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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Jun 11. 2023

사회복지조사론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재미있는 과목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도 있었습니다. 장애인복지론은 평소 관심이 많았던 분야이므로 수업시간에도 열심이었고 과제에도 꽤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사회복지법제론은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 만큼 거리감이 있어 공부도 어려웠고 학점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많은 과목 중에 취향을 따지기 어려운 과목도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사회복지조사론이었습니다. 사회복지조사는 복지와 관련된 사회현상을 파악하고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배우는 것이 사회복지조사론이지요.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통계적으로 파악하는 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과 같아 좋았지만 수학과 관련한 지식을 동원해야 하고 통계 프로그램을 핸들링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과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계프로그램을 공부하자고 몇몇이 뭉쳐 책을 한 권씩 구입했습니다. SPSS 책을 들고 네다섯 명이 모여 앉아 이건 어떻게 하는 거냐, 저건 저렇게 하더라 라며 스터디를 했습니다. 한 학기 정도 모여 공부를 했고 다음 학기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습니다. 고만고만한 지식으로 모였으니 다음 단계로 레벨업할 수 있는 동력이 모자랐던 거지요. 지금 생각하면 스터디를 그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명확했지만 그때 우리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다음 학기 시작과 함께 SPSS 스터디는 자연스레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렇게 흐지부지되었던 사회복지조사론이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이렇게 소중하게 쓰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제가 사회재활팀에서 기획팀으로 인사이동을 한 바로 다음이었습니다. 제가 기획팀으로 배치되었던 건 바로 사회복지조사론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직원들 중 가장 최근에 사회복지조사론을 공부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신생 기획팀에서 조사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나마 통계프로그램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SPSS가 저를 기획팀으로 보냈다면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단종복지관에서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승격한 후 사업을 확장하고 지역사회에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지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한 욕구조사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건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사업이었으므로 첫 번째라는 것 말고는 그리 색다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OO시 장애인 욕구조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조사론 교재를 다시 읽었고, SPSS 매뉴얼을 공부했습니다. 분명 이걸로 공부하고 학점도 따고 스터디까지 했는데 조사사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난공불락이었습니다. 너무 어려워 못 할 것 같다고 보고하길 여러 차례... 기획팀 사무실이 장애인 욕구조사 상황실처럼 되었을 때도 난감한 눈길을 주고받았지만 겉으로는 잘하고 있다고 파이팅이라고 독려했습니다. 그것 말고 따로 할 말이 뭐가 있었을까요.


장애인 욕구조사를 진행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모두 다 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그리고 제일 좋았던 점도 마찬가지로 모두 다 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을 하고 생전 처음으로 신경성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과보고서를 제작하여 전국 장애인복지관으로 우편발송을 하면서 속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 안 한다 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소용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생 어느 한 부분에서는 분명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회복지조사론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SPSS 스터디를 꾸릴 때 더 쓸모없는 짓이라고 속으로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나만 할 수 있는 업무를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까 자주, 매우 자주 의심스럽지만 그때 그 교훈을 등불 삼아 계속 씁니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조사론을 공부한 사회복지사 이경혜였습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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