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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Jun 24. 2023

치약효과

장애인복지관뿐만 아니라 어느 기관이든 어떤 프로그램이든 마지막에는 만족도 조사를 실시합니다. 요즘은 서비스 만족도 조사가 일반화되어 애플리케이션으로 몇 초만에 할 수 있지만 인터넷이 활발하게 사용되기 전에는 설문지를 들고 복지관 이용자들 명부에 일일이 표시해 가며 대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지요. 물리치료실을 이용하는 김 OO 님의 만족도 조사가 완료되었다면 물리치료실 이용자 명단의 김 OO 님 이름 옆에 브이(V)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아날로그적이었지만 그때는 조사 방법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이라는 특성이 있었기에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직접 만남이 제일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사회복지시설 평가 중 기관의 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복지관에서 서비스 만족도를 실시할 대상자 명단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중에 이용자 명단에 제일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이용자의 평가가 좋아야 할 것 같았거든요. 다음으로는 설문지를 잘 만들어야 했습니다. 글을 읽고 답할 수 있는 이용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용자도 다수였기 때문에 조사원과 잘 소통할 수 있도록 문항을 쉽고 명료하게 했습니다. 가능하면 조사원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도록 객관적인 응답을 기재하도록 교육했습니다.


그런데 객관적이더라도 뭔가... 뭔가 더 좋은 결과가 도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은품을 준비하면 어떻겠냐는 건의를 했습니다. 꼴랑 기관 만족도 조사하는 데 뭐 그런 걸 하냐고 하실 줄 알았는데 오... 이게 웬일입니까! 좋은 생각이라면서 너무 큰 건 말고 간단한 걸로 하라는 결재가 떨어졌습니다. 이용자 명부와 합리적인 설문지에 대한 생각보다 응답 선물을 뭘로 할지 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천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주머니에서 착착 꺼내서 응답 완료한 설문지와 딱딱 맞바꿀 수 있는 그런 게 뭐가 있을까요? 이용자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좋아할 만한 것이어야 했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예쁜 쓰레기는 빼고요. 머리가 아팠습니다. 명부와 설문지를 만들 때 보다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준들이 넘쳐났습니다. 나중에는 팀장님도 결국 두 손을 들고 "이선생이 알아서 해!"라고 하셨습니다. 


복지관 카드를 들고 우선 대형마트로 갔습니다. 못 사더라도 우선 가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 땡! 피부에 바를 수 있는 것? 땡! 몸에 걸칠 수 있는 것? 땡! 씻겨 나가는 것? 아! 비누? 치약? 칫솔? 샴푸? 생필품 코너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세상 근심을 다 떠안은 듯 한숨도 쉬었습니다. 그런 제 앞을 중년의 아주머니가 쌩 지나치시더니 치약을 담아가셨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혼잣말도 하셨습니다. "어떤 게 제일 싼 거냐~아~."


아! 치약! 제일 기호가 덜 까다로울 것 같아 팀장님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정했습니다. 마트에 또 오기 귀찮기도 하고 혹시나 종류가 다르면 이용자들끼리 네 거가 더 좋네 내 거가 더 좋네 하실까 봐 한 종류로 대량 구매했습니다. 카드로 결제하며 이제 무를 수도 없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치약 사은품은 관장님 이하 모두가 만족해하셨고 설문지 한 장당 하나씩 드리는 거라고 조사원에게 굳은 약속을 받고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복지관에서 대답 잘하면 치약 준다고 소문이 났는지 '치약 주는 데가 어디냐?'라고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조사 담당자의 책상은 인산인해였습니다. 바로 제 자리요.


물론 두 개 하면 안 되냐고 하는 분도 계셨고, "무조건 대만족이여!"라며 다 5점을 주라고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쯤 되면 만족도 설문 조사 결과를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우리 기관은 이용자들에게 행복을 주는 천상의 복지관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랬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조사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치약효과'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우 만족한다는 5점 만점의 결과는 전무후무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기관에서 실시하는 만족도 조사에서 사은품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잘 모르고 싶습니다. 허허.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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