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비해 고민은 짧습니다
눈을 끔뻑이며 생각하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이건 어떻게 하나, 저건 어떻게 하나, 만약 그 일이 일어난다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고 심지어 구체적으로 구상까지 하며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냥 하는 말로 생각이고, 보기 좋게 꾸미자면 사색이고, 짐스러울 땐 고민이라고 한다. 뭐라고 부르든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인 건 분명하다.
아마도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을 모아 내향형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향형 중에서도 사고유형으로 분류하면 어떨까? 어느 날은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지 생각해 보았다. 그냥 있어도 되고, 드라마를 정주행해도 되고, 밀린 일을 해도 되는 시간인데 나는 꼭 커피 한 잔 들고 앉아 멍을 때린다. 얼마나 생각하길 좋아하면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할까. 내가 생각이 많은 이유를 두 가지 떠올렸다.
우선 내가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 곱씹는다. 다시 말해 이불킥을 한다는 것이다. 아...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적절하게 탁 돌아섰어야 했는데 미련곰퉁이처럼 뭉개고 앉아 있었네 등의 후회를 한다.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을 하시며 각본 없는 강연을 잘도 하시던데 나는 즉문즈~으~으~윽설이 될 만큼 반응의 속도가 늦다. 아니면 생뚱맞은 답을 하든지. 그러므로 나는 적절한 대처를 위해 생각한다. 다음번에는 이렇게 해야지, 상대편이 그렇게 할 때는 미련 없이 일어나야지 결심한다.
다음으로 나는 상상을 많이 한다. 가정에 가정을 이어 붙여 상황을 설정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생각한다. 만약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거의 모든 사건을 내 머릿속에서 발생시킬 수 있다. 자연재해도 일어나고,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가 뜬금없이 알거지가 되기도 한다. 참, 노벨문학상도 내 상상리스트에 있었다. 작가는 달랐지만 분명 한국인 받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한림원 발표에 그렇게 떨렸었나 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상으로 그리고 느끼는 건 아마도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혹시 모를 일에 내가 많이 당황하면 어쩌나, 소중한 순간을 놓치기 싫기도 하고, 맞닥뜨리기 싫은 장면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상을 한다. 예상을 하기 위해. 다만 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실제로 일어나는 가능성은 미미하다. 아니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행복에 행복을 더할 수 있고, 현실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으며, 소망을 이룬 내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는 걸 느낀다.
생각의 시간을 후회와 상상으로 채우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쓰고 퇴고를 할 때 '생각 빼기'를 꼭 한다. 생각 대신 다른 단어를 찾아 넣는 작업을 하면서 나는 또 생각을 한다. 하... 어쩔 수 없는 생각의 늪에 빠지는 가 보다. 그냥 나의 운명이려니 하자.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은 많은 생각을 해야 하다 보니 한 가지 주제에 깊이 몰입하지 못한다. 그러니 길게 끌고 가기 어렵다. 잠깐 상상하다가 다른 생각에 빠지고, 그러다가 뒤차가 빵빵 크랙션을 울리면 아차차 액셀을 밟으며 신호등에 대한 생각으로 바뀐다. 이런 식이니 어떤 일을 고민할 때 깊이 파헤치기보다 넓게 둘러보는 편이다. 쓰윽 살핀 후 직관적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결정에 이르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름의 장점이다.
생각이 많아 피곤하겠지만 길지 않은 고민으로 매듭을 빨리 짓는 편이니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