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2-1 먹이기
나의 엄마는 '새끼들 먹이는 건 아깝지도 아쉽지도 않다'라는 분이다. 애들 먹이는 게 8할이라는 걸 보고 배운 나로서는 내 아이들의 끼니에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뭐가 되었든 먹는 게 최고고 언제가 되었든 끼니를 챙기는 게 우선이다. 내가 그렇게 컸으며 내리사랑으로 나의 아이들도 당연히 그렇게 돌보고 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라고 묻는 남편은 이에 대해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배고프면 알아서 먹을 것이고 그도 아니면 까짓것 좀 굶으면 어떠냐는 식이었다. 본인도 그렇게 잘 자랐으며 애들은 원래 부족한 듯 키워야 잘 큰다고 하는 말이 어딘가 모르게 텅 비어버린 반찬통 같아 마뜩잖다.
굶는다고? 왜? 애들을 왜 굶겨?
눈을 동그랗게 하고 따지는 나에게 남편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뭔가에 꽂히면 경주마처럼 직진하는 아내와 말싸움해 봤자 남는 게 없으며 오히려 본인이 굶을 수도 있다는 걸 아는 터다. 일부러 굶긴다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유를 가지자는 말인 걸 안다. 아는데, 충분히 알겠는데 이상하게 애들 밥때만 되면 내 심장은 동동거리며 애들 밥상에 온 신경이 쏠린다. 잘 먹고 잘 커야 너도 나도 할 일을 다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흔들린 적은 없다.
어느 날 퇴근하는 남편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걸 가리키며 "이거 뭐야?" 라고 물었다. 사실 이건 물음이라기보다는 나를 탓하는 말이다. 이게 뭐냐는 질문의 속뜻은... 애들 먹으라고 만들었어? 그런데 남은 거야? 어쩔 수 없이 내가 먹어야겠군. 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저녁을 먹기 전 애피타이저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보통 남자들이 말하는 '나는 찬밥'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그날은 남편이 먹고 싶다는 걸 정성껏 만들어 주었다.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참치김치찌개가 생각난다길래 청양고추 쫑쫑 썰어 넣어 칼칼하게 끓여 고슬밥과 함께 저녁상을 차렸고 참이슬 후레쉬도 잊지 않았다.
내 요리의 속뜻은...
애들뿐만 아니라 당신을 대접하는 것도 내 인생의 8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