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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마다 주걱떡을 둘러메고

목수와 그의 아내 - 6

by 미칼라책방

"엄마, 척과 국민학교 다닐 때 재밌었어?"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참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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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시계가 너무 어려웠어.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모르겠더라."

"시계 보는 거?"

"응. 시계 읽는 것도 어려웠는데 시간을 더했다가 뺐다가 하는 거는 정말 못하겠더라."

"엄마 그래가지구 나 어렸을 때 일일학습지 한 거였어?"

"너는 잘하더라. 나 안 닮아가지구."


엄마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엄마보다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오죽하면 내가 다니던 반월 국민학교 앞 문방구 사장님이 나를 보고 "너 진영이 딸, 미칼라지?"라고 하셨다. 우리 아빠가 졸업한 국민학교를 나도 다녔기에 학교 앞 웬만한 상점에서는 내가 누군지 다 알 정도였다. 사장님들이 아빠 친구 아니면 동문이었으니까.

엄마 동네 척과도 그랬다. 아마 내가 살았던 도마교리보다 더 속속들이 알지 않았을까?


"몇 년 전에 국민학교 동창모임 우리 집에서 했을 때 그 아저씨 있잖아~ 철규 아저씨. 엄청 말씀 많이 하시더라."


대부분은 못 알아들었던 사투리. 하지만 반가움 만은 넘치게 알아들었던 그 목소리.

철규 아저씨는 동네 입구에 살았다. 너무나 가난해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밥도 잘 못 먹고 다녔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우리 엄마 순이는 철규네 집에 꼭 들렀단다.


"왜?"

"철규네 집에 밀떡이 그렇게 먹고 싶었거든."

"아니, 엄마. 외갓집이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다면서. 그런데 밥을 왜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어?"

"그게 말이야. 우리 집에는 쌀밥을 먹는데 철규네는 보리밥 위에 사카린 넣은 밀가루 반죽을 얹어서 익혀 먹었어. 그 밀떡을 아침마다 먹더라고. 그게 그렇게 맛있었거든."

"철규 아저씨네서 엄마 하나도 안 반가웠겠다."

"그러게 말이야. 그게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몰라. 그런데 우리 큰아버지가 난네 아지매 엄청 챙겨줬어."

"'난네 아줌마'가 누구야?"

"철규 엄마. 밥때가 되면 큰아버지가 '난네 오라 그래라~'하셨어. 그래서 밥도 주고, 술도 주고, 명절도 챙겨주고 그랬지."

"엄마는 가서 밀떡 먹고, 아줌마네는 와서 밥 먹고 그랬네?"

"그래서 철규가 지난번에 와 가지고 그랬어. '세상에~ 순이 니는 드레스 입고, 치마 잘잘~ 끌면서 안방마님으로 살 줄 알았는데,,, 니가 이렇게 농사짓고 살 줄은 정말로 몰랐대이. 내 진짜로 놀랬다!' 라고."


이 말을 하는 철규 아저씨가 은근슬쩍 아빠를 째려본 것 같다고...ㅋㅋㅋ

철규 아저씨는 서울에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신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조그맣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철규 아저씨도 우리 아빠와 마찬가지로 너무 가난해서 국민학교 밖에 못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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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사진은 있는데 졸업사진이 없다. 어찌 된 일일까?


"방학 때 소 데리고 나갔다가 뱀에 물려 가지고 많이 아팠어. 그때 외할머니가 셋째 딸 먼저 보내는 줄 알고 많이 놀라셨었지. 그리고 일어났는데 학교고 뭐고 다 싫은 거야. 그래서 안 갔지."


뱀에 물려 쓰러진 걸 머슴이 업고 집으로 냅다 달렸다. 왕진 온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한 달이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순이는 집에만 있고 싶었다.

학교가 왜 싫었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더 풀었다.


