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1-3 거실
방 3, 화장실 2이면 5인 가족이 생활하기에 적당한 집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넉넉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혼자만의 공간을 원했고 내가 보기에도 각자 방을 갖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사를 마음먹었고 집을 알아보았다. 집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 안 맞았고, 가격을 맞추니 집이 마음에 안 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어 한 마리만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으나 막상 결정하려고 하니 썩 내키지 않았다.
당장에 방이 필요하다지만 3~4년만 있으면 집을 비울 아이들이었다. 몇 년 후면 대학과 군대로 뿔뿔이 흩어질 성인 자녀를 위해 큰돈과 요란한 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이사가 답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차근차근 되짚으며 다른 방도를 구했다. 단독주택 같으면야 벽을 허물고 공사라도 한다지만 아파트라서 있는 공간을 재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 3개를 4개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라~ 떠올라라~ 붕~ 붕~ 그거다! 제일 커다란 공간을 둘로 나누면 된다! 그건 바로 거실이었다. 제일 먼저 안방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장롱과 퀸 사이즈 침대를 엎어뜨리고 메쳐도 답이 나오지 않아 거실로 초점을 맞추었다. 양쪽 벽면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던 책장을 정리하여 가운데로 몰았다. 그렇게 분리된 공간을 방과 작은 거실로 용도를 정하고 나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화사한 벽지로 도배도 하고 인테리어랍시고 등도 달고 문도 설치했다. 어엿한 방 4개의 집이 완성되었다.
이제 새로 생긴 자그마한 방의 주인을 정할 차례였다. 과연 누구 방이 될 것인가... 서로 안 간다고 싸우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니가 가라 하와이'처럼 서로 가라고 하면 우리 부부가 하와이라 생각하고 가자고 우스갯소리까지 했다. 저녁을 먹으며 새로운 방을 누가 쓰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들은 예상외로 서로 간다고 했다. 각자 이유를 대며 자기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결론은 막내가 당첨되었다. 덩치가 제일 작으니 본인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이유를 들었고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큰아이와 둘째는 '정 원하신다면...' 이라는 입장으로 기꺼이 양보했다.
우리는 이사 대신 거실을 분리하는 조치로 집안의 평화를 이루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거실을 나누겠다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 집안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는 곳이라는 명목을 놓는 순간 생각이 자유로워졌다. 집이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공간을 말하며, 살림이란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본디 이뤄야 하는 건은 생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걸 제대로 하기 위해 우리는 거실을 분리해야만 했던 것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삶을 꾸리며 지나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가족이라는 커다란 정의 안에서 거실 분리 사건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았다.
거실의 역할은 무엇일까?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 집안 사람'이라는 소속감을 심어주는 것이 거실이다. 그때 우리는 거실을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 좁아진 거실에서 오히려 다닥다닥 붙어서 살을 부대꼈다. 서로의 체온으로 상대를 인지하며 가족임을 실감했다. 그러니 거실이 맞았다. 매우 거실다운 모습이었다.
살림이란 가족의 생활주기에 따라 그 모양과 배치가 충분히 바뀔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거실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해야 다음 단계의 생활 패턴으로 넘어가는 데 수월하다. 알록달록 장난감을 늘어놓을 때도 있고, 모서리에 안전 범퍼를 설치해야 할 때가 지나면 책이 수두룩하게 널릴 수도 있다. 때론 반으로 댕강 잘려나가도 다시 널따란 소파를 놓을 수 있는 시기가 오니 거실은 그야말로 우리 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무명무형(無名無形)의 그릇과도 같다. 그중에 내가 할 일은 그릇이 잘 쓰일 수 있도록 돌보는 것, 즉 살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