었다.


지금 주어진 숙제만으로도 24시간이 부족한데, 모든 레코드를 다 듣고, 분석을 하라니. 분석을 하려면 몇 번이나 들어야 할지 그것도 까마득한데,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니 내가 정한 곡의 음반이 자그마치 10개나 있었다. 아이쿠야.


내가 10개 음반을 다 빌리겠다고 하니 도서관 사서가 깜짝 놀라면서 박사 논문이라도 쓰냐고 물었다.

“메이어 선생님 숙제야.”라고 하니까 역시 라살답다며 빙긋이 웃었다.


음악이 뭔지 모르고 들을 때에는 다 거기서 거기인 듯싶었는데,

세컨 바이올린 악보를 펼쳐놓고 음악을 들으니 10개 콰르텟 연주자들이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캐낸 듯, 세컨 바이올린 파트가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내성에 치중해서 듣다 보니 정말 호흡이 잘 맞는지, 맞는 척하는 건지도 어느 정도 구분이 갔다.


세컨 바이올린이 단단하게 받쳐주면서도 튀지 않게 믹스되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메이어 선생님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제들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콰르텟의 세컨 바이올린의 위치와 태도에 대해 강조하셨다.


튀면 안 되지만, 안 들려서도 안 된다는 애매하고 오묘한 말씀과 함께, 네 명의 밸런스가 무너진다면 세컨 바이올린이 실패했을 이유가 가장 클 것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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