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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꺼운 손가락 Oct 19. 2020

신시내티를 떠나다

플라잉 휠체어 37화

우리는 라살의 제자로 신시내티에서 4년을 지냈다.




37. 신시내티를 떠나다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첫 2년은 라살 콰르텟의 연수생으로, 그리고 다음 2년은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했다. 아티스트 디플로마는 별로 할 생각이 없었는데 라살 선생님들이 디플로마는 있어야 어디를 가든 서류를 내밀 수 있다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하셨다.

콰르텟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신시내티에 왔던 우리의 미래를, 오히려 라살 선생님들이 걱정해주고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매일매일의 과제에 치여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바람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디플로마가 마무리가 되어갈 즈음 피바디 음악원과 뉴욕 시립대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동시에 입학제의를 받게 되었다.

이것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짜 맞추려고 한들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원서를 내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연주를 다니면서 알게 된 교수님들이 우리에게 먼저 제안하셨다.


피바디 음악원의 세노프스키 교수님, 줄리어드와 브루클린에서 가르치시는 가와사키 교수님이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해오셨다.

세노프스키 교수는 바이올린 전공생이라면 누구라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 했고, 가와사키 선생님은 아스펜에서도 만났었고, 가끔씩 신시내티로 강의를 하러 오실 때마다 우리를 불러서 관심을 가져 주시고 레슨을 해주시기도 했었다.


얼마나 황송하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피바디 음대는 음악 전공자들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유명한 학교이고, 브루클린 음대 역시 유명하고 뉴욕에 있는 데다가 줄리아드 음대 교수들이 강사진으로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 기회들이 많을 것이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감사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라살 선생님들도 너무 기뻐하시고 축하해주시며 어디로 갈지에 대해 함께 논의해주셨다.

피바디도 브루클린도 모두 매력적인 학교인 데다가 두 군데 모두 교수진과 학생들까지도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많아서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는 데 어느 쪽이 더 좋겠다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세노프스키 교수의 제자가 된다는 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다 두 군데서 다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니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생활비가 덜 드는 쪽으로 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의외의 변수가 생겼다.


피바디 음대의 10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으응?

미국의 고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음대 건물이 볼티모어의 문화재라서 주정부의 허락 없이 건물 개보수가 어렵다는 것이다.


세노프스키 교수님이 학교본부와 주정부 문화재 관련부서까지 알아보고 협의하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했는데 결과는 당장에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니고 유학 온 장애학생 입학을 위해 주정부 문화과까지 동원되어 방법을 연구하는 이들의 일하는 방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론은.


지금부터 공사를 해도 건물을 다치지 않게 하고 공사를 하려면 몇 년이 걸리고 50만 불 이상의 돈이 든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게 되었다.


우리는 뉴욕 브루클린 칼리지 석사학위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우리를 추천해준 줄리어드의 가와사키 교수는 이 분의 아들이 장애인이어서 그랬는지 우리를 굉장히 좋게 봐주고, 각박한 뉴욕에서 음악에 전념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1986년 8월. 뉴욕에 도착했다.

브루클린 음대에서는 가와사키 교수님뿐 아니라 강효 교수님에게도 배우게 되었다.

강효 선생님은 동양인 최초로 줄리아드 음대의 교수가 되신, 예술가들에겐 신화와도 같은 분이다.

강 교수님이 브루클린 음대에서도 가르치셔서 내게도 배울 수 있는 행운이 생겼다.


뉴욕이 아무리 세계적인 도시이고, 미국이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해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은 어쩔 수 없었는데, 강 교수님을 뵈면 덩치 크고 날카롭기 만한 뉴욕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 들었던 마음까지 풀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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