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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자빠진 황소 눈

목수와 그의 아내 - 7

by 미칼라책방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나의 아빠.

아빠는 군대 있는 3년 동안 월급을 모아 제대 후 그 돈으로 돼지를 샀다. 도마교리 마당 한 구석에 돼지우리를 지어 놓고 뿌듯했을 마음이 지금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순진한 나의 엄마.

엄마는 20년을 엄마 곁에서 살다가 어른께서 소개해주는 남자를 만나러 부산으로 갔다.

맞선 보러.

엄마와 아빠가 맞선을 본 장소는 큰 이모네였다.

당시 큰 이모는 부산 시내에 양옥집에서 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들어도 있어 보이는 양옥집.

둘째 이모도 같은 동네 다른 양옥집에 살았다.

큰 사위와 둘째 사위 모두 내로라하는 직장에 다니며 시내에 번듯한 양옥집이 있었으니...


"그때 니네 이모 집이 대궐 같았어. 정말 좋더라."라고 말씀하시는 아빠.

그 말씀에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부잣집 셋째 딸을 데려다가 고생시켰던 것이 떠오르는지 괜스레 TV 리모컨을 찾으신다.


"엄마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빛이 났어? 첫 눈에 반하신 건가?"

"니네 엄마 손목을 딱 잡았는데 부러질 것 같더라고. 나는 그게 너무 좋았어. 진짜 뿌듯하더라고."


맞선을 위해 나의 할머니와 아빠는 울산으로 내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빠와 할머니는 '모자간에 긴밀한 합의'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

할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생각을, 아빠는 아내에 대한 생각을 하셨겠지.

맞선 장소에서의 증언(?)은 큰 이모의 말씀뿐이었다. 큰 이모는 예쁜 동생을 데려갈 사람도 궁금했고, 시어머니 자리는 더 궁금하셨다. 부끄러워서 다른 방에 있는 동생에게 와서 한다는 말씀이...


"야야~ 느그 시어머니 될 사람은 변호사고, 느그 신랑 될 사람은 얼음에 자빠진 황소 눈을 가지고 왔드라~!!"


이모가 보기에 시어머니 되실 분이 변호사처럼 술술 말씀을 너무 잘하시더란다. 근데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커다란 눈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수원 이스방~ 황소 눈 왔나~!'라고 하신다.

그리고 드디어 당사자들의 만남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짜장면집에서.

부잣집이었지만 워낙 시골 출신이었던 엄마와 수도권이지만 가난했던 아빠는 모두 짜장면이 처음 보는 신문물.

이걸 어쩌나.

엄마는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겠는데 이토록 낯선 시커먼 양념을 입으로 넣어야 할지~ 코로 넣어야 할지~

아빠는 처음 보는 여자와 역시 처음 보는 짜장면을 남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곤 사진을 찍으셨단다.

약혼사진.


주석 2020-08-12 184839.jpg 1974년 8월 23일


"아빠 셔츠 엄청 좋아 보이네? 선 본다고 사서 입고 가셨나 봐?"라고 내가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답하셨다.

"미칼라! 내가 결혼해가지고 니네 아빠 옷장을 봤는데 너무너무 놀랐잖아."

"왜?"

"맞선 볼 때 입었던 셔츠도 누구 거 빌려 입고 왔는지 없더라. 근데 셔츠가 문제가 아니라 팬티도 한 장 밖에 없더라고. 딱 입은 거 그거 하나."

"엥? 그럼 어떻게 갈아 입어? 할머니한테 안 물어봤어? 시어머니한테 말이야~"

"할머니는 그런 거 몰랐지. 시집와서 보니까 그냥 먹고사는 거랑 돈 생기면 땅 사는 거. 딱 그거뿐이더라고."

"아빠는 엄마 만나서 말 그대로 출세한 거네?"

"완전히."



주석 2020-08-12 184903.jpg



11월 7일. 우리 아빠 출세한 날.

이 날 이후 20살을 갓 넘긴 엄마는 경상도 산골이 아닌 경기도에서 살게 되었다.

가을 끝에 결혼한 엄마는 시집오자마자 김장에 겨울준비를 하느라고 정신이 하. 나. 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까마득한.....


"엄마. 사는 게 그렇게 달랐는데 잘 적응하고 살았어?"

"아니. 너무 힘들었어."

"할머니가 일을 많이 시켰어?"

"일을 해도 척과랑 너무 다르게 하니까 낯설었지. 그리고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구경한다고 몰려왔었어."

"엄마를? 왜?"

"경상도 사투리가 신기하다고. 내가 한마디만 하면 다들 까르르 웃으면서 내 입만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낮에는 일하느라 힘들고 밤에도 편히 못 있고... 뭐 좋은 일은 없었어?"

"눈이 좋드라. 눈을 처음 봤거든."

그러면서 엄마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처럼 포슬포슬 말을 이어갔다.

"내가 언제 눈을 봤어야 말이지. 너무 신기한 거야. 걸을 때마다 소리도 나고, 눈사람도 만들고."


주석 2020-08-12 184949.jpg



"아니~ 자다 보니까 사람이 없어진 거야. 아이고 이게 뭔 일인가 해서 기겁을 하고 뛰어 나가 보면 마당에서 눈을 밟고 다니는 거야. 발이 다 얼어가지고... 아이고... 말도 마."

갑자기 그때가 생각났는지 목청을 높이는 아빠 때문에 웃음이 났다. 같이 웃던 엄마는 눈을 밟으면 뽀드득 소리 나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발이 어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는 너무 멀리까지 가서 엄마를 업고 왔던 적도 있었다. 아빠에겐 21살 아내가 마냥 아기 같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눈이 오면 너무 좋아서 발이 어는 줄도 모르고 뽀드득거리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새벽이 되면 울었으니까. 엉엉.

엄마 품 안에 있던 20살 처녀가 천리길이나 떨어진 곳에서 새벽마다 눈물을 흘리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낯선 곳이... 정말 여기가 나의 집인가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입도 뻥긋하기 힘들었던 시집살이가 엄마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락 반 가출 반으로 엄마에게 달려간 나의 어린 엄마. 또한 아내를 찾아 울산으로 내려온 나의 어리지 않은 아빠.

엄마는 도마교리에서 울었지만 아빠는 울산에서 울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이불 한 채, 쌀 한 자루, 우체국 환 10만 원으로 시작한 울산에서의 살림.


"미칼라 너 아니었으면 내가 이 집 식구 안됐을 텐데... 너 아니었음 내가 그때 도망갔을 거야."

"이렇게 살게 된 건 미칼라 덕분이야."


갑. 분. 미칼라.

엄마와 아빠가 입을 모아 내 덕분이라고 하니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건 그 시절에 대한 위로라도 건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모든 것이 나의 덕분이라는 이 분들에게 어떤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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