척과 국민학교를 졸업한 여자아이들 중 순이를 포함해서 딱 두 명이 중학교에 갔다. 하지만 순이는 중학교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자취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13살 순이는 혼자 밤을 지새우는 것이 너무 무서웠고, 석유곤로를 쓰는 것도 서툴러서 방바닥이 시커메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30리 길을 걸어 토요일에 엄마를 만나면 일요일이 영 안 왔으면 싶었다. 하지만 순이의 엄마는 쪼그만 순이가 혹여 몸이라도 상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일요일이면 주걱떡을 했다.

주걱떡과 교복과 멸치조림, 김치, 쌀 두 되를 둘러메고 30리 길 너머에 있는 자취방으로 가는 순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 나 같았으면 중학교고 뭐고 안 보냈을 것 같아. 외할머니 진짜 대단하시다. 그 쪼그만 애가 자취를 어떻게 해~ 세상에. 잘 안 갔어."

"언니들은 할머니 때문에 못 보내고, 엄마는 그나마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공부 더 하라고 보낸 거지."


아프고 일어났더니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냥 집에만 있고 싶었다던 엄마는 결혼하는 그날까지 집에서 살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때 말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대단한 비밀을 풀었다.


"너 대학교 멀리 간다고 했을 때 그래서 내가 반대한 거야. 나 자취했던 거 생각이 나서. 공부고 뭐고 아무 생각도 안 났어. 그냥 니가 그 멀리서 혼자 밥해 먹고, 혼자 빨래할 생각 하니까 너무너무 싫더라고. 안 보내길 진짜 잘했지."


그래서 그랬구나. 우리 엄마는 내 대학 목표치가 정확했다. < 집에서 다닐 수 있는 대학교 > 의 비밀이 이거였구나. 엄마는 학교 안 갔지만 집에서 심심할 틈도 없었다. 농사가 많았던 집에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일손이 하나 더 있다는 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주했다. 해가 뜨거운 날이면 새벽에 나가서 일을 하고 들어와서 아침을 먹는다. 일꾼들이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아침상을 차리는 것이 순이의 역할이었다.

순이는 그때 15살. 아침상 차리려고 일어났다가 잠깐, 아주 잠깐만 누웠다 일어나려고 눈을 살짝 감았는데.... 아침상을 찾는 일꾼들과 마주한 날도 있었단다. 그날은 정말 많이 혼났다고.

그래도 추수하고 나면 외할머니가 엄마 수고했다고 쌀 한 가마니 값을 주셨다.


"순이야, 옷도 사 입고, 친구들 만나서 놀다 오니라."


외할머니 진짜 짱 멋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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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마... 선글라스가 엄마일까...

모든 사진에 선글라스 끼고 번쩍이는 백을 들고 있는 건 순이뿐이었다.


"엄마, 선글라스 왜 썼어?"

"눈 부셔서." 묻는 내가 바보 같았다.

"동네에서도 쓰고 다녔어?"

"시커먼 안경 쓰도 다닌다고 큰아버지한테 한 번 걸려 가지고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 진짜 혼 많이 났어."

"그러고 안 썼어?"

"아니. 계속 쓰고 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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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야?"

"척과 뒷산. 여기서는 아무리 떠들어도 동네 할배들이 아무도 몰랐거든."

"뭘 먹는데?"

"라면 처음 나왔을 때 솥단지 걸어 놓고 끓여 먹었어. 신기하다고."


사진마다 사연이 없는 것이 없었고, 재미없는 사진이 없었다.

그런데 없는 사진 얘기가 생각이 났는지 엄마가 신나게 이야기한다.


"오열이 아재가 소 이까리를 가지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차장이 내리라고 소리를 지르고, 소는 버스 옆에서 음매 울고, 난리도 아닌 날이 있었어."


이까리(고삐)를 아무리 당겨도 소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래서 오열이 아저씨랑 차장 언니랑 많이 싸웠다고 한다. 이런 추억이 방울방울 소개될수록 엄마는 더 어려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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