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게 매력이지!
"소개팅할래?"
"네? 갑자기요?"
"소개팅을 갑자기 하지, 그럼 은근히 하니?"
얼렁뚱땅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았다. 이것만 가지고 남자를 어떻게 만나냐고 재차 물었지만 정 그렇다면 약속까지는 잡아주겠다면서 일요일 아침 10시로 못을 박았다. 어디 사는,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도 우선 만나보라면서 남자인 건 확실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입장인 것이 나는 낯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유형이다. 볼이 빨개지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입을 떼는 것부터 난관인데 이를 어쩐다... 이 상황을 조장한 선배 언니는 난처해하는 나에게 그저 잘해보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이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학교 생활 대부분을 함께 했으며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많이 의지했던 사람이다. 사람 사귈 줄 모르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는 것부터 도서관 열람실도 데려가 주고 삼성 코엑스 전시장도 자주 가면서 서울을 알려준 은인이다. 나에게만 그런 건 아니고 성정 자체가 그런 사람이다. 긍정적인 오지라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약속한 일요일이 되었다. 나를 생각해서 마련한 자리이니 안 나갈 수도 없는 일이고 주선자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 이름 석 자만 아는 남자를 만난다니 생각만 해도 떨렸다. 눈썹을 그리는 손끝까지 그 긴장이 전해져서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자, 가 보자!
버스를 타고 수원역으로 향했다. 2층 카페라고 했다. 생전 처음 가 보는 곳이라 유리문을 당겨야 할지 밀어야 할지 머뭇거렸다. PUSH 글자를 발견하고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밀었다. 혼자 앉은 사람이 없는 걸 보고 휴... 다행이다 싶었다. 어색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늦추고 싶은 마음에 혹시 그 사람이 못 온다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잠시 후 10시 땡~ 하면서 한 남자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꾸벅 인사를 하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이경혜 씨죠?"
"네. 안녕하세요."
어쩜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끌어가는지 신기했다. 사실 신기해한 건 집에 와서 깨달은 것이고 막상 그 자리에서는 대화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헤어지면서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으며 우리는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다가 결혼했다.
외향적인 선배 덕분에 만난 남자는 MBTI로 따지자면 EEEE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실은 ENTJ) 사람 좋아하고, 어울리는 건 더 좋아하고, 두루두루 만나는 걸 제일 좋아하는 남자였다. 나를 만날 당시 회사 기숙사에 있었는데 휴일 중 단 하루도 방에 혼자 있었던 적이 없을 만큼 외부 활동을 즐기는 극외향형이었다.
이런 사람과 정반대 성향인 내가 사귀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게다가 큰 다툼 없이 20년 넘게 살아온 건 달라도 너무 다른 덕분이다. 집과 회사 밖에 몰랐던 나에게 바깥 데이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배드민턴, 등산, 인라인 같은 실외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운동을 워낙 좋아했던 남자는 여자에게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여자는 평생 끄고 살았던 운동 스위치를 딸깍 올린 것처럼 근육통의 맛을 보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스위치는 ON이고 아마 꺼질 일은 없지 싶다.
우리 부부는 I의 끝과 E의 끝에 있는 사람으로서 안 맞아도 어쩜 이렇게 안 맞냐면서 가끔 투닥거리기도 한다. 특히 부부 동반 모임이 있을 때 나는 안 간다 하고 그는 가자고 맞선다. 결혼 초에는 꾹 참고 동행하거나 툴툴 거리며 그 혼자 가기도 했었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는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이제는 의미 있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때론 혼자가 편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양극단에서 서로를 봐줄 수 있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만약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만났다면 조금 지루하지 않았을까? 또 남편이 그와 같은 여자를 만났다면 긴 세월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며느리도 모르는 것이니 당장에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짝꿍과 우당탕탕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날마다 나와 다른 걸 발견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