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이다 보니 특수교사나 치료사들과 업무 협력할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뭐 꼭 업무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면 사적인 관계를 가지며 직장 동료로서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고 조언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심리치료사나 언어치료사,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등은 치료사라는 이름은 같았지만 각 영역에서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 달랐기에 고민도 다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채롭게 친해졌나 봅니다.
하루는 언어치료사 선생님이 "길동이가 화장실 갈 때 유심히 살펴주세요."라고 하시면서 목에 걸고 있는 길동이의 카드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 봐달라고 하셨습니다. 길동이는 저와 소통할 때 한 번도 카드를 사용한 적이 없어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는데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되면 눈빛 소통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훈련 중이라고 정보를 주셨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거나 담임 선생님이 바뀌면 저와 했던 눈빛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습니다.
어느 날은 특수교사 선생님이 "어젯밤에 경찰서 다녀왔더니 너무 피곤해."라고 하시는데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있었습니다. 갑자기 경찰서라니요. 곧 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채시고는 "내가 아니라 학생 때문이었다."라고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한 학생이 반복적으로 계산을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이 이를 신고한 것이며, 아이가 '훔쳐 먹는' 장면이 감시카메라에 녹화되어 있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의 동선을 추적하여 특수교사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입니다. 그 학생은 촉법소년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이였기에 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사건은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훔쳐 먹은' 이유는 바로 현금 계산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그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당연히 무인 계산은 카드만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카드를 밀어 넣는 공간 바로 밑에 현금을 넣고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는 구멍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걸 지적장애 학생이 알기란 어려웠을 겁니다.
특수교사 선생님은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과 경찰관에게 아이가 지적장애임을 설명하고 카메라 녹화 영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아이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와 아이스크림을 고른 후 계산기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결국 포장지를 뜯어 먹는 아이의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야기의 마무리는 아이들과 함께 물건을 사는 연습을 다양하게 더 많이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이스크림이 녹는 걸 걱정하며 초조하게 계산대 앞을 서성였을 아이가 눈앞에 선했습니다. 보지 않아도 아이의 곤란함과 막막함이 느껴졌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현금 계산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안내 문구가 크게 써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경찰서 사건은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그 아이 덕분에 무인계산기에서 현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은 현금으로 사겠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었습니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당연히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 줄 알았으니까요. 사회복지사도 이러니 장애인복지에 관심이 없다면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저와 결혼한 남자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이야."라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과 경찰관도 그랬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기엔 너무 바쁘고 내 일만으로도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경한 경험을 통해 두루두루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사회복지사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