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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조금 불편합니다

떡볶이 먹으며 친해지기

by 미칼라책방

H에게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인데 나는 퇴사를 하고 H는 이직을 하면서 헤어졌다. 한 직장에서 있었던 5년 중 뒤에 2년 정도를 친하게 지냈다. 둘 다 낯을 심하게 가려 서로를 알아가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린 셈이다. 막상 가까워지고 나서는 직장이 달라졌어도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꽤 깊은 사정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번 만남은 거의 1년 만이었다. 그동안 이런 일도 있었다고 저런 일도 있었다고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선생님, 나 수영 배워."

"정말? 너무 잘했다! 얼마나 됐어요?"

"한 5개월?"

"진짜 잘했어요. 재미는 있어요?"

"어렵지만 할만해요. 근데 아줌마들이 더 어려워."

"왜? 같이 커피 마시자고 해서?"

"헐. 어떻게 알았아요?"

"나 수영 3년 차잖아요. 이미 겪었지."

"2달쯤 되니까 커피 마시자고 하더라고요."

"잘했어요. 나는 1년 걸렸어요."

"진짜? 선생님도 참 심각하다."

"그래도 지금은 같이 떡볶이 먹으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우리 정상이지?"

"매우 정상입니다!"


하던 수영도 그만 둘 나이에 수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별했다. 여행지에서 나만 수영을 못 하는 바람에 꽤 곤란했었고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후 이를 악물고 강습에 등록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리라는 굳음 결심을 했기에 매번 나의 표정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것에 더해서 몸을 쓰는데 잼뱅이이기까지 했으니 진도가 더딘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느 날 수영 강습을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던 중에 같은 레인에 있던 여자분이 '함께 차나 한 잔 하자'라고 했다. 나는 선약이 있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동안 여러 차례 권유와 거절이 있었고, 어느 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차나 한 잔 하자'며 활짝 웃으시는데 그날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낯 모르는 이와 마주 보고 앉아 스몰 토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어려운지 모른다. H와 나는 그 점에 있어서 매우 공감하며 수영장 엄마들과의 만남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의지가 되고 가까워진다고 했다. H는 엊그제 수영장 엄마들과 처음 밥을 먹었다면서 앞으로는 더 자주 기회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아주 친해졌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처음에 불편했다는 내 말은 마치 거짓말이 된 것 같았다. 아마 불편했다는 건 정말 진실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불편보다는 어색하고 서투르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내향인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반드시 어색하고 서투른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나에게 수차례 한 잔을 권한 그녀는 외향 중에서도 뛰어난 외향형이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자꾸만 다가와주어서. 내가 그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권해주어서 말이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웃으면 이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데 그전에 왜 그렇게 피한 거야?"라고. 실은 나는 당신이 조금 불편했었다고 고백했다. 당신이 싫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낯을 많이 가려서 시간이 좀 걸린 것뿐이라고. 차를 권해 준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서 엊그제도 내가 떡볶이를 샀다. 앞으로도 종종 사 줄 거라고 했더니 그녀는 자기를 계속 불편해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했다.


당신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 말이 우리는 조금 더 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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