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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꺼운 손가락 Oct 21. 2020

첫눈에 반하다

플라잉 휠체어 39화

장애인으로 살다 보면





39. 첫눈에 반하다



부모님도 나도 주변 사람들도 똑같이 걱정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과연 제대로 된 직업이나 가질 수 있겠는가이고 둘째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이다.

직업도 변변히 없고 가정도 못 꾸리면 정말로 장애인이 되는 것 같아서 장애를 가진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 결혼 얘기를 참 많이 했다. 내가 장애인이어서 이제까지 결혼을 못하나 싶지만, 베데스다 멤버 중에 결혼을 못하고 있는 놈은 나하나뿐이니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장애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차인홍이도 신종호도 지극히 정상이고, 똑똑하고 성품까지 좋은 아내를 얻은 걸 보고 부러웠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지는 못했었다.


87년 4월 말에 한국에서 베데스다 콰르텟의 연주가 있었다. 오랜만의 한국행이라 방학 때까지 한국에 있기로 했다.

연주가 끝나고 부모님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재활원에서 같이 지냈던 후배 하나가 불쑥 찾아왔다. 제법 규모도 있고, 자리가 탄탄히 잡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후배였다. 결혼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번듯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면서도 부러움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형님. 내가 참한 아가씨 소개할 테니 만나보시는 게 어때요?”

“그래. 뭐 니가 소개한다는데 누군들 못 만나겠냐? 대신 맘에 안 들면 계속 소개할 각오하고.”

“우리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아가씨인데요. 2년을 넘게 봤는데 얼마나 똑부러지고 성실한지 몰라요.”

“아니. 진짜야?”

나는 농담으로 소개시켜 준다는 말인 줄 알고 깐족깐족 웃으며 말했는데, 후배 녀석의 긴장된 얼굴을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야. 니 말에 의하면, 웃는 낯에 귀염성도 있고, 성격도 좋고, 일도 잘하는 아가씨가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놈이랑 선을 본다는 거야? 어디 모자란 여자 아니냐?”

“에이. 형님. 제가 그런 거 다 확인했죠. 첨엔 그냥 넌지시 물어봤는데 싫어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너무 존경하는 형님이라고 만나보겠냐 했더니 좋다고 했어요.”


후배 녀석의 말을 믿어도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그다음 주에 정말로 웃는 낯이 예쁜 아가씨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에 푹 빠졌다.

처음 만났다는 긴장감도 없이 어릴 적 친구를 커서 만난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린아이가 된 거 마냥 즐거웠다.


헤어지고 나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너무 궁금해서 후배 녀석 회사로 전화를 걸었는데, 당황스럽게도 웃는 낯이 예쁜 그 아가씨가 전화를 받는 게 아닌가.

“저 보러 안 오세요?”

“가야죠. 이따 만납시다.”

나도 모르게 대답이 후루룩 입에서 나왔다.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마음은 점점 확고해졌고, 내겐 시간도 없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후배 녀석도 같이 와있었는데 나는 그녀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도 전에 청혼했다.


“우리 결혼합시다.”

“네.”

내 청혼에 마침표도 안 찍었는데, 그녀는 먼저 대답했다.


후배 녀석은 입을 떡 벌리고 우리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결혼한다고 하면 무조건 찬성일 겁니다.”

“아. 그럼 저희 부모님만 허락하시면 되는 거네요? 제 부모님은 포항에 사세요. 내일 포항에 다녀올게요.”


“저기. 두 분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저 몰래 맨날 만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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